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라 Apr 10. 2020

#1. 자전거 구매, 그리고 첫 시승

안장통의 지옥을 경험하다

* 지난 줄거리


  국토 자전거 여행을 결심한 저는 마음에 드는 자전거 모델을 발견했지만, 코로나 19 사태로 재고가 부족하다는 자전거 샵들의 연락을 받고 절망에 빠진 상태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따릉이로 서울을 방황하던 때, 알 수 없는 번호로 연락이 왔습니다. 들렀던 자전거 샵들 중 한 군데에서 제가 원하던 자전거 모델의 재고를 확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1. 대망의 자전거 구매, 그리고 첫 시승 이야기


자전거를 구매하기 위해 집에서 가게까지 걸어서 갔습니다.


* 드디어 자전거를 사다!


  연락을 받았던 당시는 금요일이었는데, 자전거가 있다는 연락을 받은 저는 잽싸게 '당장 가겠다'라고 주인 분께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직 조립이 된 상태가 아니라 토요일인 내일 12시 이후에 방문하라고 하시더군요. 어차피 저는 남는 게 시간이니 흔쾌히 알겠다고 했고, 기대에 부푼 상태로 잠에 들었습니다.


  대망의 자전거 사는 날, 저는 자전거 샵의 위치를 찾아봤습니다. 동작역 인근의 가게였는데, 제가 살고 있는 낙성대역에서 대략 걸어서 1시간 거리였습니다. 티끌 같은 지출들이 모여 지금의 자전거 구매라는 태산으로 이어졌음을 마음속으로 굳게 되새긴 후(실은 자전거 값의 지출이 커서 교통비라도 아끼려고...), 저는 제가 쓰는 컴퓨터와 월세 이후로 가장 큰 지출이 될 자전거 님을 영접하기 위헤 두 발로 걸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바로 자전거를 탈 수도 있으니, 최대한 편한 복장으로 신나게 걸어갔습니다. 저의 자전거 구매를 축하하는 모양인지, 가는 길에 피어있는 개나리와 벚꽃과 진달래가 길을 아름답게 수놓았습니다. 


꽃들도 저의 자전거 사는 날을 알아차리고 축하해줍니다.


  그렇게 자전거 샵에 도착하니 웬걸, 아직 자전거 조립이 끝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정비를 하시다 보니 깜빡하셨다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괜찮았습니다. 며칠을 기다려 어렵게 구한 자전거인데, 고작 조립에 필요한 몇 시간을 못 기다릴까요? 1시간을 기다려달라는 주인 분의 부탁을 흔쾌히 승낙하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산책 나온 강아지가 제게 꼬리를 흔들면 살짝씩 귀여워해 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조립이 끝났다는 연락이 왔고, 살짝의 조정을 마친 뒤 시승을 한 후 흡족한 표정으로 주인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침 샵에 사람들도 없는 한적한 시간대라, 주인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구매한 이유인 국토 종주에 대해서, 그리고 어렵게 어렵게 자전거를 구했다는 이야기까지 하니 격려와 염려가 섞인 조언들을 여러 가지 해주십니다.

  갑자기 주인 분께서 뭔가 짠하셨는지 서비스를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자전거 가격을 깎아주겠다고 하시네요? 원래 정가에만 판매하는 제품이지만 어린 학생이 돈이 어딨냐며 엄청난 값을 깎아주셨습니다. 사실 학생은 아닌데... 오래간만에 깔끔하게 면도를 한 보람이 있는 모양입니다!


  원래 정가에서 거의 10만 원 정도를 깎아주셨습니다. 게다가, 국토종주를 가는 것이 걱정이 되신다며 한 번의 무료 피팅과 무료 점검을 해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국토종주를 가기 전에 꼭 가게에 들러서 피팅과 점검을 받고 국토종주를 출발하라고 하십니다. 가게에 오면 펑크 수리법 등의 응급처치 방법들도 알려줄 테니 미리 연락을 주면 시간을 마련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내심 찔리는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반드시 자전거 여행을 완수하는 것으로 보답하자는 마음으로 주인 아저씨와 약속을 했습니다.


