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전에서 이합집산을 하는 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전망이 있다. 낙관적인 전망과 비관적인 전망. 중립적인 전망은 비관적인 전망의 외교적인 표현일 뿐이다. 비관과 낙관이 전부는 아니다. 비관적이지만 희망을 찾는 것일 수도 있고, 낙관적이지만 절망을 품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글은 비판적이지만 가능성을 읽기 위한 시도다. 시장의 척박함을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도 길이 있음을 애써 찾으려는 시도다.
다행스럽게도 희망이란 미명 하에 억지를 부릴 필요는 없다. 2017년과 비교해서 외부 환경이 나아졌다. 사드로 인해서 에어포켓에만 의지해야 했던 상황이, 이제는 제법 큰 숨을 쉬어도 되는 상황으로 호전되었다. 콘텐츠 관련 주가가 상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발 망중립성 논의도 우리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다. 초고속 서비스의 품질이 떨어지는 곳에서는 우선회선(fast lane)이 콘텐츠 사업자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 초고속 품질이 넘치는 국내 시장에서는 우선회선 그 자체가 콘텐츠 사업자의 경쟁력을 좌우하지는 못한다. 인위적으로 트래픽을 차단하거나 속도를 낮출 경우 우선회선의 효과를 발생시킬 수도 있으나, 이는 반경쟁적 행위라 규제 당국이 제도적으로 금하고 있다. 다만 해외 사업자들에게 망 사용료를 징수할 수 있는 기회는 될 듯싶다.
결국 2018년 글로벌 시장을 강타할 망중립성 논의가 적어도 국내 콘텐츠 시장을 뒤흔들만한 이슈가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2017년과 비교하면 외부 환경은 괜찮다. 2017년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외부 환경이었다면, 2018년은 불확실성이 해소된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환경은 조금 답답하다. 마음은 급한데 몸이 못 따라준다.
더구나 취할 수 있는 대응 방식도 제한적이다. 미국 미디어 사업자들은 합종연횡을 선택했다. AT&T는 타임워너와 짝을 맺길 원하고, 디즈니는 폭스와 결합을 시도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대형 사업자들이 ABC, NBC, CBS 등을 인수하고, AOL이 타임워너를 인수하던 그 시절만큼이나 거대한 시장 개편이 진행 중이다. 다만 우리의 선택지는 아니다. 발생하는 문제의 우선순위와 난이도도 다르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수준도 다르다.
몸집이 크면 겨울이 온다는 것을 훨씬 빨리 느끼지만 선택할 수 있는 대응도 제한적이다. 대형 사업자들이 마치 스타트업처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서 엇박자가 발생하고 넘어지기 일쑤인 상황이 반복될 것이다. 그럼에도 2018년에는 그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사업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 자체가 시장의 활력이다.
다만 정돈되지 못한 활력이다. 그래서 2018년은 난전이다. ‘개’ 판으로서의 난전이 아니라 ‘새’ 판을 벌이기 위한 난전이다. 새로움을 모색하던 사업자는 좀 더 세련됨을 찾고, 이제 새로움을 찾는 사업자는 투박한 길을 걸어야 하지만 그 자체가 시장의 활력을 높이는 한 해다. 당장 무언가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활력은 희망을 품게 한다. 사방이 어둡지만, 빛을 기대할 만한 그런 해가 2018년이다.
2018년 한국의 미디어 시장의 화두는 새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대내외 경영 전략이 사실상 전무하다시피 했던 MBC와 KBS가 꽃단장을 해야 할 시기다. 꽃단장은 신뢰회복이고 저널리즘의 복원이다. 복원을 내세우니 산업적 성장 비전은 연기된다. 조직의 자원은 방송의 공익성과 공영성을 회복하는데 투입될 것이고, 사업은 거드는 정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멀리 보는 한 수보다는 당장 돈이 될 수 있는 일상의 사업이 부각될 것이다. 2018년 재송신료를 재계약하면서 사업자 간 갈등이 노출될 것이다. 당장 평창 올림픽이나 러시아 월드컵 등 대형 이벤트에 목을 매달겠지만, 재무적으로만 따지면 공익 사업화될 가능성이 크다. 자연스럽게 비용 절감이 화두가 되면서, 콘텐츠에 대한 장기적인 전략보다는 방영권만이라도 확보해서 단기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콘텐츠 수급에만 집중할 개연성이 높다.
