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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정 Jul 14. 2019

안녕하다 말할 수 없다면

행복이 싹트는 토양이란

- '마음 근육' 없는 아이들, 우울증 1년 새 40% 늘어

- 신도림역에만 치킨집 790개, 각자도생 한국 사회의 그늘

- 자살 사망자 10명중 9명 미리 경고신호 보낸다… 가족 21%만 인지

- '장벽’으로 나누거나 출입구-승강기 따로… 한 아파트 두 세상

- '아프니까 청춘' 대신 '아프기만 한 청춘'

- 어릴 때부터 배워가는 '사는 집'의 계급

- 강남 원룸서 남녀 4명 숨진 채 발견... 이산화탄소 질식사 추정


최근 몇 년간의 기사 헤드라인 중 눈이 오래 머물렀던 것들입니다.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 일도 있고, 전에는 주목받지 않았으나 새롭게 대두된 문제들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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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 자살 고성장 시대.. 사회안전망 없이 고령화로 내몰린 한국의 선택

- "부자 아빠 아니라서 미안해"… 뉴욕 한인 자살 급증

- 자녀 여러명 갖고 싶지만... 직장다니기 힘들어

- 25∼39세 취업난 외환위기 후 최악

- '신 계급사회'... 아버지 직업이 합격 가른다

- 남녀고용불평등 여전히 심각

- 입시 '전쟁'... 초등학생 상담 4배 급증


위는 10년 전 기사들에서 골라온 헤드라인입니다. 글의 주제와 부합하는 것들 위주로 뽑았기에 당연히 저의 주관이 반영된 리스트입니다. 사회에 명암이 있다면 암(暗)만 비춘 셈이죠.


그런데 기사나 연구결과는 사실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기사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재편집된 현실이고, 통계도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의 온도를 알기 위해 반드시 온도계를 꽂아 봐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각종 자료와 숫자를 들이대지 않아도 현실의 온도는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지난 10년 간 우리는 얼마나 '안녕'해졌을까요?

그리고 지난날을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십 년 후에는 또 어떤 모습일까요?



 


안녕하시냐는 물음에 "안녕합니다"라고 답할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현실을 마주하는 건 때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수면 위로 꺼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속살들을 마주 대하는 건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은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것처럼 말이죠.


마주 보고 있기 거북스러운 현실을 가장 쉽게 처리하는 방법은 외면하기입니다. 얼굴을 돌려 버리는 겁니다.

“이게 하루 이틀 일이야. 그래서 어쩔 건데.”


그런데 외면하기를 택해도 불편함은 가시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 현실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가 사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위 기사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고, 우리 가족일 수도 있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거대한 쓰레기 산은 눈을 돌린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누구나 처음엔 힘차게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잘 살아 봐야지.”

설사 넘어지더라도 곧바로 좌절로 빠지진 않습니다. 긍정의 힘을 동력삼아 더 열심히 달립니다. 그러다가 두 번.. 세 번.. 계속 주저앉으면 이내 의욕을 잃게 됩니다. 무기력해집니다.


좋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손에 꼭 쥐고 출발했지만 달리다 보니 손안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결국엔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뛰는 걸 멈출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달리 방법이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고 둘째, 그래도 계속 하면 혹시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입니다.


이길 수 없는 게임.  알면서도 계속하는 이유는?



“착각적 통제감과 비현실적 낙관주의는 서로 협동해서 인고의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지금 고생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뭔가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그것이 미래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상관없이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믿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 더 고생해야지 훗날 더 크게 성공할 거라는 믿음에, 현재를 더 고생스럽고 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몰아넣으려 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인고의 착각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 사람들은 불안하니까 그냥 아무거나 한번 해보려고 한다. 아니, 남들이 하는 걸 그냥 따라한다. 매도 같이 맞으면 덜 아프니까.”     


심리학자인 허태균 교수의 책 <어쩌다 한국인>에서 발췌한 부분입니다. 팩트폭력은 날카롭게 우리의 폐부를 찌릅니다. 위의 내용에서 나온 ‘인고의 착각’은 우리를 쳇바퀴 속으로 밀어 넣는 주범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심리적 마지노선을 지켜 주는 최후의 방어선인지도 모릅니다. 착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없어지는 셈이니까요.



무작정 가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안 그래도 힘든 현실에 한숨소리 하나 더 보태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혹자는 '힘든 상황에서도 불굴의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 않느냐'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그렇게 묵묵히 노력하다가 지친 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성공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잘 살아보고자 했지만, 안녕히 지내고 싶지만, 안녕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황무지에서 꽃이 피기는 어렵습니다. 열심히 하는데도 마음처럼 잘 안된다면, 우리 땅이 과연 행복이 피어나기에 좋은 토양인지부터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단순히 열심히 전진하는 것 말고 다른 방향의 무언가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안녕을 묻고 현실을 되짚어 본 것은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라 보면 되겠습니다.

더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름의 해결책도 제시할 것입니다. 긴 논의의 끝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여정에서 우린 막 초입에 들어섰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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