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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제국의 완성, 827억 달러는 비싸지 않다

넷플릭스의 WBD 인수를 어떻게 봐야 할까? (1)

넷플릭스가 WBD를 인수한 뒤 벌어질 세상은 한국의 미디어 사업자가 살아가야 할 미래다. 그러기에 영화시장이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넷플릭스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인상평을 넘어서 조금은 꼼꼼하고 세심하게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준비한 글이다.


이래 저래 말이 많다. 넷플릭스의 WBD 인수 이야기다.


2025년 12월 5일, 넷플릭스는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이하 WBD)의 포트폴리오 중 스튜디오(게임 포함), HBO 부문을 약 827억 달러(약 117조 원)에 인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인터넷 시대, 신흥 강자였던 AOL이 WB를 인수했을 때만큼이나 세인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새로운 시대가 왔다고 다들 알고는 있었지만, 스트리밍의 강자가 전통의 미디어 사업자를 인수했으니 말이 많을 수밖에. '스트리밍 전쟁(Streaming Wars)'의 사실상 종전을 선언하는 거대한 사건이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었고, 레거시의 종말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짓는 사람들도 나왔다.


돌이켜 보면 이런 성급한 결론이 그대로 재현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렇다고 변화를 가늠해 보자는 오늘의 욕망을 거두긴 쉽지 않다. 물론 재벌과 연예인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국내 영상 시장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넷플릭스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져가고 있으니 관심을 끊으래야 끊을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둘 이번 인수와 관련된 쟁점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가 인수가격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천문학적인 인수 금액을 두고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기도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100억 불 이상의 M&A가 성공한 경우가 50% 정도에 불과하다곤 하지만, 적어도 이번 계산서만큼은 실패보다는 썩 잘한 가격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


이번 인수는 철저히 넷플릭스와 시너지를 얻을 수 있는 포트폴리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넷플릭스는 WBD를 통째로 삼키는 무모함을 범하지 않았다. 규제 당국의 먹잇감이 되기 딱 좋은 뉴스(CNN)와 스포츠(TNT Sports), 그리고 사양 산업으로 접어든 케이블 채널들을 '디스커버리 글로벌'이라는 별도 법인으로 떼어내는(Spin-off) 선행 작업을 조건으로 걸었다. 다음 편에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인수에 별반 관심이 없었던 넷플릭스가 급선회를 하게 된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규제 리스크는 최소화하고 자산 효율성은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는 점은 분명히 해 두자.


그럼 이 글의 목적인 인수 가격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 보자. 좋은 인수와 나쁜 인수에 대한 절대적 기준은 없다는 점은 기억해 두자. 감당할 수 있으면 좋은 인수이고, 감당할 수 없으면 나쁜 인수다. 시너지가 많이 나면 좋은 인수고, 시너지가 발생하지 않으면 나쁜 인수이기도 하다. 인수 대금을 적정 시점에 회수가능하면 좋은 인수고, 그렇지 못하면 나쁜 인수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절대적인 기준으로 특정 인수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흔히 시가총액이나 성장률 등을 통해 가격을 짐작해 보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럴 때 통상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식은 상대비교다. 시장 변화가 있을 때마다 미디어 시장에서는 인수 합병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오늘의 인수합병과 100% 동일한 사례는 아닐지언정, 상대 비교를 하기에는 충분하다.


그 중에서도 물가나 시장 환경 등 외생 변수를 그나마 통제한다면 최근 10년 이내에 진행되었던 인수합병을 찾아보면 된다. 이 기준에 부합하는 M&A는 2건이다. 바로 2019년도에 이루어졌던 디즈니의 21세기 폭스 인수, 그리고 아마존의 MGM 인수다.


먼저 디즈니-21세기 폭스 인수 건(713억 달러)부터 살펴보자.


2019년 완료된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21세기 폭스 인수는 미디어 산업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복잡한 프로젝트의 하나였지만 구조 자체는 넷플릭스의 이번 딜과 매우 유사하다. 선별적인 인수 구조였고, 그 최종 목적지 또한 '스트리밍 패권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래서 디즈니가 6년 전 보여준 행보는 이번 딜의 선행 지표에 가깝다.

https://www.usatoday.com/story/money/business/2017/12/14/disney-21st-century-fox/945309001/

일단 디즈니는 루퍼트 머독의 21세기 폭스를 통째로 인수하지 않았다. 넷플릭스처럼 디즈니도 폭스를 해체하고 재조립했다. 디즈니가 가져온 것은 오직 '콘텐츠 IP'와 '제작 역량'뿐이었다. <아바타>와 <타이타닉>을 배급한 20세기 폭스 영화 스튜디오, 아카데미상을 휩쓰는 폭스 서치라이트(예술영화 제작사), 그리고 미국 최대의 TV 드라마 제작사인 20세기 폭스 텔레비전이었다. 여기에 성인 타깃의 프리미엄 채널인 FX 네트웍스와 다큐멘터리의 명가 내셔널 지오그래픽, 인도 시장을 지배하는 스타 인디아(위성 TV), 그리고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Hulu)의 경영권까지 확보하며 미래 성장 동력을 쓸어 담았다.