<굿닥터>로 만들어진 해외 사업자의 관심은 스튜디오 드래곤과 같은 업체가 가져갈 것이다. 다만 마음은 급해서 펼치고자 하는 그림은 넓고 광대할 것이다. 저널리즘도, 디지털도, 그리고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도 논의될 것이다. 그렇게 그동안 눌려있던 욕망과 갈등이 다 쏟아 올라와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그러기에 관전자의 눈에는 난전(亂廛)일 것이고, 그들의 입장에서는 새판 일 것이다. 물이 들어와 큰 사업자들이 배를 띄웠으니, 판이 출렁거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음악시장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인공지능 스피커로 인해서 음악 콘텐츠가 핵심 서비스로 부상하면서 새로운 황금기(the Golden Age)가 열렸다. 사람들의 음악 이용은 늘어났지만, 이용 증가가 고스란히 사업자에게 득이 되는 건 아니다. 수익 여부는 2018년에 결판난다.
현재 국내의 인공지능 스피커는 특정 음악 서비스와 결합해서 제공하고 있다. 사실상 스피커를 무료에 가깝게 주는 구조다. 이 사업의 성패는 인공지능 스피커 구매 1년 뒤 이용자가 해당 음악 서비스를 재구매할지 여부에 달려 있다. 재구매 비율이 높다라면, 사업자는 단기적으로 스피커 비용이 손실이 되더라도, 장기적으론 수익을 확보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인공지능 스피커를 프로모션 할 동기가 발생하게 된다. 자체 음악 서비스가 없는 사업자는 머리를 싸매야 한다. 재구매율이 높다고 하더라도 금전적인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음악 서비스가 없으면 인공지능 기능을 학습할 수 있는 여지도 낮아진다.
그러니 자기 음악 서비스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시장이 인공지능, 특성 음성 UI를 확보할 수 있는 기술력을 중시한다면 더욱 분명하다. 그래서 멜론 주도형 시장에서 새로운 대안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재편의 가능성이 보이면 시장은 부산해진다. 각자 자신들에게 가장 우호적인 판을 짠다. 인공지능 스피커를 만드는 곳은 그곳대로, 멜론 등 플랫폼은 플랫폼대로, 그리고 SM이나 YG와 같은 기획사는 기획사대로 그동안의 질서를 해체하고, 이합집산을 통해 새로운 판을 짜기 시작한다.
그래서 연대다. 연대의 형식은 JV(Joint Venture)다. 인수합병보다는 JV가 위기탈출 넘버원이다. JV의 방향과 참여하는 업종도 2017년보다 훨씬 강화되고 폭넓어질 것이다. 그러나 연대가 복수형이면 연대와 연대 사이에 갈등이 내포되어 있다. 연대는 문법을 공유하고 비전을 공유해야 하는데, 연대와 연대 사이의 갈등이 그것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흐름은 얽히고 고민은 높아지는 시점이 2018년이다.
합종연횡은 질서다. 세로와 가로줄을 정리하는 것이 합종연횡이다. 이합집산은 다른 것이 모이고, 모였던 것이 흩어지는 것이기에 무질서하다. 2018년은 난전 속에서 새판이 싹트고, 판을 키우기 위해서 연대가 일상화된 한 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연대는 합종연횡이 아니라 이합집산이다. 연대의 흐름을 읽으면 세력의 움직임이 읽힌다.
디지털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디지털 퍼스트를 선언했던 중앙일보가 구조조정을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 아닌 소문은 디지털이 미디어 시장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외통수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아날로그라면 선택할 수 있는 지점은 디지털뿐이다. 디지털을 선택한 상황에서도 누구는 복기를 할 것이고, 누구는 타 사업자의 모델을 참고할 것이다.
