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시청권 개정 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 (3)
드디어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이 끝났다.
어쩌면 올림픽 중계 기간동안 벌어졌던 JTBC와 지상파 간의 설전도 폐막식과 함께 수면으로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까웠다면 올림픽이 폐막된 이 시점이 향후 보편적 시청권을 어떻게 확보하고 유지해서 파편화된 국민을 대한민국이란 이름 하에 연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론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이 맥락에서 챙겨봐야 할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어떤 스포츠가 보편적 시청권 대상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역시 정답은 없다. 국가별로 서로 상이하고, 시대별로 상이하다. 그때그때 가장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회적 가치가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은 1996년 방송법(Broadcasting Act 1996)과 이를 최신화한 2024년 미디어법(Media Act 2024)을 근거로 한다. 영국의 가장 큰 특징은 리스트를 'Group A'와 'Group B'로 이원화하여 관리한다는 점이다. Group A에는 올림픽, 패럴림픽, FIFA 월드컵 및 UEFA 유로 본선 전 경기, FA컵 결승 등이 포함되며, 이들은 반드시 무료 지상파 생중계가 보장되어야 한다.
반면 Group B에는 윔블던 본선(결승 제외), 럭비 월드컵(결승 제외), 크리켓 테스트 매치 등이 포함되며, 유료 방송의 독점 생중계를 허용하되 지상파의 하이라이트권을 보장하는 타협안을 제시한다. 모든 과정은 규제 기관인 오프콤(Ofcom)의 사전 승인을 통해 통제된다.
프랑스는 시행령(Decree No. 2004-1392)을 근거로 하며, 유럽 내에서 가장 많은 21개 종목을 리스트에 올리고 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물론, 축구 월드컵과 유로 전 경기,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 롤랑 가로스 테니스 준결승 및 결승 등이 포함된다. 특히 프랑스는 여성 스포츠와 패럴림픽을 대거 포함시켜 시청권을 사회적 가치 실현의 도구로 활용하는 특성을 보인다.
독일은 미디어 국가협약(MStV) 제13조를 근거로 실용적인 리스트를 운영한다. 올림픽 전 경기와 독일 대표팀이 출전하는 월드컵/유로 주요 경기, 독일컵(DFB 포칼) 결승 등이 핵심이다. 특이사항으로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의 경우 '독일 클럽이 진출했을 때'에만 한정하여 시청권을 보호한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Italy) 이탈리아는 통신위원회 결정(AGCOM Resolution 131/12/CONS)에 따라 운영된다. 스포츠 종목 구성은 타 유럽국과 유사하나, 이탈리아 자부심의 상징인 '산레모 가요제'를 리스트에 포함한 것이 전 세계적으로 독특한 사례다. 또한 자국에서 열리는 F1과 MotoGP 그랑프리 등 모터스포츠에 대한 접근권을 강력히 보호한다.
아일랜드 (Ireland) 2009년 방송법(Broadcasting Act 2009)을 근거로 하며, 글로벌 종목보다 자국의 정체성을 우선시한다. 리스트 최상단에는 월드컵보다 민속 스포츠인 GAA(헐링, 게일릭 풋볼) 결승전이 배치되어 있다. 이는 방송 제도가 자국 문화의 뿌리를 보호하는 최후의 방어선임을 보여준다.
일본의 경우에는 보편적 시청권이란 개념은 입법화해 놓았지만, 구체적인 대상 스포츠를 명시해 놓지 않았다. 최근 들어 OTT들이 스포츠 중계권을 독점하면서 일본 내에서도 여타 다른 국가들처럼 보편적 시청권 대상 이벤트를 지정해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지만, 일본 특유의 시스템은 이를 크게 중요시하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다만 여전히 NHK과 민방을 중심으로 한 지상파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믿음하에 Japan Consortium이 이를 잘 방어해 낼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을 뿐이다. 천천히 변화하는 시장이라도 어느 순간 빠르게 변화하는 법인데, 일본은 스스로를 과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년 전 우리의 지상파들처럼 말이다.
