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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Aug 21. 2023

커피 쏟았다

노트북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아침 쌍방향 누리교실을 진행하기 위해 머그컵을 키보드와 노트북 사이에 두었다. 학생들은 입장했다. 듀얼 모니터를 확인하기 위해 나도 모르게 손을 움직였나 보다. 수업은 시작되었고 투썸플레이스 길쭉한 컵은 넘어졌다.

즉시, 키보드부터 높이 들었다. 옆에 있던 안경닦이로 커피를 닦았다. 입으로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손은 커피를 닦는다. 노트북은 거치대 위에 있어서 손상 입지 않았다. 책 한 권 흠뻑 젖었다. 노트북 옆에 USB 커넥터에 커피가 흘러가지 않도록 책으로 막았다.

아이들에게 잠시 공유한 화면 읽으라 하고 가까이 있던 수건 가져왔다.

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방금 커피 쏟았어요."

이러한 상황을 두 글자로 뭐라고 하게요?

역시 1학기 내 수업 들은 학생이 먼저 채팅창에 올린다.

"글감"

2021년 3월 3일. 새 학교 부임한 첫 주. 코로나 기간이라 교실에서 커피를 편안하게 마시지 못했다. 믹스커피 한 잔 타서는 교탁 위에 올려두었다. 내 옆에 커피가 있는 것만으로도 여유가 생기는 듯했다. 커피잔 위에는 뚜껑이 있었다. 아이들 하교한 후 따뜻하게 타서 마시면 더 좋을 텐데 습관이 무섭다. 아침에 타 둔 후 아이들 가면 식은 커피를 마셨다.

의자를 뒤로 뺀 후 주변에 도화지와 교과서를 꺼낸 것 같다. 어쩌다 보니 내 의자가 교탁에서 떨어져 있었다. 칠판 앞에 서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다가 의자가 거슬렸는지 의자를 교탁 쪽으로 밀었다.

의자 바퀴가 잘 굴러갔다. 순식간에 의자는 교탁에 부딪쳤고 커피는 쓰러졌다. 전화기 버튼 위에, 그리고 교탁에 깔린 유리 위에.

2학년을 맡고 있는 아이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나는 애써 괜찮은 척했다. 물티슈와 휴지로 아이들에게 피해 가지 않을 만큼만 닦았다.

아이들 4교시 마치고 하교 시킨 후부터 커피와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160센티미터의 교탁 유리판을 들어서 내려놓아야 흘러들어간 커피를 닦을 수 있다.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모두 분리했다. 실물화상기, 전화기 등 앞자리 학생 책상 위에 올렸다. 유리판을 내리기 위해  또 다른 학생 책상 네 개 붙였다. 번쩍 드는 건 무리가 있었다. 무거웠다. 학생 책상에 유리판 절반 정도 걸쳤다.

그리고 물걸레질했다. 유리판 아래에 깔아둔 시간표, 명단, 업무 배정표, 내선전화 등은 커피색으로 변했다. 다시 인쇄해야 한다.

마시지도 않는 커피를 왜 교실에 가져가서 이 짓을 하는 건지. 컴퓨터 본체에서 분리한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다시 연결하면서 후회했다.

그날 이후 커피는 교탁 위에 올리지 않는다. 창가 난간에 올려두거나 뚜껑 있는 페트병 커피를 마신다. 

완벽주의자였다. 반복된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나와 타인 모두에게. 오늘 아침 쌍방향 수업을 하면서 쏟은 커피는 나를 조금 느긋하게 만들었다. 교실에서 쏟은 커피는 교실 전화기 버튼을 뻑뻑하게 만들었고 쓰던 전화기로 교체해야 했지만 오늘은 괜찮았다. 두 권 가지고 있던 책 한 권 흠뻑 젖은 것 빼고는. 소중한 키보드와 노트북 젖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안도했다. 책 말리는 중. 

같은 실수를 반복해놓고도 지금은 내 옆에 카페모카 올려두었다.

또 실수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내가 작가로서 달라진 점은 실수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아이들 앞에 실시간으로 실수하는 모습 중계했고 아이들의 집중력을 얻었다. 나도 순간 애드리브가 되는 모습에 신기하기도 했다. 이미 일어난 실수에 자기 자신을 탓하면 진행 중인 수업에 방해가 된다. 실수는 실수고 현재 해내야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반복해서 하는 실수에 대해서도 너그러움 보여야겠지. 

오늘 나 대신 커피 먹은 책, 남은 부분 읽어야겠다. 



https://blog.naver.com/true1211/22318847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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