복원을 꿈꾸는 사업자에게도 대안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대안은 상대적으로 저비용 실험인 디지털일 가능성이 높다. SMR(Smart Media Rep)의 수익이 턱에 차올랐으니 더더욱 그렇고, 코바코(KOBACO)가 온라인 광고 영업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더더욱 디지털 영역에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KBS는 지워버린 예티 프로젝트의 대안을 찾으려고 할 것이고, MBC도 시작하고자 했으나 시작도 못했던 SMC 프로젝트를 논의 선상에 올려 놀 것이다. 2017년 8월에 이 시장에 진입한 JTBC는 본격적으로 디지털 시장을 달굴 것이다. 출판 광고 시장을 가지고 있는 중앙 미디어의 입장에서 디지털은 출판의 미래이고, 영상의 미래라는 점에서 좀 더 공격적일 가능성이 더 높다. (중앙은 대대적으로 사업구조를 조정중이다. 여성중앙도 중단했다.)
2016년에 시장에 진입했던 SBS의 모비딕은 1여 년의 시행착오 끝에 사업 모델을 정교화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광고회사를 자회사로 편입했으니 지상파와 온라인 광고를 연계시키는 그림을 가시화할 것이다.
디지털 시장의 문 밖에서 문고리를 쥐고 언제 열까 고민하는 사업자들도 있다. 디지털 전략을 본격화한 조선은 TV조선을 중심으로 디지털 영상시장에 진입할 시점을 타진하고 있고, tvN도 독자적으로 영상시장에 진입할 시점을 노리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2018년 디지털 시장에서 벌어진다.
tvN의 진입은 해석이 필요하다. CJ E&M은 다이아라는 걸출한 MCN형 사업을 가지고 있고, 최근까지도 케이블 채널인 다이아 채널을 운영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tvN이 독자노선 카드를 만지작 거린다는 것은 기존의 다이아와는 달리 예능이나 웹드라마에 가까운 서비스를 기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레거시인 tvN이 자신들의 문법을 최적화하고 연동할 수 있는 모바일 사업을 하겠다는 의미다. 1인 미디어형 콘텐츠와 기존 미디어는 서로 밀결합하기 힘들다는 것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상황에 따라서는 기존 미디어와의 광고 연계 상품도 그려낼 수 있고, 연예인이 나오는 예능 콘텐츠나 웹드라마를 기획 출시한 후 방송시장으로 확장할 수도 있다.
기존 사업자들의 디지털 진입이 본격화되면, 그동안 이 시장을 지켜냈던 원주민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협력이란 이름으로 레거시와의 공동 작업이 빈번해지겠지만, 결국은 하나의 시장을 놓고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사업자들이다. 모바일 온리를 지향하는 사업자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지점에서건 다 만나야 하는 사업자들이다. 그러기에 2018년은 온라인 터줏대감에게는 자신들의 사업구조와 사업모델 등을 새롭게 정비해야 하는 시점이 될 것이다.
72초가 그러했다. 2017년 72초는 스타트업에서 콘텐츠 사업자로 변모하기 위해 극심한 진통을 앓았다. 세 번에 걸쳐 조직 구조를 흔들고, 이에 맞춰 운영방식을 바꾸어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작 편수는 줄었다. 일련의 단계를 겪으면서 72초 TV는 2018년 IP 사업자로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예정이다. 72초가 겪었던 과정이 소위 디지털 원조 사업자들 모두에게 전방위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대형 사업자들이 진입하면 작은 사업자들은 그들을 피해 다니거나, 협력하거나 아니면 맞서야 한다.
