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J-콘소시움과 보편적 시청권

보편적 시청권 개정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들 (1)

올림픽 열기가 없다. 누가 금메달이라도 딸 것 같으면 아파트 이곳저곳에서 함성이 들리기도 하고, 치킨을 든 배달원들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오르락내리락거려야 될 텐데, 실종된 크리스마스 특수 마냥 아무 소식이 없다. 시차탓도 있을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도 너무 없다.


그 와중에 올림픽 중계를 단독 독점한 jtbc와 지상파는 연일 서로 손가락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올림픽 경기 소식보다 '탓'을 하는 보도가 더 많을 것 같다고 하더라도 과장된 진실에 가깝다.



법리적으로 jtbc가 올림픽 중계권을 가지더라도 보편적 시청권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보편적 시청권은 커버리지에 대한 규정만 있다. 올림픽은 전체 TV 가구의 90%에 도달할 수 있으면 되고, 아시안 게임은 70%면 된다. 그래서 jtbc가 단독 중계권을 확보했을 때 방통위를 비롯한 어느 규제기구도 뭐라고 하지 못했다.


그 이후는 사업자 간 관계와 운영에 대한 문제다. 소위 jtbc는 재판매를 위해 입찰 공고를 냈고, 지상파는 받지 않는 것을 넘어서 입찰중지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jtbc는 지상파가 담합하고 있다며 공정위에 제소했으나, 아직 그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독점이든 아니든 성공했으면 이런 논란이 발생하지 않았을 터다. 특수가 사라졌으니, 과거에 중계권을 가진 사업자는 '거 봐라'이러는 중이고, 오늘 중계권을 가진 사업자는 '너희 때문이다'라고 하는 중이다. 지상파는 지상파대로 방송협회를 내세워 다시 중계권 권력을 가져오려고 국부 유출이라면 프레이밍을 하고 있는 중이고, jtbc는 jtbc대로 이 상황을 어떻게든 넘어가 보려 애를 쓰는 중이다.


우선 중계권이 특정 사업자에게 넘어갔다는 것 그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하자. 실시간 방송의 우위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스포츠 중계고, 특히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기존 레거시 사업자들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말자. 그러니 희소한 자원을 가지고 사업자들이 스스로의 존망을 걸고 중계권 협상에 나서는 그 자체를 부인하는 건 방송 시장 내 경쟁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나 진배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림픽 중계만을 놓고 보더라도 중계 주체는 상황에 따라서 바뀌어 왔다.


미국은 NBC가 독점 중계권을 장기간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고, 호주는 방송사간 순환 분점을 하다가 이제는 세븐과 나인이 중계권을 두고 경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중동의 경우 일종의 국가 간 연합체인 ASBU에서 belN이 2014년부터 중계권을 확보했고 이를 재판매하는 중이다. 유럽의 경우에도 EBU가 중계권을 확보했다가 최근엔 WBD가 중계권을 확보했었다. 그러나 수익성 확보에 실패하자 지금은 WBD와 EBU가 공동으로 중계권을 확보하는 것으로 바뀐 상태다.


우리도 지상파가 중심이 되어서 공동으로 중계권을 확보했다가, SBS가 중계권 찬탈을 시도했다. 결국은 징계를 받고 공동 중계로 전환되었었다. 이때 단독으로 중계권을 확보할 경우에는 벌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조항이 만들어졌고, 이런 새로운 조건하에 다시 공동 중계권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번에 이 공동 중계권이 무너지고 jtbc 단독 중계로 바뀐 것이다.


중계 주체가 바뀌었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올림픽 특수가 사라졌거나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거나 하진 않았다. 적자를 문제 삼는다면 WBD와 TV 아사히가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도 TV 아사히 문제는 그 전개 과정이 우리와 흡사하다.


