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의 자리에 남은 사랑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배운 이별의 품격

by 참울타리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죽음은 멀리 있는 일이 아니라 매일 스쳐 지나가는 일상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한 남자가, 오랜 세월 사랑했던 아내의 곁에서 조용히 손을 잡고 있었다.


80세의 할머니는 치매로 긴 세월을 요양원에서 보내셨다. 며칠 전,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이미 회생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고, 더 이상의 연명치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제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평안함이었다.


할머니는 뇌출혈에 더해 흡인성 폐렴으로 고통스러워하셨다.

나는 진통제를 꾸준히 투여하며 그녀의 평안함이 유지되게 도왔다. 그런데 보호자분이 선택한 호스피스 병원 “곧 돌아가실 환자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난색을 보였다.


“의식이 없어도 마지막 치료는 필요합니다.”


나는 의료진으로서 그렇게 설명했다. “편안하게 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도 치료의 일부예요.”


며칠 뒤 회진을 돌던 중, 할머니 곁에서 마스크를 쓴 남자가 조용히 손을 쥐고 있었다. 순간 나는 그가 아들인가 싶었지만,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와이프예요. 내가 남편입니다.”


그는 오랜 시간 치매로 고통받은 아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사람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했어요. 기억이 사라지는 자신을 참 힘들어했거든요.”


그는 또 조심스레 물었다. “이틀이면 간다 했는데, 내가 너무 굶기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걸려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지금은 어떤 형태로든 영양을 넣는 게 더 고통스러울 수 있어요. 할머니를 굶기는 게 아니라, 편히 쉬게 해드리는 거예요.”


그의 주름진 손이, 지금까지의 세월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내가 일흔일곱이에요. 할멈은 세 살 많아요. 항상 자기가 먼저라고, 뭐든 앞장섰죠.”


그의 얼굴에 짧은 미소가 스쳤다. 그날 오후, 호스피스 병원은 할머니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삶의 끝은 언제나 쓸쓸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맞이하는 이별이라면, 그 쓸쓸함은 조금 덜 차갑게 느껴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