그러나 협력이 결국 종속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피하거나 맞서는 방법뿐이다. 다들 이 지점에서 선택들을 할 것이고 시장에서 판정받을 것이다. 그래서 2018년은 대형 사업자들의 디지털 돌진(Rush)이 이어지고, 디지털 원조는 자신의 운명을 선택해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마주하는 것은 통렬한 한계다. 디지털은 자신의 사업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의 콘텐츠를 디지털 시장에도 유통시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디지털은 산업의 만국 공통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음악이든 쇼핑이든 광고든 영상이든, 디지털로 바뀌는 순간 모두 0과 1의 조합이다. 겉은 다를지 모르나 속은 같다. 그러기에 이 시장에서는 음악이 영상이 될 수 있고, 쇼핑이 광고와 영상이 될 수 있는 시장이다. 말 그대로 디지털을 Trans 해서 새롭게 Formation 하는 것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수익 함수는 결국 f(p, q)인데, 디지털은 p값을 한없이 떨어뜨렸다. 그렇다면 떨어진 p값만큼 q를 늘리는 게임이어야 하지만, 진입장벽이 없이 봇물 터지든 늘어나는 신규 사업자들 때문에 q를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 결국 디지털이란 공간에서는 trans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국내 사업자들은 만국 공통어로서 디지털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자기가 선 자리에서 디지털을 생각할 뿐이다. 시장에서 가장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뉴욕타임스의 매출이 2000년 대비 1/3로 떨어졌고, 미국 시장에서 디지털 전환을 잘 했던 타임(Time Inc.)이 결국 매각되었다는 것은 동일업종에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했다는 것만으로는 생존과 생활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시장에서는 제한적인 의미의 이종 결합이 있을 뿐 대부분 자신의 사업을 디지털화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그래서 2018년은 디지털, 디지털을 내세우지만, 그 발언의 크기만큼 고민도 많아지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아직 해법은 요원하다.
2017년까지 디지털 영상 시장이 1인 미디어가 중심이 되던 시장이었다면, 2018년에는 웹드라마가 주목받는 첫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1인 미디어가 광고와 스폰서십에 기반한 수익 모델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웹드라마는 IP라는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시장이다. 더구나 1인 미디어가 온라인/모바일향 콘텐츠라고 한다면, 웹드라마는 성격에 따라서 방송시장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1인 미디어의 MD가 크리에이터 개인의 인지도에 기반한 스타 마케팅적 요소라고 한다면, 웹드라마는 소규모지만 집단 작업을 우선시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산업적 요소가 훨씬 강하다. 그런 웹드라마가 2018년에는 재무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7년 온라인/모바일 플랫폼 사업자들은 다양한 실험을 했다. 그 실험은 해법을 낳았다. 옥수수는 2016년 오리지널 콘텐츠로 <통: 메모리즈>를 선보였다. 120분 영화를 고려하되, 10분 단위로 영상을 끊어서 제공했다. 그리고 웹툰 시장에서는 보편화된 부분 유료화를 채용했다. 남성들을 위한 영상 콘텐츠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고, 결국 <통: 메모리즈>는 투자 대비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그게 시작이다. 수익모델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되면, 그 모델의 확장 가능성을 검토한다. 옥수수는 <1%의 모든 것>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로 장르 확장을 시도했고 검증받았다. 2017년 하반기에만 옥수수는 <멜로홀릭>에 이어 <회사를 관두는 최고의 순간> 등을 선보였다. 2016년부터 보면 약 20여 편의 모바일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인 셈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모바일 단독 방영권을 확보한 것일 뿐이다. 넷플릭스처럼 콘텐츠를 직접 소유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건 확장이다. <통: 메모리즈>의 투자 비율이 10% 정도에 불과했다면, 점점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 추세가 2018년에는 조금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추정치이긴 하지만 2017년도에 집행한 예산보다 훨씬 많은 투자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YouTube대비 열위를 극복해야 하고, SMR 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 그래서 2016년부터 네이버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그런 네이버가 2017년 손자회사로 연플리를 설립해서 독자 실험을 단행했다. 독자 노선은 일단 주목을 받았다. 단일 시즌만으로 1억 뷰를 돌파한 기록을 수립했고, 연이어서 내놓은 영상물도 젊은 층의 주목을 받았다. 확인된 모델에 대해서는 확장이 있을 뿐이다.
