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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등대의 시간

개가 되느니 등대를 등지기로 했다.

by 유노유보

허리가 아작나기 시작했다.

수면 부족은 디스크에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수면 부족은 일을 못하는 나의 태도, “애티튜드”가 글러먹은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팀에서는 그렇게 이해되었다.


“글로벌 원빌드”, “글로벌화”를 외치는 회사는 내게 더 많은 시간의 할애를 요구했다.

하지만 나도 내 삶과 건강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불안한 긴장상태를 회사에서는 “충분히 기회를 줬는데 애티튜드가 글러먹음”으로 이해를 했다.

원래 있던 이사는 회사를 떠났고,

회사의 조직개편으로 팀 이름은 개편되었다.

그리고 그땐 몰랐으나 나중에 조직개편의 압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짬이 있는 사람들은 다면평가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눠 동귀어진했다.

나는 호구였다.

너무 순진했다.

나는 나를 싫어하든 갈구든 “우리 팀” 사람들에겐 좋게 성과를 주는 게 국룰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니었다.

여러 날의 야근이 겹친 후 가까스로 8시에 퇴근하여 늦은 저녁 약속을 가졌다.

그리고 깜빡했다.

미처 맡은 업무의 리허설 장소를 예약 못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바로 팀장 M이 불렀다.

“다 필요없고, 유노유보님 잠깐 나 좀 봅시다.”

그 다음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너에게 충분히 기회를 줬다고 생각해. 인사팀에서 한 1~2달치 위로금은 챙겨줄테니 권고사직하는 걸로 하자. 뭐 네가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아마 그럼 일반해고로 가는 절차를 밟을 거야. 아마 네가 버티기 쉽지 않을 거야.”


속사포처럼 그의 말은 이어졌다.


“이쯤 됐으니 다 한 번 말해보자. 저번 회식 때, 자전거는 왜 끌고 왔어?"


???


"그렇게 집에 빨리 가고 싶었나? 그런 게 기본적인 태도가 글러먹었다는 거야.”


계속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머리와 입은 마치 고장난 것처럼 뚝딱거렸다.

나는 당시 야근이 너무 잦아 자취방을 회사 근처로 옮겼다.

더 이상 출퇴근할 때 지하철 2호선을 타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회식을 회사 밖에서 했으니, 자전거를 회식장소로 타고 간 게 전부였다.

(마침 회식하는 식당의 상호는 ’가족‘이었다.)


하지만 팀장 M은 만약 그런 이유였다면, 회사에 자전거를 대고 있다가 회식이 끝나면 그때 다시 회사로 가서 자전거를 다시 끌고 오는 게 당연한 예의라고 했다. 더구나 나는 그 회식 당일에 팀장 J가 시킨 업무를 회식 이후 오전까지 끝내놓으란 지시를 받은 상황이었다. 그는 내가 업무를 오전까지 끝내기 위해 회식 1차만 끝내고 갔던 게 불만이었던 걸까.


물론 그도 바보는 아니었을 것이다.

새로운 상무가 온 뒤 첫 회식이 있은 뒤로, 내가 회식을 불편해했음은 꽤 명백해보였을 것이다.


새로 온 상무 J는 대형로펌 출신 변호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형적인” 그 나름의 호의와 아량을 베풀었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첫 회식, 공교롭게도 모든 여자직원들은 1차가 끝나고 빠졌다.

회식 2차가 남자들만 남게 되자, 그는 노래방을 가자고 했다.

그리고 아가씨를 부르라고 했다. 자기가 쏜다고.


여러분들에게 자신이 잘해보자고 하는 거니까, 여러분들도 잘했으면 좋겠다고.

내 옆에는 쫙 붙는 원피스 (요새 말로 하면 동탄 스타일)를 입은 여성이 본인의 몸매를 한껏 드러내며 앉았다. 대각선에는 다른 비슷한 옷차림의 여성이 J에게 “오빠 한 잔 따라드릴게요. 다음엔 나한테도 한 잔 따라줘~”라고 하면서 위스키를 따랐다. 그녀의 “오빠”는 아버지 뻘이었다.


내 옆의 여성도 계속 내게 붙으려고 했다. 나는 정말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살을 닿지 않으려고 허벅지를 움츠렸고, 계속 노래책만 붙잡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구질구질하지만, 난 그래도 진보정당 당원이라고 되뇌면서.

