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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Feb 10. 2021

매일 밤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

매일 밤 10시 반이면 엄마에게 비디오 콜이 온다. 

한국 시간으로는 6시 반, 엄마는 일어나자마자 침대에 누운 채로, 나는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에 앉은 채로 통화를 한다. 


한국과 스페인의 시차는 8시간. 한국에서 숨 좀 돌릴만한 오후에는 내가 한창 일을 하고, 내가 한가한 시간은 한국이 잘 시간. 그동안 서로의 전화를 무수히 놓쳤다. 시행착오 일 년 오 개월 만에 엄마는 서로의 스케줄을 방해하지 않는 황금 시간대를 찾아낸 것이다. 


우리의 대화 패턴은 늘 이런 식이다.



나: 엄마, 무슨 피부가 이래 좋노. 막 일어났는데 화장한 것처럼 뽀~얗네.

엄마: 야가 뭐라카노. 여도 축 쳐졌제, 저도 쳐졌네, 요새 팍삭 늙었다.

나: 나이 들면 주름 지고 피부 쳐지는 게 당연하지! 그래도 엄마는 아직 50대 초반으로밖에 안 보인다 아이가(아양아양)

엄마: (은근 좋아하심) 아침은 문나?

나: 여기 지금 밤 열한 시 반이다 ㅋㅋㅋ

엄마: 하이고 맞네, 맨날 까먹는다


여기까지 매일 똑같은 인트로가 지나면 조금씩 변주가 일어나는 각자의 하루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한다. 그다음 엄마 곁에 쪼르르 앉아 있는 동물 세 마리, 초코(개 1), 미키(개 2), 옹군(고양이)와 인사를 나눈다. 


내가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애들은 거기 뭐 있니 싶은 표정으로 눈만 끔뻑인다. 엄마는 이것들은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괜히 한번 구박해 보고 우리는 입을 모아 옹군의 미모를 칭찬한다. 


나: 인자 주무셔. 안녕히 주무세요~~

엄마: 야가, 안녕히 주무세요는 무슨, 인자 일나야지.

나: 아 맞네 맞네~ 나도 맨날 까먹노 ㅋㅋ

엄마: 그래, 끊어라. 뿅




몇 년 전 막 웃다가도 돌연 엉엉 울어버리던 불안한 시기를 보낸 적이 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도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에게 내 마음과 상태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뭔가 걱정이 됐는지 그때 엄마는 아침저녁으로 내게 전화를 했었다. 그런 엄마의 걱정과 관심이 갑갑했다. 하루는 나 괜찮으니까 제발 그냥 내버려두라고. 이삼일에 한 번씩만 전화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엄마에게서 영원히 전화가 걸려 오지 않는 날이 오겠지.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도 걸 수 없는 그런 날이. 그때 난 이 순간을 얼마나 후회하게 될까. 지금의 나를 얼마나 미워하게 될까.


그런 날을 아주 약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1초만에 눈물이 차오른다.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하는 미래이지만 언젠가 그날이 왔을 때, 각자의 침대에서 서로의 하루를 바통터치한 이 대화들이 나를 덜 울게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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