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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정 Jul 07. 2019

다시, 안녕하신가요?

5년만에 다시 꺼내는 물음




한국을 뒤덮었던 그때 그 목소리


벌써 5년도 넘은 일입니다. 어느 대학생이 자신이 다니던 학교 내에 붙인 대자보가 큰 반향을 일으킨 일이 있었습니다. 손글씨로 거침없이 써 내려간 그 대자보의 제목은 “안녕들 하십니까” 였는데요. 다들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이슈가 되었던 철도 민영화, 불법 대선개입, 밀양 주민 자살 등의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청년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소문은 SNS를 타고 급속히 확산되어, 비슷한 대자보가 전국의 많은 대학교, 고등학교에까지 붙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생이 굳은 결의로 대자보에 눌러 담은 마음을 다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무엇을 기대하고 어떤 목적으로 글을 썼을지를 추측해본다면, 바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내 옆에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 나처럼 이 땅에서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 말입니다. 그래서 글의 제목은 “안녕들 하십니까”입니다. 대자보는 매일 관성처럼 건조하게 서로의 안녕을 묻고 지내지만 결코 안녕하기 어려운 우리들에게 정말로 안녕한지, '나는 안녕하지 못한데 너도 그러한지' 묻고 있기에 더욱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숨 쉬듯 주고받는 ‘안녕’이란 인사. 그런데 그 말을 건네면서도 ‘그가 정말로 안녕한지’, 그리고 ‘나는 얼마나 안녕한지’,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안녕하세요”라는 말이 내 입을 떠나 상대방의 귀에 무사 착륙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그를 스쳐 지나갔거나, 본론으로 들어가기 바빴던 것은 아닌지요. 그렇게 무심하게 던져져서, 수없이 많은 ‘안녕하세요’가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건 아닐까요. 바쁜 일상 속에 잠시 멈춰서, 자신의 안녕을 점검해볼 손톱만큼의 여유라도 가진 누군가를 기다리며 말이죠.   






다시, 안녕을 묻다


한의원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필히 환자분들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묻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연유로 아프게 되었는지, 악화요인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환자분들 사는 얘기를 들으며 제일 안타까울 때가, 몸이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치료받으러 올 시간을 도무지 낼 수가 없는 분들을 볼 때입니다. 생업 때문에, 시험공부 때문에, 집안일 때문에 자신의 몸 하나 돌볼 여유를 갖지 못한 분들. 그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생계가 걸린 사안이라 어찌할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일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부 중에 맞벌이 아닌 부부가 드물고, 환갑이 넘은 어르신들도 여전히 고된 일을 하시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의원에 내원하는 분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하고, 여유를 잃어버리게 되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합니다. 아무리 치료를 하더라도 생활상의 요인 때문에 다시 아파져서 오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안타까움의 끝에서 만나는 것은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이렇게 삶이 고단한 걸까’하는 근원적인 의문입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것도 아닌데 안녕은 둘째치고 생계가 생(生)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현실을 보고 있으면, 사회학자 오찬호 씨가 말한 '죽도록 노력해서 평범해지는 걸 목표로 하는 사회'의 의미를 통감합니다.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불편함을 동반합니다. 부딪치는 불편함보다 침묵하는 불편함이 언제나 더 감당할 만하기에, 파문이 잠깐 일었다가도 이내 수면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잔잔해집니다. 하지만 작은 파문들이 모여서 커지면 사람들의 눈에 띄고, 수면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이 하나 둘 향하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를 향한 의지가 모여 임계점을 넘으면 결국엔 정말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파문을 일으키려는 시도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안녕들 하십니까’의 물결이 나라를 뒤덮었던 그때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작은 물결 하나를 일으켜볼까 합니다. 다만 이번에는 무대를 정치의 그라운드에서 마음의 그라운드로 옮기고, 오직 하나의 관심사에만 집중하려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나이, 성별, 출신지, 직업, 정치성향은 제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저 모두의 몸과 마음이 건강한지 궁금합니다. 지금 건강하지 못하다면 무엇 때문인지, 건강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그리고 매일 밤 내일을 기대하며 잠드는지. 이 모든 궁금증을 함축하는 질문은 역시 한 문장으로 귀결됩니다.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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