그때 “오빠”가 내게 말했다.

유노유보님. 여자를 싫어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저 여자 좋아합니다!”

“근데 왜 그래?”

“아, 노래 찾는데 열중하느라...제가 한 곡 뽑겠습니다!”

그 쯤 되니 그 여성도 오른쪽 옆의 다른 이에게 붙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수치스러웠다. 사창가를 가는 것만이 꼭 성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들 또한 분명히 성노동자였고, 난 성노동 구매의, “남성연대”의 공범이 되었다. 원치도 않는 사람들과 그런 일을 하는 것을, 그들은 마치 춘추전국시대 소와 말의 피를 나눠 마시는 “혈맹”의 의를 맺듯이 인식하는 것 같았다.


내가 “2차”에 대한 거부감을 갖게 된 것도 그날 이후부터였다.

그날의 기억, 마음이 더러워졌던 장면을 더 이상은 겪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나의 “태도가 글러먹은” 예시를 이야기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내게 말했다.


유노유보님. 가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생각했어. 유노유보님한테는 이게 다 교훈이 될거야. 교훈이 되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니까 이해해주길 바라고. 이걸 통해 뭔가 배우는 게 있었으면 좋겠고.”


...교훈?

그건 교훈이 아니라 처형이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명백한 부당해고였다.

그럼에도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회의실을 나가 텅빈 흰색 벽만 보일 때도,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텅빈 회의실의 냉방 소리만 윙윙거렸다.

평소엔 보이지도 않던 흰색 벽의 미세한 질감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몸이 떨렸고, 가슴은 계속 먹먹했고, “무너진다.”는 감각이 생생했다.


면담이 끝나고 나가, 20층 옥상에 올라가서 말 없이 하늘만 바라봤다. 그냥 문득 생각이 났다.

과거에 진보진영 안에서 연애를 하다 폭행당한 여성의 글이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 글에는 “저는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갖고 있음에도 이렇게 당했다. 그냥, 이렇게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갖고 있음에도 남성의 폭력에 무기력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란 문장이 있었는데, 그때 문득 그 생각이 났다.


난 지난 10여년을 진보정당의 당원으로 살았고, 노동에 관한 나의 권리는 반드시 챙기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문제가 닥쳤을 때, “회사”의 압도적인 힘에 난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머리로 아는 것과 온몸으로 겪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그때 처음으로 사무치게 깨달았다.

그게 너무 억울해서 떨리고 옥상 한 쪽에서 눈물을 삼켰다.


곧이어 인사팀과 면담을 하니, 팀장의 말과는 달랐다.

본인이 퇴사한다고 하셔서 나가시는 거 아니냐, 권고사직 처리는 안 된다. 위로금은 무슨 소리냐고 했다.

나야말로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싶었다.

나는 그럼 일단 자사주를 팔 수 있는 권리가 생기는 내년 2월까지 버틸 요량으로

그럼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3일 뒤, 3개월 전부터 팀에 말해놨던 (3개월 전 내게 대수롭지 않은 듯 알겠다고, 뭐 그런 걸 벌써 말하냐고 말했던 팀장은 출발 3주 전, 그런 걸 왜 상의도 하지 않고 통보를 하는 거냐. 협의를 해야지. 라고 이야기했다.) 러시아 여행을 떠났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장수상회라는 영화를 봤다.

마지막에 눈물이 났는데, 이상하다. 왜 눈물이 멈추질 않는 거지?

불이 꺼진 야간비행의 시간, 그렇게 2~3시간을 계속 울었다.

문득 내가 뭐 한다고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이곳에서의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도, 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착륙 직전, 공항 유리벽에 비친 내 얼굴은 조금 낯설었다.

빛이 아니라, 어둠을 짊어진 사람이 있었다.

그래도 그 어둠은 내 것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 마음 속에는 두근거리는 두 글자의 외침이 자리잡았다.


퇴사

그렇게 나는 등대를 등지기로 정했다.

개가 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개새끼가 되느니 차라리 버려지기로 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회사명은 실제와 다르게 각색되었으며, 특정 개인이나 법인을 비방하거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습니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나 법인, 사건과의 유사성은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언급된 특정 상황이나 대화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며, 일부는 작가의 기억과 해석, 창작이 반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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