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WBD 인수를 어떻게 봐야 할까? (3)
넷플릭스가 WBD를 인수한 뒤 벌어질 세상은 한국의 미디어 사업자가 살아가야 할 미래다. 그러기에 영화시장이 사라질 것이고, 세상은 넷플릭스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인상평을 넘어서 조금은 꼼꼼하고 세심하게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준비한 글이다.
지난 두 번의 글에서 초기에는 WBD 인수에 관심이 없었던 넷플릭스가 1) Kpop Demon Hunters를 통해 IP 사업에 대한 자각, 2) 잠재적 경쟁사업자인 아마존의 비딩 참여, 3) WBD Spin-off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적극적으로 선회했다. 결과적으로 827억 달러를 지불하는 대형 인수 결정을 했지만, 과거 미디어 업계의 딜을 볼 때 이번 딜 가격은 높지 않다고 정리를 했었다. 이번에는 딜이 성사되었을 때 벌어질 일에 대한 글이다. 넷플릭스는 WBD를 감당할 수 있을까? 달리 표현하면 넷플릭스는 어떻게 WBD를 다룰까라는 것이고, 경제적 용어로 한다면 PMI 방식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보자.
딜의 구조와 지불 방법: 철저히 계산된 핀셋 인수와 배드 뱅크 전략
이번 넷플릭스는 철저한 손익 계산에 따라 미래 가치가 있는 자산만 골라내는 ‘핀셋 인수’ 전략을 구사했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할리우드 최대의 제작 기지인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프리미엄 콘텐츠의 대명사인 'HBO'와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 'Max', 그리고 AAA급 게임 개발력을 입증한 'WB Games'다. 넷플릭스가 그토록 갈망하던 프랜차이즈 지식재산권(IP)과 콘텐츠의 질적 깊이, 그리고 게임으로의 확장성을 단번에 해결해 줄 핵심 자산들이다.
반면, 넷플릭스는 소위 '배드 뱅크' 전략을 통해 리스크를 외부로 격리하는 영리함을 보였다. 과거 케이블 TV 시대의 황제였으나 현재는 코드 커팅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CNN, TNT, 유로스포츠, 디스커버리 채널 등의 '글로벌 리니어 네트워크' 사업부는 이번 인수에서 과감히 제외했다. 이들은 'Discovery Global'이라는 별도 법인으로 분사되어 넷플릭스와는 무관한 독립된 길을 가게 된다.
당장의 매출은 디스커버리 글로벌(Discovery Global)로 분리되는 쪽이 3배 가까이 높지만, 시너지가 보이지 않는 CNN 등을 털어내는 대신에, 넷플릭스가 앞으로 성장하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자산들만 선별한 셈이다. 더구나 사양 산업의 구조조정 부담과 막대한 악성 부채를 떠안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번 거래에서 넷플릭스는 인수 대상 자산의 총 기업 가치를 약 827억 달러로 책정했다. 이 중 WBD 주주들에게 실질적으로 지급해야 할 지분 가치는 720억 달러이며, 나머지 107억 달러는 인수하는 알짜 자산에 귀속된 순부채를 넷플릭스가 승계하는 형식을 띤다. 지불 조건은 WBD 주주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주당 총 27.75달러의 대가 중 약 84%에 해당하는 23.25달러를 확정된 현금으로 지급하여 주주들에게 즉각적인 현금화 기회를 제공한다. 나머지 16%인 4.50달러는 넷플릭스 신주로 교부하는데, 이는 WBD 주주들에게도 합병 법인의 미래 성장 과실을 일부 공유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면서 넷플릭스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을 최소화하려는 정교한 밸런싱의 결과다. (한국에서는 경영권만을 인수하지만, 북미에서는 주식 100%를 인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번 딜이 마무리되면 워너의 이름은 상장 시장에서 사라진다.)
자금 조달 계획: 사상 최대의 레버리지 베팅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넷플릭스는 이번 인수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 특히 주주들에게 지급해야 할 현금 600억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창사 이래 가장 공격적인 외부 차입을 감행했다. 보유 현금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이기에, 넷플릭스는 자본 시장의 레버리지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구체적으로 넷플릭스는 현금 지급분인 600억 달러 전액을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월가 대형 투자은행들로 구성된 대주단으로부터 '브리지 론' 형태로 조달하기로 확정했다. 넷플릭스는 이미 약 600억 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 확약을 받아놓은 상태다. 이러한 대규모 단기 차입은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위험을 수반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현금 흐름이 좋은 넷플릭스는 신용 등급 강등으로 인해서 당장의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의미는 없다. 향후 넷플릭스는 인수 절차가 완료되는 즉시 이 단기 차입금을 다양한 만기의 중장기 회사채로 전환하여 상환 압박을 분산시키는 차환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대금인 120억 달러는 넷플릭스 신주를 발행하여 충당한다. 다행히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이 4,300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 규모이기에, 이번 신주 발행 규모는 전체 주식 수의 약 2.8%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최근 단행된 액면분할로 인해 주가가 낮아져 유동성이 풍부해진 점도 긍정적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신주 발행은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 희석을 최소화하면서도 현금 유출을 줄이는 효과적인 완충재 역할을 하게 된다.