이들 사례는 있는 그대로 우리가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사례가 가지고 있는 실효성과 효과성을 감안해서 보편적 시청권 제도를 개선할 때 참고할 것들이긴 하다.
우선 지나치게 포괄적인 의미의 법 조문을 조금은 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90% 가시청권을 확보할 것과 75% 가시청권을 확보할 수 있는 스포츠를 구별했지만, 그 내용은 올림픽, FIFA, 아시안 게임등 매우 제한적이다.
일본에 비하면 구체적이지만, 유럽에 비하면 없는 것에 진배없다. 따라서 '강제력 있는 법제'로의 전환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Korea Pool 조차도 붕괴되지 말라는 법도 없거니와 그 Pool의 정당성도 생각보다 크지는 않다.
방송사 간의 신뢰와 협의는 시장의 논리 앞에서 영원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영국처럼 규제 기관의 '사전 승인권'을 명문화하고, 규제 대상을 OTT까지 확장하는 법적 토대를 먼저 구축해야 한다. 형식적인 종목 선정도 문제지만, 집행력이 없다면 리스트는 종이 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럽 사회가 사례에서처럼 보편적 시청권의 가치를 넓게 볼 것인지, 아니면 시장적 가치를 존중해 좁게 볼 것인지도 고려 대상이어야 한다. 시장의 가치를 존중하는 입장이지만, 글로벌 사업자의 위세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일부 영역에서는 보편적 시청권의 가치를 포괄적이고 넓게 가져야 하는 것이 시장 실패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 맥락에서 젠더와 문화로 확장한 건 의미 있는 대목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특수 상황이긴 하지만, 단순히 시청률이 높은 스포츠를 넘어, 사회적 통합을 위한 패럴림픽, 젠더 평등을 위한 여성 스포츠, 그리고 국민적 결속력이 담긴 문화 행사 역시 리스트에 포함시키는 부분을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이것들은 글로벌 사업자나 상업 사업자가 관심을 둘 영역은 아니지만, 반대로 공영이 챙겨야 할 대목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혀 있다. 다시 말하면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논의는 결과적으로 공영 시스템의 역할과 범위에 관한 논의라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영국식의 무료 지상파라는 단서 조항은 무의미하다. (우리나라에서 지상파란 단어는 앞 번호를 차지하고 있는 채널과 뒷 번호를 차지하고 있는 채널 간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관용어일 뿐 그것이 실질적으로 전송 서비스의 특성을 반영하는 단어로 사용되진 않는다). 유료 서비스와 무료 서비스가 실질적인 접근권의 차이가 있어야 할 텐데, 우리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찾는다면 레거시 사업자와 OTT 사업자의 구별 정도가 실효적으로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대세감을 주어야 하는 올림픽 등 일부 경기의 경우 최소한 채널 앞번호를 차지하고 있고 군집해 있는 사업자들 혹은 공영방송 사업자에게 하이라이트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건 등은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 특히 영국의 Group A와 B처럼 반드시 생중계해야 할 핵심 종목과, 하이라이트권만으로도 국민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전략적 종목을 구분하여 리스트를 유연하게 구성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만들 새로운 리스트는 일본의 실패를 극복하는 법적 강제성, 유럽의 트렌드를 반영한 가치의 다양성, 그리고 영국식 모델의 경제적 유연성 모두를 고민한 결과이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은 사장된 보편적 시청권 보장 위원회부터 정상화시켜서 빠르게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To Be Contiuned
보편적 시청권 개정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
1) 일본의 J-콘소시움과 보편적 시청권
2) 중계권 혼란과 BBC의 중계권 편성
3) 유럽이 정한 보편적시청권 이벤트
4) 동계올림픽 사상 최고의 수익을 거둔 NBC 중계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