맥락이 있다. 옥수수와 네이버 TV는 둘 다 소위 레거시 콘텐츠를 유통하고 있고, 그 기반 위에서 모바일/온라인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는 사업자다. 레거시와 신규 모델이 결합된 서비스의 경우 대략 8:2의 비율로 레거시 콘텐츠의 이용 점유율이 높다.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YouTube형 1인 미디어가 아니라 레거시 문법을 차용할 수 있는 웹드라마형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카카오TV 등도 가세한다. 영상이 마케팅의 핵심 요소가 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카카오인들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도 나선다. 콘진원을 포함한 여러 기관들이 웹드라마에 투자할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2017년도에도 알음알음으로 진행되었던 콘텐츠 투자가 2018년도에는 어느 정도 규모 있는 투자가 될 모양새다.
이런저런 투자 금액을 다 합산해보면 웹드라마형 콘텐츠에 투입될 규모가 대략 250억 내외는 넘을 것으로 보인다. TV 시장의 관점에서 250억은 대형 드라마 서너 편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지만, 웹드라마 시장에서는 웬만한 시리즈 200편 이상을 찍을 수 있는 규모다. 투자 대비 효율을 제작 편수로 본다면, 이만한 투자가 없다. 그래서 2018년도는 그동안 1인 미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웹드라마가 주역으로 부상하는 한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 브랜디드 콘텐츠(Branded Content)가 거든다. 그럼 인지도를 확보한 웹드라마 사업자들은 제작비를 확보하면서 다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2018년은 웹드라마 전성시대다.
한국 드라마가 태평양을 넘었다. 2017년 ABC는 한국 드라마인 <굿닥터>를 리메이크했다. 결과도 좋았다. <굿닥터>는 18~49세의 평균 시청률이 1.7%로 약 940만이 시청을 했다. 1.7%의 시청률이라고 폄하하지 말자. 동일 시간대에서 1위를 한 The Voice(NBC)의 시청률이 1.9%였다. 1.7%는 상당히 높은 시청률이다. 일각에서는 시즌제가 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시즌제는 성공의 바로미터다. 미국 시장에서 시즌제를 목표로 엄청나게 많은 드라마 파일럿들이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드라마를 리메이크 작품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미국 방송사업자들이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이 마련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굿닥터>는 그 험난하고 자잘한 법률적 규정들을 다 준수하고 포맷 수출이 된 첫 사례다. 이 과정을 통해 국내 사업자들은 북미 시장 포맷 수출의 문법을 익혔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상대적으로 쉽다.
2016년 <판타스틱 듀오>는 국제적인 제작회사인 Banijay International과 손을 잡고 유럽 시장 진출 계약을 체결했다. 2017년 5월 10일 스페인에서 첫 방송을 한 이래로, 5회가 시청률 10%를 넘는 쾌거를 달성하면서 <시즌 2>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였고, 스페인을 넘어서 인근 유럽 지역으로 포맷 수출이 확장될 가능성을 열었다. <판타스틱 듀오> 역시 한국의 포맷 수출의 한 획을 그었다. 소위 <포맷>을 위한 백과사전이 만들어졌고, 이 백과사전에 따라서 해외 어느 지역에 수출하더라도 일정한 가이드와 포맷의 형식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이제는 포맷의 전형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만든 셈이다.
그런가 하면 뉴욕타임스는 2017년 최고의 드라마 쇼를 선정하면서 해외 부문에 당당히 한국 드라마인 <비밀의 숲>(영어명 Stranger)을 올렸다. tvn이란 이름 대신에 netflix의 작품으로 올라간 것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분명하게 South Korean Drama란 용어가 분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예전에도 포맷 수출은 있었다. 그러나 준비된 포맷 수출은 이제 시작이다. 박찬호 선수가 그랬다. 힘들게 조건을 맞추어가며 메이저리그 입성을 했고, 124승을 거두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한국 선수들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했고, 그 뒤로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입성이 줄을 이었다.