반면, 디즈니의 색깔과 맞지 않거나 규제 당국의 칼날을 피하기 어려운 자산들은 인수하지 않았다. 정치적 색채가 짙은 '폭스 뉴스'와 독과점 우려가 있는 '폭스 스포츠', 그리고 미국법상 소유 제한이 걸려 있는 지상파 방송망인 '폭스 브로드캐스팅'은 인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넷플릭스가 이번 딜에서 뉴스(CNN)와 스포츠 채널을 분리하려는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 규제 리스크를 피하고 알짜 자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1세기 폭스의 자산은 디즈니의 약점들을 완벽하게 보완해 주었다. 흩어졌던 마블 유니버스를 완성했다. 디즈니는 마블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엑스맨>, <데드풀>, <판타스틱 4>의 판권은 폭스 소유였다. 폭스 인수를 통해 남의 집살이를 하던 자식들을 모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로 복귀시킴으로써, 디즈니는 향후 10년 이상의 확실한 먹거리를 확보하게 되었다.


가족용이라는 디즈니의 한계를 넘어선 성인 시장을 개척할 동력을 확보했다는 점도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나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같은 수위 높고 작품성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FX와 서치라이트를 인수함으로써, 훌루와 디즈니+의 콘텐츠 다양성을 확보했다. 또한, 30년 넘게 방영된 성인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을 확보하여 스트리밍 서비스의 핵심인 가입자 체류 시간(Retention)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화룡점정은 테마파크까지 확장 가능한 초대형 프랜차이즈였다. 제임스 카메론의 역대 흥행 1위 작품인 <아바타>는 단순한 영화를 넘어 디즈니 월드의 랜드마크로 확장될 수 있는 최고의 IP였다. IP 최대 사업자인 디즈니로서도 아바타는 탐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가격이다. 초기 합의 가격은 524억 달러였다. 경쟁자 컴캐스트가 뛰어들며 입찰 전쟁이 벌어졌고 최종 가격은 713억 달러(약 95조 원)까지 치솟았다. 당시에도 너무 비싸다는 비판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인수 이후 디즈니는 부채를 감당하느라 재무 건전성이 훼손되었고, 최근 몇 년 동안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을 뿐만 아니라 콘테츠 예산 삭감을 해야만 했다.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 디즈니+가 넷플릭스의 유일한 대항마로 생존할 수 있는 것도 이때의 딜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생존을 위한 필수 비용'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넷플릭스의 부상에 위기감을 느낀 밥 아이거 회장이 "그들을 이기려면 압도적인 양의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결단을 내리고 감행한 승부수였고, 2025년 현재 그 승부수는 상당 부문 유효했다.


당시 디즈니도 뉴스/스포츠를 떼어내고 20세기 폭스 스튜디오와 <아바타>, <엑스맨> IP, 스트리밍 서비스인 훌루(hulu)의 지분의 대가로 713억 달러를 지불했다. 이에 비해 넷플릭스는 워너가 보유한 <해리포터>, <DC 유니버스>를 가져왔다. 6년 전 대비 화폐 가치의 하락을 감안할 때 이번 넷플릭스의 827억 달러 베팅은 과도하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더구나 넷플릭스가 가지고 있지 않은 스튜디오와 HBO의 무게를 감안하면 말이다.


디즈니가 폭스를 삼켜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되었듯, 넷플릭스는 워너를 삼켜 추격 불가능한 '절대 1강'을 굳힐 수 있다면, 그래서 사실상 경쟁 구도를 종식하는 대가로는 크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음으로 아마존의 MGM 인수 건 (85억 달러)을 살펴보자. 이 건은 빅테크가 전통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인수했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딜은 IP의 가치면에서 WBD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baseline)이 될 수 있다. MGM이 가진 IP의 질과 양을 분석하고 이를 워너와 비교해 보면, 왜 두 회사의 인수 대가가 10배나 차이 나는지, 그리고 넷플릭스의 배팅이 과연 합리적인지 판단할 수 있다.


