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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3,400만원의 배신

첫 근로계약서에서 목격한 2가지 배반

by 유노유보

<희망의 배신>.


1주일 동안 집밖에 나간 적은 이마트에 토요일에 장보러 간 거밖에 없을 정도로 계속 집안에만 있어봤다.

고요했다. 책을 읽은 건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바로 그 시점의 며칠이었다.

<노동의 배신>으로 유명한 바버라 애런라이크의 저서다.


N사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던 그 며칠이 내게는 정말 영겁의 시간이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합격했을까, 불합격했을까 마음 졸이며, 어떤 순간엔 정말 찰나의 시간, 죽으면 어떨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를 정말 많이 도와주셨던, 아르바이트한 회사 사장님의 말이 아니었다면, 어리석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넌 어차피 우리한텐 개잡주야. 상장폐지만 안되면 돼. 어느 순간 확 대박나길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 영겁의 1주일만큼, 나의 투자자들에게, 내 인생의 대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제대로 드릴 수 있는 대장주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 현실은 동전주였으니까. 나한테 자꾸 물타기하는 친구들과, 고마운 분들을 보면 한없이 미안하고, 누가 나한테 작전이라도 안 걸어주나 그런 별 생각을 다 했었다.


그들 중 누군가에게, 자초에게 투자해 진나라의 상국이 된 여불위의 성취감까지는 주지 못하더라도,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그런 만족감을 주고 싶었다.


10주간의 지옥같았던 인턴생활을 견딜 수 있던 것은 오직 그때문이었다.

미안함과 고마움.


첫 커리어를 게임회사로 선택한 것은, 당연히 아무데나 일단 붙여주면 무조건 감사합니다 하고 갈 정신이 있었던 게 가장 컸지만, 어쨌든 난 창세기전, 삼국지, 스타크래프트, 문명, 대항해시대 등 숱한 게임을 매우 좋아하는 헤비 유저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은 "등대"란 말이 뭐 어때서?란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사람들이 누구나 알만한 브랜드샵과 누구나 알만한 식당에서 임직원 카드 35% 할인이 되는 대기업의 게임사업부문으로 들어간다는 것도 나에겐 매력적이었다. 최종 합격의 소식을 들었을 때, 드디어 나에겐 운이 풀리나 하고 생각했다.


정규직 신입사원이 되고나서도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혹독하게 배움과 갈굼의 시간은 계속됐다. 드디어 나의 인신전속성은 오로지 회사와 상사에 있는, 오롯이 '노예'에 가까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나는 회사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것은 한 달에 한 번 꽂히는 280여만원의 돈 때문이었고,

내가 잘못해서, 내가 부족해서 그랬다는 자책때문이었다.


그 시절 밤늦게, 혹은 새벽 1~2시에 집에 들어가 '민물장어의 꿈'이란 노래를 샤워하며 듣곤 했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 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그때 나는 자존심도 남지 못해서 샤워하면서 많이 울었다. 주말 출근 후 오후에 시간이 남아 늦은 오후에 친구들을 만나면 난 늘 임직원 카드 35% 할인이 되는 V식당으로 그들을 데려갔다. 10만원 대 숫자의 맨 앞자리가 5로 바뀐 5자리 숫자로 바뀔 때의 모습을 음미하면서 내 가슴속의 의기를 채웠다.


그땐 그것이 내 자존을 지키는 길이었다.

일터에서는 "애티튜드가 글러먹었다"라는 사수 H의 말, "000님은 곱게 자랐어?" 부터 시작되는 팀장 M의 비아냥, "월급으로 현질도 안해본 놈이 무슨 열정이 있다고"로 시작되는 가스라이팅 (결국 한때는 월급의 20%를 그 회사 게임에 현질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말을 한 이는 다른 PM에게 쿠폰을 얻어서 다이아를 충전하고 있었다.) 으로 시작된 내 자존심의 부식속도는 갈수록 점점 빨라져만 갔다.


