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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Aug 18. 2021

미라클 모닝 대신 미라클 일상

어젯밤. 늦어도 12시 전엔 잠들고 싶었다. <오후의 발견> 함께 글 쓰는 선생님들이 요일을 정하여 줌 호스트를 한다. 수요일 아침 여섯 시, 내가 줌 호스트다. 5시 45분부터 줌을 열어야 한다. 수요일만이라도 참여해야 한다. 막내 희윤이도 나 때문에 자지 않고 폰 가지고 논다. 희윤이 아빠가 재우려고 희윤이를 부른다. 희윤이는 내 옆에서 내가 잠들길 기다린다. 쓰다만 한글파일을 그대로 둔 채 노트북을 닫았다. 12시에 누웠다.
"불을 끄면 어떡해. 나 무섭잖아."
"엄마 옆에 있는데 뭐가 무서워?"
"나는 무서워. 불 켜야 해."
"화장실 불 켜놓고 자자."
안방 화장실 불을 켜 둔 채 다시 누웠다. 이불을 당겨서 덮었다가 발로 찼다가, 덮어 달라 했다가 덥다고 했다가. 내 오른쪽 팔이 저려온다. 30분쯤 지났을까. 조심스레 팔을 뺐다. 12시 30분이다. 나도 자야 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 노트북 닫기 전, 이메일에 저장해둔 원고를 읽었다. '차례를 바꿔야겠네. 내용이 왔다 갔다 해.' 1시다. 5시 45분엔 일어나야겠는데. 바로 벌떡 일어났다. 물을 한잔 마셨다. 그리고 노트북 화면을 켰다. 비번을 넣으니 쓰다만 한글파일이 보인다. 글 순서를 바꿔본다. 오타도 찾았다. '역시 나는 밤에 집중 잘 되더라.' 잘 썼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교단일기를 연결해서 24쪽이나 만들었다. 편집을 끝내니 2시 10분. 내 의자 뒤엔 희윤이가 자고 있다. 책이 많아 책상 아래에 대충 쌓아둔 게 발에 걸리적거린다. 책을 발로 칠 때마다 희윤이가 뒤척인다. 스탠드 불을 껐다. 희윤이는 다시 잘 잔다. 키보드 자판이 안 보인다. '지난번 석환 씨가 키보드 밝게 하는 거 알려주던데 까먹겠네.' 다시 스탠드 불을 켰다. 지금 잠을 잔다면 줌 호스트는 못한다. 회장님이 나 대신하시겠지만 전날 내가 미리 공유한 줌 주소 때문에 선생님들이 방을 헤매실 듯하다. 안 자기로 했다.

개학하자마자 독서교육 강의 일정이 잡혀있다. 방학하면 바로 강의 준비를 하려 했으나 우리 집 아이들도 방학이고 남편은 입원하는 등 바로 일을 시작하지 못했다. '지금 해야겠다.' 전날 작성한 PPT를 열었다. 패드에는 여름에 강의한 PPT 파일도 열었다. 차례를 보며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다. 그림책 PPT도 구글 내 드라이브에 몇 장 저장했다. 구글 저장 모양 누르지 않아도 자동 저장되고 신세계를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림책 배우는 선생님들이 재능기부를 해주셨다. 토요일 2시간 동안 배운 후 바로 써먹는다. 뿌듯하다.

PPT 작업을 하다 보니 카톡이 울렸다. 처음으로 단톡 회원들과 덩달아 새벽 인사도 해본다. 5시 45분! PC카톡으로 줌 주소를 한 번 더 보냈다. 그리고 줌 회의를 시작했다. 새벽형 선생님 두 분이 들어오신다. 희윤이가 깰까 봐 노트북과 줌 모두 음소거를 했다. 얼굴 보고 손 흔든 후 각자의 원고를 1시간 동안 쓰기 시작했다. 7시까지인데 6시 30분쯤 되니 잠이 쏟아진다. 7시 줌 끝나면 희윤이가 일어나기 전에 한 시간이라도 자야겠다.

2020년 1월 22일 아침 7시. 비행기 이륙한다. 설날 연휴에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 시댁에 가기로 했었다. 우연히 비행기표를 검색하다가 이틀만 일정을 당기면 5인 가족 비행기 표가 배보다 훨씬 저렴했다. 일정을 변경했다. 나는 제주도를 가기 위해 연가를 신청했고 석환 씨는 공부방 휴강을 했다. 싸게 가기 위해서 정한 시간이 아침 7시다. 나와 남편은 올빼미형. 안 되겠다. 운전해야 하는 남편은 먼저 자라고 하고 나는 밤새기로 했다. 잡작스레 일정을 이틀 당겼기 때문에 짐을 챙기는 시간도 필요했다. 여행 가방 두 개를 꺼냈다. 3박 4일 치 짐을 쌌다. 막내가 어려서 기저귀도 가져가야 했고 막내용 간편식도 챙겼다. 아이들도 가져갈 게 있다. 이래 저래 챙기다 보니 새벽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5시가 되었다. 김해에 살고 있으니 그나마 남편과 세 자매가 잠을 더 잤다. 깊이 잠들어 있는 식구들을 깨웠다. 유모차도 가져가기로 했기에 짐이 많다. 공항에 주차를 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김해공항 도착하니 6시. 주차 공간이 보이지 않아 주차장을 여러 번 돌고 돌았다. 찬바람에 아이들이 감기 걸릴까 봐 주차하자마자 얼른 공항 건물로 들어갔다. 탑승 수속을 했다. 시간이 빠듯했다. 비행기 자리에 앉자마자 비행기는 움직였다. 휴! 7시다. 비행기가 이륙한다. 잠이 쏟아진다. 제주도 도착하면 차에서 좀 자야겠다.

줌 회의 시작과 여행 출발. 둘이 닮았다. 시간이 정해져 있다. 시간을 놓치면 다시 일정을 잡아야 한다. 잠을 자지 않은 것은 일찍 일어나야 할 시간에 알람을 듣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때문이다. 자다 깨다를 반복할 수도 있고 시간을 놓치고 푹 자버릴 수도 있다. 새벽 줌 회의 그리고 비행기 탑승, 둘 다 잠을 자지 않기로 선택했다. 새벽형 인간이 아닌 내가 특별한 기회로 새벽 시간에 눈을 뜨고 있다.

제주도 가던 날. 밤을 샌 내용은 글로 써 두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방문한 장소만 기억난다. 가기 위해 배표를 비행기표로 바꾸고 새벽에 출발하기 위해 짐을 싸던 나의 경험이 오늘 생각났다. 줌 회의를 위해 하루 잠을 자지 않은 것 덕분에.

일상 속 경험이 밤샌 것 한 가지뿐일까? 미라클 일상을 놓치지 않고 기록해야지. 미라클 모닝은 내 것이 아니지만 미라클 일상은 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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