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 파수꾼

공허한 아픔

by 얼그레이

장소는 폐 기차역, 무심히 공을 주고 받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우정 어린 모습이 펼쳐지지만, 한켠으로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심코 던진 공이 의도치 않은 타격을 주고 때로는 원하는 대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아이, 기태가 죽었다. 친한 무리 중 희준은 전학을 가버렸고, 동윤은 학교를 자퇴했다. 죽은 기태의 아버지, ‘조성하’는 아이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영화는 답답한 전개를 보인다. 과거 회상 장면을 통해 비극의 실마리들이 하나 둘 제공될 뿐. 인물들에게 입체성을 제공하는 장면들은 그 시작이 의욕없는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진행되는 까닭에 끝까지 답답함을 안길 뿐이었다.


부모 컴플렉스가 있는 기태

등장인물에 대해 소개하자면.

기태는 가장 폭력적이고 독단적인 인물.


부모 없이 자란 배경에 주변의 애정을 갈구하는 여린 면을 지니고 있다. 부모님이라면 아버지 뿐인데, 극에서 아버지의 무심한 모습을 볼수록, 기태가 얼마나 불안을 느끼고 관심을 갈구 했었을지 알 수 있다.


희준은 문제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소한 것에도 열등감, 질투심을 느낀다. 희준은 학교 짱인 기태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음에도 그와 동등한 친구로 붙어있는 상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기태가 자신을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태도를 보이자, 비로소 언어적 상처를 남기며 전학을 선택한다.


동윤은 상대적으로 어른스러운 인물. 하지만 고민을 쌓아두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참아내는 쪽이지만 결국 그도 기태와 싸우며 깎아내려진 자신을 견디다 못해 죽음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끝까지 괴로워하면서도 진실을 함구하게 된다.


파수꾼다운 모습을 가진 희준, 그리고 어른스러운 동윤


첫번째 사건은 여자관계로 가까워졌다가 서로를 오해하게 되는 장면.


희준은 보경을 좋아한다. 기태도 보경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기태는 사랑보다 우정을 택했다. 숫기 없는 희준에게 보경과 가까워질 기회를 만들어주는게 희준의 마음을 얻으면서도 우정을 유지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희준을 위한) 월미도 소풍이 성사된다. 하지만 희준이가 확인한 건, 보경이 기태를 좋아한다는 것. 기태는 보경을 불러 단 둘이 대화를 하게 된다. 그들이 나누었을 대화는 뻔하다. “난 너 안좋아해”.


하지만 기태를 바라보는 희준의 태도에 변화가 발생한다.


자신의 마음이 들킨 점, 기태가 일부러 져준다는 느낌은 희준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태에게 화를 내며 관계가 어긋난다.


단 둘이 있는 보경, 기태를 본 희준


두 번째 사건은 기태의 콤플렉스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기태는 무리들 중에서 독단적이고 아이들을 아랫사람으로 두는 상황을 잘 만든다. 먼저 허세를 잘 부린다. 나쁜 허세는 아닌데, 남들의 관심을 끌 목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힘이 세다. 가끔 감정이 폭발하며, 눈빛 하나만으로 아이들을 제압하고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지나친 자신감이 거짓말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어머니가 없는 기태는 부모님에 대한 에피소드가 없다. 부모님 이야기가 나올 때, 주변부로 물러나는 상황을 참지 못하고 얼토당토 않는 말을 꾸며낸다. 그리고 주변의 비웃음을 산다.


거짓 에피소드라는 신호를 주고 받는 희준


이 사건을 계기로 기태는 희준을 아랫사람 대하며 무시한다. 가족이 있는 그를 질투해서였는지, 학교 짱으로 군림한 자신을 무시해서 였는지, 학우들 보는 가운데 그의 머리를 때리거나 망을 보라며 모욕감을 준다.


견디지 못한 희준은 “너 같은 친구 둔 적 없다”며 전학을 간다. 기태는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지만, 희준의 마음은 닫혀 있었다. 그저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길 바라는 시간이 흐를 뿐이었다.


이 후, 기태는 동윤과도 각을 세우게 된다. 희준이 사라져서 였을까? 기태는 무리의 정점에 더욱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동윤은 기태를 막아서고자 하지만 기태는 동윤의 여자친구인 세정을 모욕하면서 깎아 내린다. 세정의 자살 소동이 기폭제가 되면서 동윤 마저 기태를 떠나게 된다.


“애초부터 너만 없었으면 돼”


혼자 남겨진 기태


셋이기에 의미있었던 그들, 진정 혼자 남겨진 것은 기태, 희준도 아닌 동윤이라는 사실이 인상깊었다.


커다란 고통을 겪었지만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시간들. 목적지 없는 철로 위에서 동윤은 쓰디 쓴 과거의 기억들을 감내하며 기태를 반추하고 있었다.


철로 위에서 최고의 투수가 되겠다는 기태, 그런 기태가 어색한 동윤, 먼 시간을 넘어 씁쓸한 표정으로 알겟다는 표정을 짓는 현재의 동윤이 오버랩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사실 각자가 서로를 너무 잘 안다. 약점까지도, 그래서 상처를 주었고 필요한 순간에는 그저 방관했다. 기태, 희준, 동윤에게도 정작 필요했던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기태가 가진 호승심, 폭력성이 부른 참사라고 보기엔, 그들의 관계가 생각보다 interactive한 측면이 있었다. 큰 변화도 결국 작은 데서 시작하고 단순한 권력 논리가 아니라 각자를 둘러싼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비극의 발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배려, 작은 시도, 그리고 작은 무엇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주변을 바라보는 진심어린 시선과 진정성 있는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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