정리해 보면 자금 조달 그 자체는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부채 감당 능력
승자의 저주는 보통 차입 금액을 감당하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이번 인수로 인해서 넷플릭스의 총부채는 기존 140억 달러에서 약 840억 달러로 6배가량 폭증하게 된다. 이러한 급격한 부채 증가는 분명 위험한 수준이긴 하다. 그러나 통합 법인의 현금 창출 능력을 면밀히 분석해 보면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월가가 6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선뜻 빌려준 이유도 바로 이 합병 법인의 압도적인 현금 창출 능력을 신뢰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넷플릭스는 현재 자체적으로도 연간 약 100억 달러의 영업이익과 70억에서 90억 달러에 달하는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초우량 기업이다. 여기에 더해 넷플릭스가 인수하는 WBD의 스튜디오와 HBO 부문은 지난 3년간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이미 연간 40억 달러 이상의 EBITDA를 창출하는 알짜 사업으로 변모했다. 특히 만년 적자였던 스트리밍 부문인 Max가 2024년부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는 점은 넷플릭스에게 큰 힘이 된다.
단순 합산만으로도 통합 법인은 연간 약 110억 달러에서 130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이게 된다. 반면, 840억 달러의 부채에 대해 연 5%의 금리를 가정하더라도 연간 이자 비용은 약 42억 달러 수준이다. 즉, 통합 법인은 이자를 갚고도 매년 약 90억 달러 이상의 현금을 남길 수 있는 구조다. 이 잉여 자금을 전액 원금 상환에 투입한다면, 이론적으로 5년에서 6년 내에 인수 부채를 정상 수준으로 감축할 수 있다. 비록 일시적인 신용등급 하락은 불가피하겠지만, 압도적인 현금 흐름 덕분에 부도 위험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넷플릭스 주식 가치
다만 당분간 넷플릭스 주식 가치는 하락할 여지는 있다. 중장기적으로 넷플릭스의 성과가 높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지만, 소위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자사주 매입 등의 규모를 축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넷플릭스의 현금 보유액에 대해서 정리를 할 필요가 있겠다. 매년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내는 넷플릭스의 보유 현금은 약 70억 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수익은 의도적으로 재투자되고 환원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현금을 쌓아두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대신 남는 돈으로 자사 주식을 시장에서 사들여 소각하는 공격적인 주주 환원 정책을 펼쳐왔다. 실제로 지난 1년간 넷플릭스는 약 200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여 주가를 부양했다.
거기다 회계상 이익과 실제 현금 유출 사이에는 시차가 존재한다. 넷플릭스는 작품을 만들 때 제작비를 현금으로 선지급하지만, 장부상 비용은 작품이 공개된 후 몇 년에 걸쳐 나뉘어 인식한다. 따라서 장부상 이익이 나더라도 실제로는 신작 제작비로 현금이 계속 빠져나가는 구조다. 결국 넷플릭스의 보유 현금은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버퍼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성장과 주주 환원에 쓰였기 때문에, 이번 600억 달러 인수 자금을 전액 외부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번 딜로 인해 넷플릭스의 재무 정책이 대전환점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600억 달러의 빚이 생긴 이상, 넷플릭스는 향후 3년에서 4년간 자사주 매입을 전면 중단하거나 극도로 축소할 개연성이 높다. 기존에는 잉여현금이 생기면 주식을 사서 태우는 것이 1순위였으나, 앞으로는 은행 빚을 갚는 것이 최우선 순위가 된다. 이는 단기적으로 주가 상승 탄력이 둔화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넷플릭스 주주들은 당장의 주가 부양을 포기하는 대신 워너 브라더스라는 미래 성장 엔진을 선택하는 대가를 치르게 되는 셈이다.
향후 수익성: WBD 자산의 기초 체력
최근 5년간 성과를 분석해 보면, WBD의 스튜디오와 스트리밍 사업부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수익 구간에 재진입했다. 워너 스튜디오는 코로나 팬데믹과 파업의 여파를 딛고 정상화되었다. 과거 연간 20억 달러의 적자를 내던 프리미엄 유료 채널인 HBO와 이를 포함한 스트리밍 플랫폼 Max는 2024년 손익분기점을 돌파하고 2025년에는 13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며 완벽한 수익 모델로 탈바꿈했다.