반쪽 올림픽이 되었던 모스크바 올림픽이란 특수성도 있지만, 지상파 연합군이 TV 아사히의 중계권 재판매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나 정부의 개입 등을 초래했다는 점 등이 그렇다


흥미로운 건 TV 아사히 (당시엔 NET)의 중계권 단독 확보 이전과 이후 공동 중계권을 확보하는 주체가 Japan Pool에서 Japan Consortium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 글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jtbc가 되었던 지상파 공동이 되었던 현재의 우리 법리 체계에서는 보편적 시청권을 위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현재 올림픽 특수가 발생하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올림픽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면, (시차의 문제든, 중계권 재판매의 문제든) 현재의 보편적 시청권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방송협회의 주장대로 다시 Korea Pool이 정답일 수도 없다. Korea Pool이 비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일 수는 있으나, 중복 중계 등의 문제와 비인기스포츠를 어떻게 취급했는지를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방송협회의 미디어 주권이니 하는 주장은 어설프다.)


개선을 하자고 든다면 '어떻게''무엇'을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그냥 중계권료라는 비용 절감에만 매달리게 되고, 한국의 미디어 환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료 서비스 우선 원칙 같은 워딩이 등장할 개연성도 높다. 그러면서도 채널만 틀면 같은 방송이 나오는 중복 편성은 여전한 그런 이상한 보편적 시청권 제도로 개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보편적 시청권 제도를 개선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나둘씩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가 일본의 Japan Consortium 이다. 왜 형성되었고, 이 과정에서 어떤 보편적 시청권 가치를 획득했으며, 공영방송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1. 1977년, '아사히 쇼크'라는 이름의 선전포고


1977년 3월. 일본 스포츠 중계권 역사는 바로 이 시점을 기준으로 명확히 나눠진다. 당시 일본 방송계는 공영방송인 NHK를 정점으로 니혼 TV, TBS, 후지 TV가 견고한 삼각 편대를 이루며 시장을 분점하고 있었다. NHK야 우리 모두가 아는 압도적인 전국 방송사업자였고, 요미우리 신문 계열의 니혼 TV, 당시 드라마의 왕국으로 군림하던 TBS, 산케이 신문 계열로 트렌디한 예능과 애니메이션을 무리고 급성장하던 후지 TV가 시장 내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아사히 신문 계열이긴 했으나 NET는 '교육전문채널'의 성격이 강했고, 네트워크 규모가 작았던 도쿄 TV는 경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신문사에 비해서 방송시장에서의 존재감이 약했던 NET는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었다. 1957년 일본교육 TV로 시작한 NET는 방송시간의 50% 이상을 교육에, 그리고 30%는 교양을 편성해야 했었기 때문에 시청률 경쟁에서는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NET는 1977년 당시 우정성(현 총무성)으로부터 일반종합방송국 면허를 획득했고, 4월 1일 사명을 TV 아사히로 변경했다. 본격적인 종합 편성 채널로의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이벤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올림픽 단독 중계권 확보였다. 수십 년간 이어온 일본 방송계의 묵시적 신뢰와 질서에 대한 일종의 반란이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게임 중계권의 4~5배가 넘는 20억 엔이란 비용을 지불하면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독점권을 확보한 것이다. 교육 채널이란 낡은 이미지를 걷어내고, 메이저 방송사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단기 처방이었다. 적어도 해당 사업자로서는 충분히 해 볼만한 딜이었다.


다만 당시 일본은 수용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이후 일본 미디어사에 '아사히 쇼크'라는 이름의 깊은 흉터로 남았다. 이전까지 NHK를 중심으로 한 민영방송사업자들이 단합해서 IOC로부터 중계권을 확보했던 관행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전화위복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TV 아사히 이후에 일본의 올림픽 중계는 보다 폭넓고 깊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2. 시장의 발작과 각계의 반응: 누구를 위한 전파인가


