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감추는 일, 그리고 인간의 존엄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과연 행복일까?

by 참울타리

겨울이 되면 병원은 언제나처럼 환자들로 붐빕니다.

기저질환이 있는 분들이 호흡기 질환으로 상태가 악화되어 오기도 하고,

한 해 동안 미뤄왔던 수술을 디덕터블(deductible) 문제로 연말에 몰아서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늘 겨울의 병원은 ‘만원 사례’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84세 인도인 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치매를 앓고 계셨고, 복부에는 담관암으로 추정되는 선암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복수가 차오르며 극심한 통증이 생겨 복수천자를 받으러 오신 것입니다.

의료 기록에는 이런 메모가 남아 있었습니다.


“가족이 환자에게 암 진단 사실을 알리지 않기를 원함.”


할아버지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셨지만,

그 앞에서 병의 이야기를 나누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따님을 조용히 병실 밖으로 모시고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왜 진단을 아버지께 감추고 계신가요?”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따님은 잠시 눈을 내리깔더니 조용히 이야기했습니다.

“십여 년 전 폐섬유증 진단을 받았을 때도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병을 아셨다면 포기하셨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모르셨기에 끝까지 치료를 받으셨고,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계신 거라 생각해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한참을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지금 기억력이 5분도 지속되지 않는 중증 치매이신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저는 제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싶을 것 같습니다.”



문득 여러 해 전,

레지던트를 시작하기 전 미국에서 경험했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한 가족이 간암 진단을 받은 아내에게 그 사실을 숨긴 채 임상시험 치료를 진행했고,

결국 환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도 저는 깊은 윤리적 혼란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른 문화권의 환자와 가족 앞에서

그때와 똑같은 고민을 다시 하고 있었습니다.

아시아 문화의 뿌리에는 ‘진실보다 보호’를 선택하는 정서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누구든 죽음을 앞두고 살아갑니다.

그 날이 언제인지 알든 모르든,

모든 이별에는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마지막을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인간답게 받아들이고 떠날 준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 어렵습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진실을 감추는 이 마음을,

비난할 수도, 온전히 옳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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