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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Oct 02. 2023

한우 구워 먹겠다는 셋째 덕분에


개천절 셋째 딸 생일이다. 며칠 전 한우 맛을 본 셋째 희윤이가 소고기를 구워 먹자고 한다. 오전 라이팅 코치로서 강의와 블로그 포스팅을 마무리한 후 2시에 집을 나섰다. 장난감도, 한우도, 가을 옷도 사려면 30분 거리에 있는 김해 홈플러스가 낫겠다 싶었다.

연휴 기간 동안 희윤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졌는데 마트라도 같이 다녀오니 엄마로서 시간을 낸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진열되어 있는 장난감을 보면서 다 가지고 싶다며 어느 것을 고를지 팔짱 끼고 고민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서른일곱에 낳아 언제 키우나 했던 희윤이가 그만큼 자랐다는 뜻이다. 차에서 자이언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일정도 공유하고 현재 라이팅 코치 진행도 말하다 보니 이은대 대표 이름이 서너 번 나왔다. 듣고 있던 희윤이가 "엄마는 맨날 이은대 이은대 이은대야."라고 말하는 모습에 크게 웃기도 했다. 희윤이가 엄마와 아빠가 대화하는 내용도 다 듣고 말도 받아칠 줄 아는구나 싶어서 이젠 내가 돌볼 일이 줄어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도 가벼워졌다.

셋째 희윤이를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첫 번째, 유네스코 학교를 운영한 연구부장과 도서관 리모델링 추진한 독서 부장으로 2년간 학교 일에만 빠져 살았던 내 삶에 대하여 가정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 점, 두 번째, 희윤이 포한 세 명을 키우면서 '나'를 찾고 싶다는 생각에 줌 활용 작가 수업을 듣게 된 점이다.

학교에만 빠져 있었던 내가 승진을 접고 평교사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점은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고 본다. 승진을 위해 애쓰더라도 가능성이 없었긴 했지만 연구부장을 할 때 이왕이면 승진 쪽으로 준비해 보라는 선배 교사의 말에 귀가 솔깃했었다. 학교 일을 하다가 퇴근 시간을 지키고자 애썼던 기간이 아기 희윤이 키울 때였다. 어린이집 차량 하원 시간 때문에 반강제적인 퇴근이었다. 그러나 그 기간 덕분에 칼퇴도 해보았다. 집과 학교만 오가다가 혼자만 하는 책 읽기가 아니라 함께 하는 자기 계발 분야에 관심 가지게 된 것도 희윤이 덕분이었다. 셋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오늘 라이팅 코치 시작도 없었을 것 같다.

어린이집 차량 대신 태권도 학원 차량으로 하교하는 여덟 살 희윤이. 알아서 현관문도 열고 집에 들어온다. 이제는 칼퇴 대신 학교에서 일을 조금 더 하고 집에 오는 편이지만 학교 일도 작가로 강의 듣고 글 쓰는 일도 모두 균형을 이루어 가는 것 같다. 희윤이가 커가면서 나의 업무에도 연차가 쌓이는 기분이다.

어쩌면 승진 대신 선택한 진로가 작가와 라이팅 코치다. 신기한 점은 밤마다 배우는 내용, 글쓰기가 교실에서도 적용된다는 점. 글 쓰길 잘했다. 생활지도나 업무 진행 같은 학교생활에서 마음이 고단할 때 나는 쓸 수 있다. 이 점이 가장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아이 키우며 일도 해야 하는 직장맘은 자기 자신에게 쓰는 시간을 선물로 주기를 권하고 싶다. 출근에 대한 부담도 백지에 쓴다. 아이 키우며 사랑스러웠던 점도, 일하느라 챙기지 못한 점도 써 본다. 가정마다 흔히 하는 행동인 마트 가기도 오늘은 나에게 특별한 휴식 시간이었고 셋째 챙기는 기회였다고 끼적인다. 이렇게 쓰다 보면 책도 된다. 그냥 지나가 버리는 직장맘의 하루가 글로 누적되어 한 편의 책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다.

우리는 쓸 이야기가 많다. 직장 다니는 엄마들이 작가로 데뷔할 때다. 끈기가 없다고 염려한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글 쓰는 것 싫어하던 내가 에세이 작가가 되었으니 누구나 가능하다.


https://blog.naver.com/true1211/223226457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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