아마존이 지불한 85억 달러 중 절반 이상의 가치는 사실상 <007 제임스 본드>라는 단 하나의 슈퍼 IP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반쪽짜리'다. MGM은 배급권을 가질 뿐, 제작과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결정권은 '이온 프로덕션(Eon Productions)' 가문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이 마음대로 007 스핀오프를 만들거나 드라마화할 수 없는 구조다. 그 외에 <록키>와 그 스핀오프인 <크리드> 정도가 살아있는 IP지만, 마블이나 해리포터와 비교하기엔 체급이 낮다. <로보캅>, <스타게이트> 등은 리부트 잠재력은 있으나 현재 시점에서 돈을 벌어다 주지는 못하고 있는 IP다. 결과적으로 아마존 프라임의 아마존은 4,000편의 영화와 17,000편의 TV 에피소드라는 '양적 자산'을 확보했지만, 폭발적인 신규 가입자를 유치할 '킬러 콘텐츠'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85억 달러를 지불했다.

이에 비해 WBD의 IP는 넘사벽이다. 단순 편수에서도 WBD는 MGM을 압도한다. 특히 TV 에피소드 15만 편은 넷플릭스의 빈 곳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방대하다. MGM이 주말에 가끔 볼 영화를 제공한다면, 워너의 <프렌즈>, <빅뱅이론>은 매일 저녁 틀어놓을 일상을 제공한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가장 중요한 '체류 시간'을 책임지는 힘이 다르다. 더구나 프렌즈 시리즈가 현시점에서도 연간 1.5조 내외의 수익을 거두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확실한 무게차이를 보여준다.

그뿐이 아니다. MGM은 <007>을 제외하곤, 테마파크를 만들거나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팔 수 있는 IP가 거의 없다. 성인 취향의 액션/스릴러가 주류이기 때문이다. 반면 워너의 <해리포터>와 <DC>는 전 연령대를 아우른다. 영화가 흥행에 실패해도 티셔츠와 레고가 팔리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해리포터 존은 매년 수조 원을 긁어모은다. 넷플릭스는 단순한 영상물이 아닌 이 거대한 '수익 생태계(Ecosystem)'를 샀다. 이를 감안했을 때 827억 달러는 비싸다고 보기 어렵다.


아마존은 007 영화 한 편을 찍으려 해도 브로콜리 가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반면, 넷플릭스가 인수하는 워너의 IP들은(원작자와의 협의가 필요한 해리포터를 제외하면) 대부분 100% 통제 가능하다. 넷플릭스 마음대로 드라마를 만들고, 게임을 만들고, 굿즈를 팔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창작의 자유도'가 갖는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다. (인수 당시의 이야기다. 2025년 현재 007 영화에 대한 창작권을 브로콜리/윌슨 가문이 아마존에게 넘겼다.)


아마존이 지불한 85억 달러의 가치로 보면 WBD의 가치는 단순 물량만으로도 5~10배의 가치를 지니고 있고, HBO라는 프리미엄 브랜드와 DC/해리포터의 무한한 확장성, 그리고 경쟁자를 제거할 수 있다는 점까지 감안해야 한다.


단순 산술적으로도 워너브라더스의 가치는 MGM의 10배인 850억 달러를 상회한다. 즉, 넷플릭스의 827억 달러 인수는 겉보기엔 비싸 보이지만, IP의 질과 양, 그리고 미래 확장성을 평가의 잣대로 놓고 보면 비싸지 않다.

이제 정리해 보자.


827억 달러는 넷플릭스에게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연간 영업이익이 100억 달러에 육박하고 현금 흐름(FCF)도 좋은 넷플릭스지만, 당장 인수를 위해서 현금을 지불해야 하기에 당분간 부채 상환에 시달릴 수 있다. 화폐가치는 하락했지만, 이자율이 높다는 점도 분명한 부담이다. 이 때문에 자사주 매입 등을 할 수 없어서 당분간 주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하지만 전략적으로 이보다 더 완벽한 수는 없다. 시장에 남은 '마지막 메이저 스튜디오'인 워너브라더스를 애플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 경쟁자에게 뺏겼다면? 넷플릭스가 입었을 타격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딜의 가격은 싸다고 봐야 한다.



플릭스의 WBD 인수를 어떻게 봐야 할까? (1)플릭스의 WBD 인수를 어떻게 봐야 할까? (1)

넷플릭스의 WBD 인수를 어떻게 봐야 할까?
1. 넷플릭스 제국의 완성, 827억 달러는 비싸지 않다
2. 넷플릭스, 변심의 순간들
3. 넷플릭스는 WBD를 감당할 수 있을까? 딜 조건, 지급 방식, 시너지
워너의 살아온 역사
6. Time-Warner의 화양연화 (~2000)
5. 슈퍼맨으로 흥하고, 아타리로 망하다 (~1989)
4. TV 시대 속 워너 브라더스: 길을 잃은 거인 (~1967)
3. WBD, 전쟁/반독점의 시대를 넘어서 (~1940s)
2. Dark한 캥스터 무비 (1927~1939)
1. Warner Bros. 의 이름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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