TV 아사히의 독주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처절할 정도로 냉담하고 격렬했다. 기득권을 위협받은 NHK와 주류 민영 방송사들은 이를 방송계의 상도의를 저버린 배신행위로 규정하며 즉각적인 전면전을 선포했다. 일본 TV의 고위 임원은 '공동교섭 형식을 깨고 중계권료까지 치솟게 만들었으니 NET로부터는 절대 영상을 받지 않겠다'라고 공언했고, 타 방송사들은 아사히의 중계 시간대에 맞춰 파괴적인 보복 편성을 예고했다. 결과적으로 TV 아사히는 재판매에 실패했고, 말 그대로 단독 중계를 해야만 했다. 고작 커버리지 60% 밖에 없는 채널 1개 만을 소유한 방송사로서는 할 게 없었다. (일본의 방송법에는 커버리지 조항도 없었다)


시민들의 불안 역시 극에 달했다. 머니 게임의 결과로 특정 채널에서만 올림픽을 봐야 한다는 사실은 시청권 침해 논란으로 번졌다. 이는 지방 거주자들에게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축제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공포를 안겨주었다. 우정대신은 참의원 체신위원회에서 '방송법 취지상 국민 누구나 볼 수 있는 형태로 가져가야 한다'라고 답변했고, NHK 회장·민방련 회장·TV 아사히 사장이 국회 참고인으로 출석해 심의가 진행됐다. 언론은 이를 두고 '스포츠의 사유화'라고 규정하며 방송사의 탐욕을 연일 지탄했으며, 당시의 사설들은 '방송의 전파는 국민의 자산이지 방송사 경영진의 도박 자금이 아니다'라며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TV 아사히는 이 부족한 커버리지를 메우기 위해 다른 계열사(TBS나 니혼 TV 가맹국)에 프로그램을 팔려고 했으나, 키국(Key Station)들이 "아사히의 중계권은 절대 사주지 말라"라고 지방 가맹국들에 지침을 내리면서 재판매 길이 막혔다. 결국 아사히 계열사가 없는 지역은 올림픽 중계에서 영구히 소외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NHK 조차도 아사히의 중계권을 구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 올림픽이 성대하게 치러졌더라면 역사는 단독 중계의 가치를 재평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TV 아사히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모스크바 올림픽이 서방이 참여하지 않는 반쪽짜리가 되면서 일본 정부도 불참을 선언했다. 독점권을 쥐고 기세등등했던 TV 아사히는 당초 206시간으로 계획했던 방송을 44시간으로 대폭 축소해야 했고, 개회식 시청률은 역대 최저인 11.2%에 그치는 굴욕을 당했다. (유료방송이 없었던 시대에서 11.2%는 현재의 1% 시청률과 맞먹는다)


일본 선수단이 나가지 않는 올림픽은 광고주들에게 아무런 매력이 없었으며, 독점 중계권은 순식간에 방송사를 옥죄는 거대한 짐으로 변했다. 사실상 독점 중계권의 가치는 제로가 되었다. 20억 엔의 투자를 집행했지만, 결과적으로 50억 엔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는 일본 방송 역사상 가장 비싼 '수업료'를 치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를 시장은 목격하고 있었다. 독점은 승자의 전리품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대외 변수 앞에서 방송사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라는 사실이었다. '독점의 공멸'을 확인한 방송사들은 그제야 비로소 각자도생의 경쟁보다 안전한 공생이 낫다는 현실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TV 아사히가 올림픽 독점 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에도 공동으로 중계권을 확보해 오긴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도 손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확인한 사업자들은 조금 더 엄밀한 장치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바로 꼼꼼한 계약으로 정리된 '프로-컨소시엄(Pro-Consortium)'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3. JC의 등장. 새로운 구조를 짜다.


그 뼈아픈 반성 위에서 1984년 로스앤젤레스 하계올림픽을 기점으로 NHK와 민간방송연맹(JBA)이 참여하는 공동 취재·중계 조직 등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Japan Consortium 이 구성되었다. (여전히 이 시기를 '재팬 풀(Japan Pool, JP)'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공식적으로 JC란 이름을 사용한 시기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의 Japan Pool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새로운 Japan Pool이고, 여기서부터 수정 보완되어 JC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1984년부터 JC란 용어를 사용한다.)


여기서 우리가 짚어봐야 할 대목은 세 가지다. 분담비율과, 편성 정책. 그리고 시청권 보장에 관한 내용이다.