<굿닥터>가 한국 콘텐츠의 리메이크로도 미국의 격심한 드라마 시청률 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판타스틱 듀오>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유럽시장에 진출해서 주류 시간대에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으며, <비밀의 숲>이 주목해야 할 해외 방송 프로그램으로 주목을 받았다. 확인되었으니, 해외 방송사업자들이나 기획사들로부터 주목을 받을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더구나 이들 상품들은 과거와는 판권 판매나 포맷 판매의 자잘한 세부 항목들을 일정한 수순대로 다 밟아가면서 제대로 진입한 작품들이다. 시장은 이렇게 열린다. 2018년은 국내 콘텐츠가 해외 사업자의 주목을 받는 해다.
중국시장에서 한국 콘텐츠가 과거의 영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지속적으로 한국 콘텐츠가 중국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긴 했다. 중국인들의 눈에도 같은 듯 다른 한국 콘텐츠가 분명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사드로 인해서 공백이 생겼다. 시장에서 사라지면 그 가치가 온전히 드러난다. 공백 동안 사람들은 가만히 기다리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대안을 찾는다. 그리고 그 대안이 스멀스멀 빈 공백을 채우게 되고, 그때부터 원조 상품은 잊혀진다.
사드 공백 동안 중국은 한국 화장품과 한국 콘텐츠에 대한 대안을 찾았다. 그러니 한국 콘텐츠를 선별하는 것이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자국 콘텐츠 품질이 좋아지면서 시기만을 조율하던 중이었는데, 사드로 인해 그 순간이 ‘훅’ 하고 앞당겨졌다. 여전히 국내 시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 오고 가겠지만, 그럼에도 과거와 같은 일방향은 없다. 깐깐한 거대 시장일 뿐이다. 공동제작 등은 언감생심이고, 그보다는 IP를 통째로 달라고 하는 모양새가 십상이다.
그렇다고 한류가 없다거나 할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방송 시장에서 해외 콘텐츠는 틈새시장이다. 다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틈새시장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메인시장급이니 목을 매달뿐이다. 하지만 그 시장은 우리가 알고 있던 시장이 아니다. 이제는 중국 바라보기에서 중국 ‘도’ 바라봐야 하는 사업자가 된 셈이다.
공백의 틈을 우리도 찾아 나선 건 다행이다. 동남아 시장의 부상이다. 결핍의 결과다. 국내 영상 사업자들은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지불 의사는 낮았고, 불법은 넘쳤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자국 영상 사업자의 영향력이 거대했다. 지난 시기 베트남을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을 열심히 공략한 적이 있지만, 남은 것은 상처였고, 패배였다. 가고자 하는 마음만 컸을 뿐 몸은 지쳐만 갔다.
때지난 콘텐츠를 헐값에 유통시키는, 어쩌면 콘텐츠 시장의 막장에 가까웠다. 중국과 일본이 버티고 있었다면 결코 가지 않았던 시장이다. 그런데 중국이 막혔고, 일본에선 숨 고르기가 시작되었다. 국내 시장에서 수익이 막혀 있던 상황에서 무엇이든 해야 했다. 과거와는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콘텐츠를 단순 판매해서는 일말의 기대도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예전처럼 해당 국가에서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것도 무모하다. 똑같은 실수를 할 수는 없지 않나. SBS는 커머스를 매개로 삼았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진입 전략은 사뭇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가는 방향은 같았다.
주어진 조건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을 인정하고 활용하고자 했다. 인도네시아는 홈쇼핑 사업자와 손을 잡았고, 베트남은 공짜로 콘텐츠를 뿌리다시피 했다. 그리곤 커머스와 연결시키고자 했다. 2017년도가 밑밥을 뿌렸다면, 2018년도에는 싹을 봐야 한다. 가능성을 엿보았으니, 가능성을 현실로 구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뒤죽박죽인 상황도 누군가에겐 기회다. KBS와 MBC가 이런저런 이슈로 무전략을 전략으로 포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KBS미디어는 대만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해외 사업자들이 주도하고 있던 시장이 대만이다. 단순히 콘텐츠를 판매하는 수단으로 접근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KBS가 아니라 KBS미디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렸던 그림이 홈쇼핑 사업자와의 연대다. 수익도 커머스 매출의 일부를 받는 것으로 정리했다. 콘텐츠를 매개로 한 사업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2018년 중반경이면 대만에서 연대에 기반한 채널을 오픈하고, 이 모델은 인근 시장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래서 2018년은 동남아시아의 해다.