임직원 카드를 통해 위세를 부리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자기방어기제였다.


채용공고와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면 이 회사의 신입연봉 초봉은 3400만원이었다.

연봉 3400만원은 2014년, 혼자 사는 자취생에게는 적지 않은 돈으로 느껴졌다.

한달 280만원이 들어왔으니까.

실제 나의 첫 정규직 근로계약서도 그렇게 써져 있었다.

총 연봉 3400만원.

이 "총"이란 말이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회사는 나에게 치트키를 썼다.

"포괄임금제"라는 치트키를.


수년이 지나, 공인노무사가 된 나에게 사업주들은 "근로계약서 컨설팅"이란 걸 의뢰해왔다.

거의 모든 중소기업의 사업주들은 "포괄임금제 근로계약서"를 요구했다.


나의 첫 계약서도 그런 것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악질적인.

나의 기본급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2500만원 정도였다. 800만원이 좀 넘는 돈이 연장 · 야간 · 휴일근로수당을 합친, 그런 포괄임금 근로계약서였다. 그러니까, 나의 월급은 280만원이 아니라 기본급 208만원 정도였고, 연장,야간,휴일 근로를 이미 다 한 것으로 퉁쳐서 66만원을 받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연봉은 3400만원이 맞았던 걸까.

그리고 회사의 기밀유지에 대한 굉장히 포괄적인 이른바 '묻지마' 손해배상에 대한 조항도 있었다.


역시나 공인노무사가 된 뒤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회사에서 생각하는 영업비밀 중 특히 신입사원이 접근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의 상당수는 영업비밀이 아니었다.


영업비밀이란 판례에 의하면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이며, 상당한 노력을 통해 비밀로 유지되는 것인데다가, 경제적 유용성은 해당 정보의 사용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거나 취득 및 개발에 상당한 비용이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신입이 볼 수 있는 정보 중 다수는 영업비밀 요건(비공지성·경제적 가치·상당한 비밀관리)을 충족하지 않는데, 나의 첫 근로계약서는 그야말로 광범위한 손해배상 책임을 묻고 있었다.

그건 신입의 침묵을 확보하기 위한 두 번째 배반이었다.


사회초년생에겐 달콤한 포장으로 슈가코팅된 "핵"이었다.

게임 핵 프로그램과 불법유저는 강력히 제재하겠다는 그 회사는

정작 우리 신입사원들의 근로계약서 속에는 하나같이 "핵"을 깔아놓았다.

그 핵을 걸러내고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디버깅 도구는 아마도 노동조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있던 회사는 당시 노조를 허락하지 않았다.


열정의 강조는 시간과 정신으로까지 확장됐다. 요즘의 열정적인 직원들은 그런 사치를 부릴 시간이나 에너지가 없다. 모든 시간은 회사의 것이다. 휴가를 잊는다. 밤새워 일한다.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이를 때까지 미친 듯 일한다.
구직 활동을 하는 동안 단 한번도 회사의 핵심가치로 언급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 자질이 있다. 다름 아닌 '용기'였다. 엄청난 역경 속에서도 같이 손잡고 변화를 위해 싸울 용기 말이다.
- 바버라 애런라이크, <희망의 배신> 中


나에겐 용기가 부족했다.

대신 당시 방영되던 "미생"을 보며 신기루로도 보이지 않는 완생을 찾아 헤맬 뿐이었다.

나는 나의 첫 근로계약서에서 차갑고 날카로운 배신을 배웠다.

그래도 통장에 숫자가 찍힐 때마다 그 달을 또 버티고 다음 달로 넘어갔다.

그게 내 노동으로 돈을 버는, 어른의 삶이라고 믿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회사명은 실제와 다르게 각색되었으며, 특정 개인이나 법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나 법인, 사건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언급된 특정 상황이나 대화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일부는 작가의 기억과 해석, 창작이 반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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