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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Mar 07. 2020

스페인의 한국어 수업에서 생긴 일




청소 파업


오늘 아침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입구에 그대로 멈춰 섰다. 불금이 한바탕 지나간 토요일 새벽의 홍대가 딱 이럴 거다. 쓰레기통 몇 십 개를 그대로 탈탈 털어놓은 것마냥 복도며 계단이며 쓰레기가 융단처럼 깔려 있다. 전날 요란한 축제라도 있었던 건지.... 살다 살다 이런 쓰레기 파티는 처음 본다.


학생들한테 대체 뭔 일이냐 물어보니 학교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단다.



지금까지 일했던 곳에서도 청소 파업은 종종 있었지만 이 정도로 화끈한 파업은 처음이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란다. 노사 간 갈등의 자세한 내막은 모르나, 그래, 파업을 하려면 이 정도는 임팩트 있게 해야지. 발에 채는 쓰레기를 피해 걸으며 청소 노동의 감사함을 다시금 느꼈다.



버섯 머리


수업에서 외모와 성격을 묘사하는 표현을 공부하던 중 학생 한 명이


"선생님, 한국에서 버섯머리 말해요?"


라고 묻는다. 그렇다며 버섯머리 사진을 찾아서 보여주니 학생들이 박장 대소한다.

스페인에도 'corte de pelo champiñon'이라고 똑같은 표현이 있다는 거다.

신기해 수업이 끝나고 좀 찾아보니 영어에도 있었다. 'mushroom haircut' 더 웃긴 건 이 헤어스타일의 다른 표현이 'bowl cut' 바가지 머리. ㅋㅋ


이 밖에 다른 나라말에도 분명 더 있을 것 같다.

어쩜 전 세계 사람들 생각하는 거 다 똑같은지.




눈이 찢어졌다



같은 수업에서 나온 또 다른 질문.


"선생님, 눈이 크다, 작다, 말하죠? 그럼 아시아 사람들 (손으로 눈을 옆으로 쭉 찢으며) 이런 눈은 어떻게 말해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동양인들을 조롱하는 대표적인 제스처인 눈 찢는 포즈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아시아학과 3학년 학생한테서 볼 줄이야. 놀란 가슴 진정시키며 아시아 사람들한테 그런 행동을 하거나 말을 하면 기분 나빠할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학생은 악의 없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것 같지만, 이게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몇 년간 공부한 대학생이 이걸 몰랐다면 보통 사람들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나 또한 무지해서 누군가를 기분 상하게 하고, 상대방의 반응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배우며 살아왔겠지.

그렇지만, 몰라서 그랬다는 말이 누군가를 상처 주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나부터도 조심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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