이렇게 구매하게 된 대망의 첫 자전거입니다. 나중에 새 자전거를 사더라도, 이 자전거는 절대 버리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주인 분의 따뜻한 배려와 할인(?)으로 몸에 에너지가 돌기 시작한 저는 곧바로 한강으로 향했습니다. 동작역 주변에는 한강 자전거길로 연결된 수많은 산책로 입구가 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강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보자는 결심이 섰습니다.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마패로 말 갈아타듯, 매번 따릉이 대여시간에 쫓기면서 자전거를 타던 한을 드디어 풀 수 있게 된 겁니다! 저는 그렇게 저녁시간 전에 들어갈 수 있는 대략의 경로를 짜고, 순간의 지체도 없이 출발했습니다.


자전거 샵 인근의 한강 자전거길 진입로에는 아름다운 벚꽃이 한가득입니다.



* 만족스러운 첫 시승, 그러나...


약 2시간 정도의 가벼운 코스를 택했습니다. 이때까지는 별 것 아니라 생각했지만...


  평소 따릉이를 반납했다 빌렸다 하며 몇 시간씩 타던 경력(?)이 있던 저는 나름 길다고 생각하는 복귀 코스를 짰습니다. 동작역에서 여의도를 거쳐 안양천을 따라 도림천으로 복귀, 그대로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였습니다. 약 27km의 거리였고, 승차감과 주행능력 등등의 자전거 성능을 테스트해보기에는 아주 적절하다 생각했습니다. 간단히 편의점에서 점심을 해치우고, 물 몇 병을 챙기고는 바로 출발했습니다.


사진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공원 곳곳에는 코로나 19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좋아서인지 엄청난 인파로 붐볐습니다.


  충분히 라이딩을 즐기고 싶었지만, 코로나 19 사태로 사람이 몇 없을 것이라는 저의 착각은 완벽하게 빗나갔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특히 여의도 인근에는 자전거로 속도를 내기 어려울 만큼 사람이 우글거렸습니다. 애초에 '코로나 19로부터 자유로운 여행'을 목표로 하고 있던 저에게 수많은 인파는 전혀 달가운 상황이 아니었죠.

  최대한 빠르게, 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사진으로 기록만 남기며 빠르게 집으로 복귀했습니다. 사람들을 피해 정신없이 오느라 크게 기억에도 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따금씩 물을 마시기 위해 서서, 새로 산 제 자전거의 멋진 자태를 감상했던 기억 이외에는 오로지 달렸던 기억뿐입니다.


  사람이 많아서 라이딩을 즐기지 못했다는 점만 빼면, 첫 시승으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첫 시승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따릉이로는 도저히 낼 수 없던 속도를 너무나도 쉽게, 제 허벅지와 폐가 허락하는 한계 안에서는 마음껏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사람이 별로 없는 시간대를 찾아 마음껏 달려보자는 기약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찾아올 어마어마한 고통도 모른 채...



* 안장통, 그리고 큰 깨달음


이래저래 찾아본 결과, 저런 부분들이 아픈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합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평소에 무조건 먹던 아침도 거른 채 또 자전거를 타러 집을 나섰습니다. 아침은 자전거를 타고 가서 도착한 식당에서 먹자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출발하기 위해 자전거에 올라타는 순간,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정확히 엉덩이 양쪽의 정 가운데에 있는 뼛속이 멍든 것처럼 아픈 겁니다. 평생 느껴본 적이 없는 고통에 너무도 당황한 저는 황급히 집으로 들어와 거울로 엉덩이를 확인했습니다.