1) 분담비율


1964년 도쿄 올림픽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의 재팬 풀 시대에는 명문화된 분담 비율이 없었다. 당시 지상파 전국망을 완비한 곳은 NHK 뿐이었으며, 민영사들은 전국 송출 인프라가 미비했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로 인해 중계권료의 대부분은 NHK가 책임졌다. 당시 NHK는 전체 비용의 약 85~90%를 홀로 감당했으며, 민영 방송 연합은 10~15% 내외의 상징적인 금액만 분담했다. 1976년 몬트리올에서는 NHK 86.7%, 민방련 13.3%였다.


이는 NHK가 공영방송의 책무를 명분으로 기술적 주도권과 재무적 리스크를 동시에 짊어진 결과였다. 민영사들은 낮은 비용으로 NHK의 인프라를 활용했고, NHK는 이를 통해 방송계의 절대적 리더 지위를 유지했다. 이 시기의 분담은 협상보다 NHK의 압도적 부담에 기반한 관례에 가까웠다.


여기에는 아직 상업적인 성공을 제대로 거두지 못한 민영방송을 성장시키겠다는 우정성의 방침도 있었지만, 모든 국민에게 올림픽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NHK가 가진 채널 2개의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NHK의 공적 임무를 제대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영방송사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NHK의 부담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달리 해석하면 NHK에게 부여된 공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민간 사업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아사히 쇼크로 시작된 JC에서는 두 번 다시 아사히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느슨한 관계가 아니라 문서화된 조직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파국적 경쟁을 막기 위한 '생존 계약'에 모든 사업자들이 동의한 것이다. 이때 중계권료 분담 비율이 처음으로 명문화되었다.


1988년 서울부터 2000년 시드니까지는 NHK 80%, 민방련 20%로 조정됐다. 이후 2004년 아테네에서는 NHK 75%, 민방련 25%로 민방의 비율이 한층 높아졌고, NHK 수신료 불납 사태 등의 내부 논의를 거쳐 2006년 토리노 올림픽을 기점으로 현재의 'NHK 70%, 민방련 30%' 구조가 확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재판 풀 시절 90%에 육박하던 NHK의 부담이 70%로 조정된 것은 전략적 선택이었다. NHK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되 민영사의 책임을 30%로 고정함으로써 자신의 재무적 부담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체제는 일본 특유의 '조율과 합의' 문화가 미디어 비즈니스에 투영된 결과물이었다. JC는 이후 40년 가까이 올림픽과 월드컵을 공동 취재하며 일본을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는 국가로 만들었다. 최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당시, 폭등한 중계권료를 감당하기 위해 NHK·TV아사히·후지 TV가 IT 기업인 사이버에이전트(ABEMA)를 파트너로 수용한 사례는 이 체제가 기득권 수호를 넘어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얼마나 유연하고 실용적으로 진화해 왔는지를 증명한다.


2) 편성 방식


Japan Pool 방식과 JC 시대의 결정적인 차이는 편성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이전에는 사실상 편성 정책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급적 모든 국민에게 올림픽 경기를 중계하는 것이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2개 채널만을 가진 NHK의 한계로 시작한 모델이다.


