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으로 시작해 타인으로 끝나는
15분간 말코비치가 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뉴욕에서 꼭두각시 인형 공연을 하는 존 쿠삭은 거리를 전전 긍긍하다 15분간 말코비치가 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언제나 주눅 들고 자신감이 없던 그는 15분간 말코비치가 되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때, 이상할 정도의 집착을 보인다. 늘 한탄만 하던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탈출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자아가 타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판타지와 코믹을 섞고 있지만 전반적인 느낌은 부조화였다.
거리에서도 모욕당하고 지인에게도 무시당하던 주인공은 '말코비치 되기'를 사업화하고 싶어한다. 아내는 헛소리라며 무시하지만 동료 로티는 함께 동업해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존 쿠삭은 로티를 좋아하게 되지만, 로티의 거절로 둘은 비즈니스적 관계로 남게된다.
꼭두각시 인형사였던 그는 자신이 말코비치를 제어하는 데 능력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5분이 아니라 8년간 말코비치로서 살아낼정도로 말이다. 평소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꿈도 사랑도 마음껏 펼쳐나간다. 연기로서 성공한 말코비치의 인생에 꼭두각시 예술가로서 성공한 삶까지 올려 보태준다. 그리고 짝사랑했던 로티의 마음까지도 얻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모든 게 예술처럼 품격 있고 젠틀해 보이는 존 말코비치의 잠재세계에도 경박하고 찌질한 과거가 감춰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존 쿠삭에게 발견되지 못한다.
영화의 말미에는 허무해진 존 쿠삭의 모습이 조명된다 육체를 옮겨 다니던 그가 결국은 자기가 영원히 타인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느낀 것처럼 보였다. 자기 것을 되찾게 되었을 때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 딱히 기쁘지만은 않았지만 돌아온 그를 반겨주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쉽지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렵다. 한 번도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한 사람은 끝까지 남의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고 맴돌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새로운 것을 갈망하기 마련이다. 현실로 돌아온 존 쿠삭은 결국 자신이 사랑하던 여인의 삶을 훔쳐보기 위해 다시 타인의 정신 속으로 들어가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존 쿠삭 같은 사람에게 의식은 끔찍한 저주일 수 있다. 늘 생각하면서 고통받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