이러한 재무적 턴어라운드는 WBD의 CEO인 데이비드 자슬라브(David M. Zaslav)가 지난 3년간 강력하게 시행한 소위 '피의 구조조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성장'보다는 '수익'을 최우선 가치로 내걸고 미디어 업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고강도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대표적으로 9,000만 달러 이상을 들여 촬영까지 마친 영화 <배트걸>을 개봉도 하지 않고 폐기 처분하여 세금 감면 혜택을 챙겼다. <웨스트월드> 같은 인기 드라마조차 재상영 분담금(Residuals)을 아끼기 위해 플랫폼에서 삭제하는 비정한 결정을 내렸다.
또한, 중복되는 마케팅 및 배급 조직을 통폐합하여 수천 명 단위의 인력을 감축했고, 기술적으로는 HBO Max와 Discovery+의 백엔드를 통합하여 서버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이 과정에서 창작자들의 거센 비난을 피할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방만했던 비용 구조를 뜯어고쳐 현금 흐름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넷플릭스는 WBD를 인수한 이후에 별도의 구조조정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수익을 수확(Harvest)할 수 있는 최상의 상태에서 자산을 넘겨받게 된다.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는 이번 딜의 핵심 요소다. 이번 시너지는 기술 비용의 절감과 가격 결정권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가장 즉각적이고 확실한 시너지는 기술 비용 절감이다. 넷플릭스는 현재 별도로 운영되는 HBO Max 앱과 플랫폼을 완전히 폐기하고, 전 세계 2.8억 명이 사용하는 넷플릭스 앱 내에 'HBO 허브'를 신설하여 콘텐츠만 이관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WBD가 매년 지출하던 수억 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서버 비용, 전송료, 앱 개발 및 유지보수 비용이 즉시 소멸한다. 넷플릭스는 기존에 깔아놓은 인프라에 트래픽만 조금 더 얹으면 되므로 한계 비용이 거의 '0'에 수렴하며, 이는 곧바로 영업이익 증가로 이어진다. 특히 그동안 넷플릭스의 기업 속성을 볼 때 데이터 통합을 위해서라도 HBO MAX를 별도 앱으로 두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기존 HBO MAX의 추천 열위 등이 개선될 것이기에 콘텐츠 활용도도 훨씬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또한 넷플릭스는 통합된 '슈퍼 앱'의 독점적 지위를 활용하여 가격 결정권을 강화할 것이다. 넷플릭스와 HBO가 합쳐진 서비스는 디즈니+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 경쟁사들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콘텐츠 볼륨을 갖게 된다. 이를 근거로 넷플릭스는 HBO 콘텐츠가 포함된 새로운 프리미엄 요금제를 출시하며 가격을 인상할 명분을 얻게 된다. 소비자들은 더 비싼 요금을 내고 그대로 있을지, 아니면 이탈을 할지를 결정해야 하지만, 이것조차 넷플릭스에게는 나쁜 조건이 아니다. 비싼 요금을 벗어나고픈 사람들을 흡수할 수 있는 버퍼, 즉 광고 요금제 서비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가입자 수가 늘어나는 만큼 광고 요금 단가도 인상할 수 있다는 것도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호재다. (개인적으로 통합버전의 Standard 가격이 $30 내외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현재 넷플릭스와 HBO MAX의 Standard 버전의 가격은 각 $17.99와 $18.99도 두 서비스를 동시 가입했을 경우 지급액은 $36.98에 이른다.)
그럼 정말 궁금한 것이 남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딜이 글로벌 미디어 시장과 국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To Be Continued
넷넷플릭스의 WBD 인수를 어떻게 봐야 할까? WBD 인수를 어떻게 봐야 할까? (1)
넷플릭스의 WBD 인수를 어떻게 봐야 할까?
1. 넷플릭스 제국의 완성, 827억 달러는 비싸지 않다
2. 넷플릭스, 변심의 순간들
3. 넷플릭스는 WBD를 감당할 수 있을까? 딜 조건, 지급 방식, 시너지
워너의 살아온 역사
6. Time-Warner의 화양연화 (~2000)
5. 슈퍼맨으로 흥하고, 아타리로 망하다 (~1989)
4. TV 시대 속 워너 브라더스: 길을 잃은 거인 (~1967)
3. WBD, 전쟁/반독점의 시대를 넘어서 (~1940s)
2. Dark한 캥스터 무비 (1927~1939)
1. Warner Bros. 의 이름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