  멍이 든 자국은 전혀 없었습니다. 마치 무협지에서 말하는 내상의 느낌이 이런 건가 싶었습니다. 평소 따릉이에 장착된, 서스펜션이 훌륭했던 안장만 쓰다가 갑자기 딱딱한 안장을 써서 그런 건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집에 들어와, 황급히 '자전거', '엉덩이', '통증'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한강 대신 인터넷을 돌아다녔습니다. 저는 곧바로 제가 겪은 통증이 '안장통'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순간 저보다 몇 년 먼저 자전거를 구매했던 친구가 해줬던 전립선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전립선 비대증에 시달린다는 이야기였죠.


대략(?) 이렇게 되기 싫었습니다.

  순간 겁이 났습니다. 아직 제대로 써본 적도 없는(?) 신제품 전립선이 비대증으로 불량이 된다는 건 상상도 하기 싫었습니다. 저도 어엿한 한 명의 남자로서, 언젠가는 가치 있게 사용해야 할 날이 올 것 아닙니까? 미친 듯이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어쩌면 제가 자전거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고, 자칫하면 여행 계획 자체가 무산되고, 심하면 자전거를 환불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20대의 마지막에 저의 남성성도 마지막으로 만들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분명 해결책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방송 플랫폼 Twitch의 스트리머 '똘똘똘이' 님의 영상을 보고, 저는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이 영상을 통해 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영상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습니다.


1. 안장통이 생기는 부위는 엉덩이 정 중앙(좌골신경 위치)으로, 지극히 정상으로 타고 있는 것이다.(저의 경우가 아주 모범적인 위치였습니다.)

2. 안장통은 적응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3. 딱딱한 안장일수록 건강한 라이딩 생활에 도움이 된다.

4. 푹신한 안장은 당장은 편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엉덩이 전체와 신체 곳곳을 조지는(?) 결과를 낳는다.


제 자전거 값의 대부분은 이 안장이 차지한다던 자전거 샵 주인아저씨의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덤으로, 영상에서는 멋도 모르고 샀던 제 자전거 브랜드의 안장이 굉장히 좋은 안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의 안장통과 제 자전거의 안장, 그리고 저의 자전거 운전 자세 등이 모두 하나로 맞물리며 고민이 해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 해피엔딩, 그리고 다음 계획


  결국, 저의 자세와 안장과 자전거에는 전혀 잘못이 없고, 운동을 하고 나면 근육통이 생기는 것처럼 안장통이 생기는 것이며, 적응만이 답이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정말 해피엔딩이 아닐 수 없죠? 고민이 해결되었고, 해결법도 알았으니 다음 할 일은 당연히 정해졌습니다. 바로 컴퓨터를 끄고, 밖으로 자전거를 끌고 나갔습니다. 적응만이 답인거죠.


  가볍게 동네를 돌아다니며, 인터넷에서 본 자세를 되새기며 열심히 자전거 자세 연습을 했습니다. 평소 별생각 없이 타고 다니던 따릉이를 몰던 것과는 확실히 느낌 자체가 다르다는 인식이 생기니, 자전거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은 덤입니다. 역시 세상 모든 일들은 알면 알 수록 겸손해지는 법입니다. 그간 따릉이로 10km 언저리나 타면서 자전거가 쉽다는 오만에 젖어있던 제 자신을 반성하면서, 국토 종주의 길은 멀고도 험한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며칠 정도는 엉덩이가 좀 아파도 자전거를 매일 타줬습니다. 안장통 적응을 위해서였죠. 영상의 내용대로, 며칠이 지나니 안장통은 크게 호전되어 미미한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대략 30km 정도 타는 것으로는 안장통이 크게 생기지 않음을 깨닫게 되자, 국토 종주의 꿈도 그리 멀지만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어김없이 자전거로 한강을 30km 정도 타고 온 저는, 갑자기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국토 종주를 위해 훈련도 할 겸, 좀 더 먼 거리를 다녀와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저는 무모한 다음 계획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바로, 80km의 거리를 새벽에 달리는 장거리 라이딩입니다.


- 다음에 계속.

이전 01화 #0.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