민영방송의 경우에도 특정 방송을 할당할 경우 보지 못하는 시청자 군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A라는 민영방송사가 22개 현을 커버하고 있고, B라는 민영 방송사가 10개의 현을 커버하고 있는데 중복지역이 7개고, 중복되지 않은 지역이 상당수라고 가정해 보자. 이럴 경우 특정 종목을 할당하게 되면 못 보는 경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중복 편성을 당연히 인정하는 구조였다. IOC에서 보내주는 장면을 흘려주면 민영방송사는 선별적으로 편성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당연히 인기 높은 종목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셈이다. 우정성도 이를 막지 않았고, 90% 가까운 비용을 지불한 NHK도 이를 차단하지 않았다. 그게 공영이 할 역할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NHK도 양보하지 않았다. 사실상 100%의 시청 커버리지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NHK이기에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인기 있는 경기를 방송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러나 전국 방송도 아닌 아사히가 중계권을 독점하게 되는 상황이 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1980년대, 아직은 약하지만 다채널 시대가 열리는 시기였다.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겹치면서 커버리지가 많이 확보되는 상황이었다. 민영사의 지역적 커버리지 공백(Blank Area) 문제는 해당 지역에 계열사가 없는 방송사가 타 방송사의 채널을 빌려 송출하는 '크로스 네트(Cross-net)' 협약과 NHK 위성 채널의 보완 방송을 통해 해결함으로써 전 국민 시청권 침해 논란을 원천 차단했다. 이런 물리적 구조가 마련되자, 이제는 중복 편성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서 1 종목 1 채널이라는 철저한 '안티-카부리(Anti-Kavuri, 중복 편성 금지)' 원칙이 등장했다.


이는 같은 시간에 여러 채널에서 똑같은 축구 경기를 내보내는 낭비를 막고, 시청자가 채널을 돌릴 때마다 다양한 스포츠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시스템이다. 한쪽 채널에서 유도가 한창일 때, 다른 채널에서는 수영 예선이 흐르고, 또 다른 채널에서는 비인기 종목의 사투가 방영된다. 이것이 일본이 정의하는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시청'이다. 한국의 자칭 코리아풀이 인기 경기를 동시에 송출하며 전파를 낭비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더 신기한 것은 NHK의 편성이다. 비인기 종목의 처리 방식은 두 시대의 공익적 책무 수준을 가르는 핵심 지표다. 재팬 풀 시대에 비인기 종목은 사실상 중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체계적인 역할 분담이 없었기에 모든 방송사가 시장성이 높은 인기 종목에만 집중했고, 비용의 90%를 부담한 NHK조차 대규모 지출에 대한 시청률 성과를 증명하기 위해 인기 경기 중계에 화력을 집중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인기 종목은 중복 편성되는 반면, 비인기 종목은 어느 채널에서도 송출되지 않는 불균형이 고착되었다.


그러나 재팬 컨소시엄 시대에는 비인기 종목 중계가 NHK의 확고한 공적 의무로 제도화되었다. 컨소시엄 내부의 역할 분담에 따라 민영 방송사들이 광고 수익이 보장되는 주요 경기를 순번제로 배정받는 대신, NHK는 지상파와 위성(BS), 그리고 이후의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하여 상업성이 낮은 비인기 종목과 예선 경기를 전담하기로 합의했다. 물론 이 대가로 민영방송의 분담비율은 높아지고 NHK의 분담비율은 낮아지는 효과도 있었다. 기술 발전으로 확보된 풍부한 채널 자원을 비인기 종목에 적극 할당하게 된 것이며, 이를 통해 일본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넓은 중계 범위를 확보한 올림픽 방송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다.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종목들을 공영방송이 책임짐으로써 스포츠의 다양성을 지켜내는 것이다. 민영 방송사들은 광고 수익이 보장되는 인기 종목을 나누어 맡으며 경영적 안정을 꾀한다. 또한 최고 인기 콘텐츠 역시 내부 편성 내규에 따른 순번제나 제비 뽑기를 통해 배분함으로써 누구도 독점하지 않기에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는 구조를 완성했다.


3) 무료 시청권의 개념의 등장


이 대목에서 무료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해석하는 데는 맥락이 필요하다. TV 아사히 독점 중계권 확보 이전의 Japan Pool 시대는 유료방송이 존재하지 않았던 무료 지상파 시대였다. 따라서 아사히 쇼크 이후에 무료 시청권이 등장했다고 하면 말장난처럼 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사히 쇼크가 의미하는 것은 무료 방송사라도 전국 송출망이 없으면 일본 국민 모두가 올림픽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의 재확인이었다. 즉, 전국망이 결여된 무료는 보편적 시청권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단순히 지불하는 돈이 없다는 의미의 무료가 아니라, 서비스가 존재하는데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의 무료다. 없는 것이 무료라는 건 언어도단이기 때문이다.


