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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Dec 20. 2023

해내는 사람

고생하는 것 질색이었다. 하나 키우고 몸 좀 편해지려고 하면 또 한 명을 낳았다. 그렇게 아이 셋을 낳고 보니 단순하게 하루씩 살아내는 게 마음 편했다. 시간이 빨리 흘러서 아이들 모두 학교 다니기를 바랐다.


근무시간 마무리하면 세상 돌아가는 뉴스도 보고 드라마도 봤다. 드라마 시청 시간은 하루 한 시간 정도. 시청해도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시간은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드라마를 챙겨 보기로 했었다. 이왕이면 이야기에 빠져 직장맘 육아의 고단함을 잊어 볼까 싶어서다. 

학교와 집을 오가며 막내를 다섯 살까지 키웠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육아휴직을 언제쯤 해보나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이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살림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집에 있다고 해서 몸이 편할 리 없을 것 같았다.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딸들이 점점 커갈수록 내가 챙기던 딸아이들의 동선을 아이들 아빠가 챙기기 시작했다. 막내의 돌봄교실, 학습지 선생님, 태권도 학원은 아빠랑 먼저 소통한다. 

학교에서 첫째와 둘째가 아파서 부모 연락이 필요할 때도 아빠 폰으로 먼저 전화가 간다.

계속 일하기로 했다.

잠시 1년 쉬어볼까 생각하고 3일간 서류작업을 했었다. 경기 연구년제 1년 경험한 이영란 작가님이 계획서 쓰는 법을 알려주셨다. 덕분에 나만의 주제도 찾고 잠도 줄여가며 계획서를 반 이상 작성했다. 

여러 해 동안 지원한 선배에게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어렵지 않겠냐는 답변을 얻었다. 대놓고 말리신 것은 아니지만 내가 봐도 불가능해 보였다. 

서류 전형으로만 이루어진 상황에서 내가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증빙 자료가 없었다. 계획서 점수보다 우선 되는 게 증빙 자료였던 거다.

3일간 몰입했던 자료는 폴더에 넣어놓고 다음 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강의가 잡혔고 강의 원고와 정보 동의서를 내야 했다.

앞서 준비하던 서류 작업을 중지한 덕분에 지난주 금요일부터 강의 계획을 싱크 와이즈로 그려봤다. 50개 가지를 그리고 나니 더 이상 사용이 어려웠다.

표에 옮겨서 적어봤다.  블로그 글은 주소를 복사하여 해당 내용 칸에 남겼다. 블로그 기록은 피피티 자료에 쓰일 터다.

토요일 잠실 교보 올라가는 길, 노트북으로 원고 순서를 확정 지었다. 이제 일요일 저녁까지 원고 11장 채우면 급한 서류는 마무리된다.

그런데 공저자 1차 퇴고 안내를 해야 했다. 80페이지 넘는 원고를 읽었다. 내 원고를 이렇게 집중해서 읽고 퇴고 준비를 했다면 벌써 출간되었겠다 싶을 정도였다.

 월요일 저녁 공저자와 만나고 나니 강의 원고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 화요일 마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루 늦어졌다. 

갑자기 모 고등학교에서 강의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방학 시작 날로 일정이 맞추어지니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문제는 이곳의 강의안과 피피티도 오늘, 즉 수요일 마감이었던 거다.

두 개의 마감을 위해 달렸다. 1시까지 작업하다가 잠들었다. 5시에 놀라서 일어났다.

새벽 두 시간의 몰입. 왜 사람들이 새벽형 인간이 되고자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원고를 완성한 후 출근했다. 아침 활동 시간에 오타를 찾고자 읽어보았다.

여러 개 틀린 부분을 찾았다. 수정했다. 학생들이 독서하는 시간에 강의 안에 쓴 내용을

우리 반에 적용해 보기도 했다.

내 수업이 비는 시간에 두 곳에 강의 원고, 정보 동의서, 신분증 사본과 재직 증명서, 원하는 서류를 보내드렸다.

강의까지 끝난 건 아니지만 해냈다는 생각에 피곤도 잊었다. 아이들과 대화할 때도 마음이 여유로웠다. 간간이 챙길 문서가 있어도 하나씩 해결할 수 있었다. 

난 해내는 사람!

자신감이 생겼다.

나의 성장만을 위해 강의하는 것 아니다. 학생들과 책을 만들었고, 한 권씩 나눠주기 위해 학교 예산으로 주문했다.

이 모든 과정이 강의에 활용된다.

해내는 사람이다. 동시에!

1년간 쉬고 싶었고, 남편이 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쉴 수 있는 성향이 아닌 거다. 내 능력으로 내 노력만큼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었다.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 포함이다.

드라마 즐겨 보던 2018년부터 2020년!

4년 동안 학교에서는 늘 고단했던 것 같다. 2018년에도 학급 아이들 생활지도에 어려움 있었다.

2019년에는 2018년에 가르쳤던 학생들 데리고 5학년 올라가면서 학년부장을 맡게 되었다.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다시는 부장 안 하겠다고 했지만 2020년엔 코로나 부장도 하게 되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나를 위한 도전은 하나도 하지 않았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모아보면 2배는 넘을 것 같다.

그리고 꼭 해낸다. 

매일 듣던 강의, 강의 후기 기록이 시작이 되어

무엇이든 해내는 습관을 쌓고 있는 것 같다.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줄 서 있는 일 중에 어떤 것부터 먼저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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