직접 진출이 전부는 아니다. 넷플릭스를 통해서 간접 진출을 선택할 수도 있게 되었다. 2017년 JTBC와 CJ E&M은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제공했다. SMR 등의 반발도 있었지만, 그들로서는 선택해야 했다. 중국 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JTBC는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해서라도 수익을 맞추어야 했다. 상대적으로 직접 진출의 노하우나 고리가 없는 JTBC는 2018년에도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할 수밖에 없다. 1년의 경험이 있으니, 조금 더 현실성 있는 콘텐츠 수급 대가를 받을 것이다.
CJ E&M도 마찬가지다. 초기에는 단품 계약이었고, 일부 콘텐츠는 비독점 계약이었다. 그러나 2018년부터는 연간 계약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관계의 차원이 높아졌다. 넷플릭스의 글로벌 전략에 편승해서 일부 콘텐츠의 경우에는 글로벌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비밀의 숲>은 글로벌 레퍼런스를 갖게 되었다. 뉴욕타임스에서 올해 TOP 10 드라마의 하나로 <비밀의 숲>을 선정한 것이다. 소문을 듣고 CJ E&M을 찾아올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생긴 성과다. 이제는 넷플릭스를 활용하는 전략이 달라질 개연성이 있게 된다.
초기에는 매출액 확대가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특정 콘텐츠에 따라서 글로벌 유통을 위한 수단으로 넷플릭스를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선택이 분명해진다. 넷플릭스에 대한 공급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플랫폼 진영이 느껴야 하는 위기감과 조급함은 시차를 가리지 않고 올 것이다.
이렇게 2018년은 해외 그림이 조금은 더 구체화되는 시기다. 확실한 건 중국 이외의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물리적 조건, 그리고 그동안 실행했던 전략의 결과가 보이는 지점. 그래서 해외 전략이 조금 더 면밀하게 바뀔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2018년 한국 사업자가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성과를 보인 첫 해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사방천지에 자신의 몸을 숨기고 은둔하면서 암약할 것이다. 수익을 증가시키는 데 한계를 느끼는 사업자들은 결국 비용 혁신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으나, 지난 수년 동안 지속했던 비용혁신으로 인해서 제작비 등을 경감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나버렸다. 더 이상의 제작 경비 감축은 콘텐츠 사업자나 미디어 사업자의 본원적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결국 고민해야 할 지점은 비용 절감밖에 없다는 대목에서 인공지능이란 이름의 효율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시작은 매우 거칠고 투박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물과 같아서 그릇에 따라서 모양이 바뀌고 성질이 달라지는 것인데, 이걸 인공지능이란 말로 다 통용한다. 추천을 위한 인공지능과 큐레이션을 위한 인공지능은 같은 방법론을 쓰는 다른 상품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인공지능이란 말로 모든 것을 일반화시킨다. 그래서 인공지능이란 말이 편재할 뿐 눈에 보이는 인공지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말이 편재하기에 해당 영역의 사업자들이 부상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말이 씨앗이 되어서 싹을 피운다. 그래서 2018년은 국내 시장에서 미디어 관련 인공지능이 싹을 틔우는 시기가 될 것이다, 아직 열매를 따기에는 이른.
그리고 블록체인과 미디어가 만나 2018년 새로운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이제 정리하자.
2018년은 개판에서 새판을 짜는 한 해다
2018년은 레거시 기업의 디지털 공세가 두드러질 한 해다.
2018년은 웹드라마가 주목받는 한 해다
2018년은 동남아시아에서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드는 한 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위해서
합종연횡이 아닌 이합집산을 통한 연대가 많아지는 한 해다.
엄청 바쁘겠구나.
<미디어와 교육> 7(2)에 실린 글을 EBS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다. 단, 일부 내용은 첨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