JC에서는 '무료(Free-to-Air)'라는 개념과 'NHK 전국망(National Network)'이라는 인프라를 하나의 불가분 한 패키지로 결합했다. "올림픽 중계는 반드시 100% 전국 도달을 보장하는 NHK를 포함해야 하며, 동시에 시청자에게 추가 비용을 요구하지 않는 무료 지상파 체제여야 한다"는 원칙을 제도화한 것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아사히 쇼크 이후 JC 참여사들은 스스로 운영 규약을 계약화했다. 이에 따르면 "전국 송출을 보장하지 못하는 단독 계약은 시청권 침해로 간주하며, 반드시 NHK와 연합하여 무료 지상파로 보낸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일본 방송법의 대대적인 조문 개정이 아니라, '민사적 계약이 공적 규제를 대신하는 자율 규제 모델'을 완성한 셈이다. 이것이 JC가 천명하는 무료 시청권이란 용어의 의미이고, 이를 두고 일본 언론학계에서는 지상파에 의한 보편적 서비스의 확립으로 규정했었다.


물론 이는 일본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다. 여전히 지상파 직접 수신가구가 40%에 이르는 나라다. 전 국민에게 올림픽을 전송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무료 지상파 중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기에 NHK는 단 한 푼의 CPS도 받지 않고 있고, 후지 TV 등도 아주 보수적인 수준의 채널 사용료를 유료방송사업자에게 받고 있다.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구조다.



4.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형식은 특정 국가의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기에 특정 국가의 모델을 참고할 때는 그 형식이 아니라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의 JC 모델은 독점이 시장을 얼마나 황폐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처절한 반성에서 시작되었다. 1977년의 혼란을 거쳐 완성된 이 시스템은 이제 비용 분담과 편성원칙, 시청권 보장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NHK의 역할이 가장 컸다. 시청자의 수신료만으로 운영된다는 것의 의미가 JC의 구조를 결정짓는데 핵심 요소였다. 일본은 독점의 리스크를 '연대'로 해결했고, 기술의 변화를 '수용'으로 대처했다.


이 가치에 집중해 보자.


일단 일본 JC를 참고하더라도 지상파 중심의 컨소시엄이라는 형식적 틀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았으면 한다. 무료라는 말을 앞세우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사실상 전 국민이 유료방송 시스템 속에 있는데, 이를 두고 무료를 이야기하는 것은 민망하다. 유료방송 가입률이 90%를 넘는 시대에 지상파만이 보편적 시청권의 유일한 보루라는 주장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변화한 환경에 맞춰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더 다양한 시각과 안정적인 시청 환경을 제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40년 전 일본이 파국 속에서 건져 올린 진정한 교훈이자, 오늘날 우리가 마주해야 할 본질이다. 한 사업자 단독으로는 국민적 성원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면 이제는 공생의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할 때다.


KBS의 수신료가 일본 대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공영군이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고 비인기 종목도 중계하는 식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보다는 레거시 사업자의 기회요소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공유하면서


앞으로 논의해야 할 KC (Korea Consortium)에는


1) 희망하는 채널사업자들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하며 (실질적으로는 지상파 + 종편 정도 되지 않을까)

2) 채널당 인기 스포츠와 비인기 스포츠의 매핑을 통해 중복 편성을 지양해야 하며

3) 분담 비율에 대한 합리적 조정이 필요하다.

4) 필요하다면 전체 광고 수익을 분담 비율에 맞추어 나누어가지는 틀을 구성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오늘 벌어지고 있는 올림픽 중계와 관련된 보편적 시청권 논쟁을 통해서 레거시 방송사업자들이 OTT가 확보하지 못하는 희소자원인 국제적 이벤트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To be continued)




보편적 시청권 개정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

1) 일본의 J-콘소시움과 보편적 시청권
2) 중계권 혼란과 BBC의 중계권 편성
3) 유럽이 정한 보편적시청권 이벤트
4) 동계올림픽 사상 최고의 수익을 거둔 NBC 중계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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