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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Mar 15. 2022

세상이 이 모양이어도 우리가
함께하면 괜찮을 거야

스페인에서 세계 여성의 날을 보내며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 스페인에서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노동자들의 대규모 동맹 파업이 있었다. 2시간 동안의 부분 파업에서는 전국에서 530만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집회와 문화 행사가 진행되지만 이렇게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파업하는 나라는 스페인이 유일하다고. 


90퍼센트 이상이 여학생들인 우리 수업에서도 다수의 학생들이 파업에 참여해서 수업에 3분의 1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 저녁에는 말라가 시내에서 여성의 날 행진이 있어 동료이자 친구인 파트리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참여하기로 했다.


행진 시작 시간인 저녁 7시가 다가오니 시내 곳곳이 여성의 정의와 존엄을 상징하는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조금 먼저 도착해서 벌써부터 달아오른 거리 분위기에 기분이 고조되어갈 즈음 머리에 보라색 꽃을 꽂고 보라색 립스틱을 바르 파트리가 나타났다. 곧이어 친구들도 여섯일곱 명쯤 나타났는데 대부분이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역시 자기 남자친구의 엄마하고 가는 콘서트에 나를 데려간 파트리다워.


말라가 중심 거리인 Alameda Principal에서 신나는 북소리와 함께 행진이 시작되었고 도로는 피켓을 든 사람들로 가득 찼다. 어린 학생들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이들을 지지하러 나온 남성들도 상당히 많이 보였다. 파트리 말에 따르면 이날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날이니까 남자들은 조용히 함께 하는 게 예의란다.



해가 떨어지고 어둑어둑해지니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행렬은 말라가 관광의 중심지인 라리오스 거리와 대성당을 지나 해안 산책로까지 이어졌다. 스페인에 와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봤다.


정말 신기했던 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집회에 경찰들이 얼마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친구한테 경찰은 없냐고 물어보니 저기 있네 하며 가리키는 곳에 보이는 건 수다 떨고 있는 경찰 세 명.




확성기로 구호 외치며 주도하는 사람이 따로 없고,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구호를 외치면 주변에서 따라 하며 점점 퍼져 나가고, 또 어딘가에서 누군가 외치면 또 우르르 따라 했다. 파트리와 친구들도 정적인 틈을 타서 자기들이 아는 구호들을 외쳐서 다들 따라 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있었던 여성의 날 행진 영상도 봤는데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한국의 행진은 좀 더 비장한 느낌이 있고 여기는 구호를 외치기는 해도 딱히 비장하지는 않고 좀 더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이날 여러 가지 구호를 배웠다. 몇 가지만 써 보면,



De Norte a Sur de Este a Oeste, la lucha sigue cueste lo que cueste.

북쪽에서 남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무슨 일이 있든 싸움은 계속된다.


Con ropa, sin ropa, mi cuerpo no se toca.

입고 있든, 벗고 있든 내 몸 만지지 마.


La policía no me cuida, me cuidan mis amigas.

경찰은 나를 지켜주지 않아. 나를 돌봐주는 건 내 친구들이지.




스페인은 유럽에서 이탈리아와 함께 가부장 사회로 꼽히고, 스페인 안에서도 안달루시아는 가부장적인 분위기로 알려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비하면 성평등에 대한 훨씬 인식이 앞서가는 편이다. 하지만 구호를 듣다 보니 이곳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고,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직 한참인 것 같아 씁쓸했다.





사람들의 피켓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일행 중 몇 명이 피켓을 들고 왔고, 나도 함께 하고 싶어 아쉬운 대로 즉석에서 휴대폰에 전광판 애플리케이션을 깔았다.


이 행진에 참여한 한국인 여성으로서 뭐를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를 썼다. 전광판에서 읽기 좋은 길이인 데다가 혹시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 전광판을 들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거기에 있는 글자가 스페인어가 아닌 것도 신기했는지 몇몇 사람들이 다가왔다.



"이거 무슨 뜻이야?"

"스페인어로 Soy feminista라는 뜻이야. 몇 년 전에 한국에서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를 선언하는 운동이 있었어. "

"와, 멋지다. 사진 찍어가도 돼?"

"그럼!"





'Soy feminista.'라고 말할 때 작은 울렁임이 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소리 내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예전에는 그렇게까지 말하기에는 아는 것도 하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고,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 다음에는 '-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건 그렇게 복잡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인종에 따른 차별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모든 인종은 동등하며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모든 성이 동등하며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그럼 나는 페미니스트다. 이렇게 단순한 사실을 말하는 데 이렇게나 용기가 필요했던 걸까.




여성의 날 다음날은 20대 대통령 선거일이었고, 한국보다 8시간 빠른 곳에 살고 있어 깨어 있는 시간에 개표 결과를 확인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커다란 돌덩이에 짓눌린 것마냥 가슴이 답답했다.


남성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국민의 절반인 여성을 무시하고, 구조적 성차별 같은 건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니 차별은 철저히 개인의 문제일 뿐이며 성범죄에 있어서는 무고죄를 강화해야 한다는 대통령이 끄는 나라에서 여성들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삼십 대 남성들의 표를 얻는 딱 그만큼 잃게 될 여성들의 표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 남성의 한 표는 1.5표라도 되는 줄 알았던 걸까. 그 밖에도 환경 이며 노동 문제며, 겨우 이만큼 나아온 걸음을 한방에 뒤로 돌려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선거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도록 마음의 체기가 가시지 않는다.


애써 지금 감옥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일 때도 독재자가 대통령이던 시절도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보다가 그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목숨을 잃었는지 상기되어 더 무서워졌다, 러시아에서는 대통령 때문에 자국민의 파탄을 넘어서 명분 없는 전쟁으로 평범하게 자기 삶 살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지도자를 잘 뽑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쟁에 선거 결과에 세상 무력해지다가도 정신 똑바로 차리자, 한국에서 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에 있지만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거라고 다짐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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