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경계선> 단상
영화 <경계선>
스웨덴, 2019
꽤 오래전에 본 이 영화는 은은하게 모든 부분이 완벽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왓챠를 사용할 때 관람했기 때문에 기억에만 의존해 감상을 적어야 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것 보다 독특한 무언가를 보고 싶다면, 인간의 윤리와 규범의 끝을 슬쩍 건드리고 싶다면 조용히 추천하게 되는 영화다. 그리고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도 이 영화를 이야기한다. 내 기준에서 이 영화만큼 짜릿한 것은 또 없었으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알고 싶어. 나는 못 견디게 좋았어. 너무 좋아서 두 번 볼 수도 없을 만큼 강렬한 관람을 했어.
‘나는 다른 사람들이랑 뭔가 달라’
세상의 기준으로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의 티나(에바 멜란데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외관만으로 그녀에 대한 묘사를 끝내기에 이 인물은 너무나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후각으로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어보지도 못한 희한한 일이다. 세심하고 상냥한 그녀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살려 공항의 출입국 세관 직원으로 일한다. 자라면서 외모로 인해 받아온 손가락질을 벗어나지 못해 부러 인적이 드문 외곽에 살고 있다. 아름답지 않은 자신의 얼굴과 몸을 훑어보는 타인의 눈초리에 단단하면서도 상처 받은 눈을 하고 있는 티나. 그녀의 눈빛이 변하는 것은 일하며 범죄의 냄새를 맡았을 때다. 그녀가 가진 능력은 범인을 추격하고 검거까지 해낸다. 티나는 옳은 일을 따르는 사람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적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도덕 시민이다.
큰 범죄를 잡아내고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보레(에로 밀로노프)라는 남자를 마주치게 된다. 여느 때와 다르게 아무 물증이 없는, 어딘가 수상하고 기묘한 향기. 보레의 몸을 수색한 직원은 몸서리를 치며 사내에게 여성기가 달렸다는 말을 한다. 둘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순응적이고 조심스러운 티나와 어딘가 반항적이게 자유로운 보레와의 만남, 둘의 끌림, 밝혀지는 전설 속의 종족과 출생의 비밀.
티나는 자신이 인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인간인 아버지 밑에서, 염색체로 인한 기형 탓에 예쁜 껍데기를 타고나지는 못했지만 그것조차 무던히 받아들이며 티나를 소침하게 만드는 세상에 적응하고 살았다. 그녀는 어째서 그래야 했을까.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이 만든 것들의 테두리 안에서 자위하고 안심하는 삶을 살았다. 인간의 껍데기 안에 어떤 내용물이 들어차 있는지는 상관이 없다. 인간처럼 생겼기 때문에 인간들이 정해놓은 기준으로 단죄받고 정해진 법에 따라 스스로를 재단하는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모양틀에 들어가려고 꼬리를 자르고 흉터를 감췄다. 세상에 끼어들어 살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
개와 고양이에게는, 자동차와 느티나무에게는 같은 법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지구에 인간이 아닌 유기체가 자의성과 문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그 생물들을 또 인간의 기준으로 어떤 부분은 흠모하고 어떤 부분은 경멸하며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야만적이고 저급하며 열등하다. 이유는 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누군가를 핍박하면서 발전해 왔다. 인간이 할 줄 아는 거라곤 그건 뿐이다.
어째서 맛있어 보이는 벌레를 생으로 오독오독 씹어먹으면 안 되지?
어째서 늘 당연하게 의복을 걸치고 숲을 거닐었을까?
인간은 이렇게나 무해한 생물인데 어째서 동물이 먼저 다가오지 않을까?
왜 같은 코를 달고도 악의의 냄새를 맡을 수 없을까?
여성의 생식기가 남성의 몸 안에 삽입되어 이루어지는 임신과 출산은 인간과 똑같이 경이롭지 않은가?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동화가 마냥 동화가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다들 한 번 즘은 해보지 않았을까?
어째서 인간은 늘 사냥을 하기만 하고 사냥당하는 입장이 되지 않을까?
그것은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들에게 매우 억울한 일 아닐까?
인간이 인간끼리 죄를 묻고 벌을 내리는 것은 인간을 제외한 생물에게 똑같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인데 인간은 어째서 인간을 괴롭힌 것에 대해서만 사과를 할까.
겉가죽을 벗고서도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벌거벗고 숲을 달리는 티나와 보레의 모습에서 화면을 꽉 채우는 자유와 행복감이 느껴진다. 북유럽의 거대한 녹음 사이를 누비는 털이 많고 흰 몸뚱이들. 그제야 깨닫는다. 이들이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시종일관 얼마나 부자연스러웠는지. 낯설었는지. 더 나아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던 것을. 그들은 원래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생물이었던 것이다.
세기의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짜릿한 둘의 섹스에 나는 얼마나 희열을 느꼈던가. 여성에게 돌출 성기가 돋고 여성의 밑에서 다리를 벌리는 남성체의 교합에 나는 짜릿하다 못해 극강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것이다. 평생 보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이런 형태의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뒤통수를 세게 때리는 나무상자 속의 결말과 함께, 인간이 아니어도 마냥 순수한 동화 속 생물이 아닌 주인공과 그 전 연인의 편지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당신은 완벽해.'라는 보레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티나가 지금껏 느껴왔던 세상에 대한 이질감과 소외감을 단숨에 품어주는 말이다. 그 한 마디로 티나는 이 전까지와는 자신을 다르게 느끼게 되었으리라. 스스로에 대한 사유는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타인의 다정한 말 한마디는 지옥에서도 건져질 힘을 갖는다. 감상을 여기까지 쓴 시점에서 다시 말해본다.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신이 더 낫다는 거예요.'
'당신에게 흠 같은 건 없어요.'
'완벽해.'
영화의 원작은 영화 <렛 미 인(2008)>의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소설이다. <렛 미 인> 상영 시에도 굉장히 인상 깊은 관람을 했고 원작 소설까지도 읽었던 나는 지금 목이 빠지게 스웨덴어가 한국어로 번역이 되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중충하고 눅눅한 북유럽 특유의 분위기는 영화에 나온 초록색을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게 만든다.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이런 환상도 있다는 것을 눈앞에 들이대 주고 싶다. 등 뒤에 햇살이 무지개처럼 비치는 얇은 날개를 단 요정이 아니라 인간이 전혀 이해할 필요도 없고 인간에게 사랑을 구걸하지도 않는 환상 말이다. 서로에 대한 침범 없이 본인들의 세상에서 행복하도록 내버려 두기만을 원했던 원주민처럼.
인간은 낯선 것들에 창과 총부터 들이대고 본다. 정복하고 뿌리를 뽑고 그것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만든다.
남성성과 여성성 사이에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윤리와 범죄 사이에
업보와 단죄 사이에
주류와 비주류의 사이에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이 영화를 모두가 봐줬으면 좋겠다.
2019년 작, 스웨덴/덴마크
서늘하고 시원한 숲 공기가 액정 너머까지 느껴지는,
알리 아바시 감독의 보더 라인. <경계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