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남긴 질문
병원에서 급성 질환을 치료하는 일을 하다 보면, 내과의사로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일은 익숙해질 수 없고, 매번 마음 한켠이 조용히 흔들립니다.
어제는 90세가 훌쩍 넘은 할머니 한 분이 호흡 곤란과 의식 저하로 응급실에 오셨습니다. 가족들에 따르면, 이미 두 달 전부터 거의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치료 방향을 정하기 위해 가족 모임을 가졌고, 저는 현재 심장 기능이 빠르게 나빠지고 있으며 여러 검사를 시행하더라도 회복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의학적 판단을 조심스럽게 전했습니다.
가족들은 지난주, 친척 어르신이 무리한 치료 끝에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며, 제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결국 모든 적극적인 치료를 중단하고, 통증 조절을 중심으로 한 편안한 돌봄(comfort care)을 선택하셨습니다.
통증 자극에만 반응하시던 할머니는 오늘 새벽, 평온히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숨결이 잦아들던 그 순간, 고요한 방 안에는 묘한 평화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환자는 동유럽 출신의 80대 할머니였습니다.
치매와 여러 만성질환으로 인해 거동이 불가능하셨고, 욕창이 뼈까지 진행되어 반복적인 감염으로 매달 병원에 입원하곤 하셨습니다.
유일한 가족인 따님은 여러 차례의 호스피스 회의에서도 늘 적극적인 치료만을 고집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매번 항생제 치료를 이어가며, 조금 나아지면 다시 악화되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필요한 치료가 끝난 뒤 퇴원을 권유드렸지만, 따님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하루만 더 유예를 요청하셨습니다.
그 다음 날에는 보험회사에 퇴원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환자분은 입원이 잦아 사회복지팀에서도 익숙한 분이었는데, 퇴원 시점이 다가올 때마다 따님이 감당할 수 없는 부담감에 이런 상황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그날도 30분 넘게 전화를 하며 말씀드렸습니다.
“지금의 치료는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반복되는 고통을 연장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따님은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도 여전히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셨습니다.
그 마음에는 두려움과 죄책감이 엉켜 있었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된 집착과 불안이 느껴졌습니다.
두 사례를 지켜보며 저는 여전히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깊은 혼란과 고통을 남긴다는 것.
그래서 저는 어떤 결정이든, 환자와 가족이 내린 선택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선택의 배경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사랑과 두려움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일련의 경험들이 제게 늘 같은 질문을 남깁니다.
“나는 나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가?”
미워했던 사람도, 사랑했던 사람도 —
이별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깁니다.
우리는 그 ‘헤어짐’에 대해 얼마나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