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는 언제나 옳을까. 의사로서, 나는 그 답을 아직 모른다.
79세의 할아버지가 입원했다.
심부전, 만성신부전,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말초혈관질환으로 인한 오른쪽 하지 절단, 심방세동.
교과서에 나오는 온갖 합병증을 다 가지고 계신 듯한 할아버지의 내원 사유는 장관 출혈이었다.
첫날, 중환자실에서 따님과 마주 앉았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현재 상황은 장관 출혈입니다.
다행히 지금은 출혈이 멈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만성신부전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이제는 혈액투석을 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버지가 그동안 투석을 거부해왔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분 뜻을 존중하고 싶지만… 지금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그 말에 담긴 갈등이 느껴졌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의학적으로는 분명한 단계였지만, 감정적으로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요독으로 인해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였다.
의식은 흐릿했고, 대화는 단절되어 있었다.
따님은 결국 투석을 결정했고,
나는 환자의 상태가 일단 안정된 것을 확인한 뒤
그를 일반 내과 병동으로 전원했다.
잠시 동안은 모든 것이 조금 나아진 듯 보였다.
출혈은 멈췄고, 투석이 시작되었고, 수치들도 안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이 호전이 아니라 유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
할아버지를 다시 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닷새 후였다.
왜 다시 중환자실로 전원이 결정되었을까.
그건 사실 좋은 신호가 아니다.
일반 내과 병동으로의 전원이 너무 이른 결정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그곳에서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몸이 버티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담당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야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투석을 시작한 뒤 한동안 의식이 좋아졌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전원된 케이스였다.
그 짧은 호전이, 마치 마지막으로 몸이 내는 신호 같았다.
할아버지의 지친 육체는,
마치 영혼이 이미 떠나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눈은 떠 있었지만, 나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만큼의 의식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간단히 이학적 검사를 마쳤다.
복부는 분명 부풀어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통증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촉진 시 배는 부드럽게, 말랑하게 느껴졌다.
언뜻 보면 단순한 복부팽만 같았지만,
그 부드러움 속에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 있었다.
병실을 나서는 순간, 중환자실 간호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방광 초음파에서 소변이 꽤 많이 차 있는데,
할아버지가 소변을 보지 않으세요.”
짧은 보고였지만,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나는 배뇨관 삽입을 지시했다.
그 뒤로 할아버지의 검사 결과와 다른 분과 전문의들의 노트를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항생제는 이미 여러 날 동안 투여되고 있었다.
그런데 백혈구 수치는 여전히 정상의 서른 배가 넘었고,
문제는 그 수치가 항생제를 쓰고 있음에도 전혀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잠시 후, 간호사가 다시 연락을 줬다.
“선생님, 배뇨관에서도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순간, 등줄기를 타고 싸한 느낌이 올라왔다.
항생제에 반응하지 않는 백혈구 수치,
배뇨관으로도 빠져나오지 않는 소변.
머릿속에 묘한 불안이 스쳤다.
어딘가,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 남아 있었다.
복부 촉진 때 느꼈던 그 말랑한 감촉이 다시 떠올랐다.
그 부드러움이 이상하리만큼 불길했다.
나는 조용히 차트를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예감이 있었다.
결국 복부 CT를 의뢰했다.
그리고 혈전 검사를 확인하던 중,
왼쪽 다리 초음파만 오래전에 시행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양쪽, 특히 절단 부위인 오른쪽 스텀프 부위를 포함한 초음파 검사를 새로 의뢰했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초음파 기사로부터 심부정맥혈전증(DVT) 소견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잠시 뒤, 방사선과 의사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CT 결과, 복강 내 공기가 관찰된다는,
즉 장 천공(pneumoperitoneum) 소견이었다.
어차피 장관 출혈이 얼마 되지 않아 항응고제 사용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장은 혈전보다, 눈앞에 떨어진 장 천공이 먼저였다.
우선 해결해야 할 건 그것뿐이었다.
당직 외과의에게 장 천공 응급 상황을 알리고, 함께 케이스를 검토했다.
결국 수술은 불가능했다.
그 다음은,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 전화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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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 든 할머니의 느릿한 목소리가, 다급한 내 마음과는 대조적으로 차분하게 들려왔다.
그 온도 차이가 오히려 내 조바심을 더 크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곧 옆에 있던 딸에게 전화를 넘겼다.
따님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혈전이 새로 발견된 것, 그리고 장 천공의 소견에 대해서도 자세히 말했다.
따님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란 듯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곧, 조심스레 물었다.
“처음 복부 CT에서는 이상이 없었는데… 지금 와서 왜 장이 터진 건가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덧붙였다.
“혹시… 병원에서 억지로 밥을 먹여서 그런 건 아닌가요?”
참 어이없는 이야기였지만,
상대는 의학에 대해 잘 모르는 환자 보호자였다.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게실은 장관 벽이 약해지고 얇아진 상태이며,
그 부위에서는 출혈이나 천공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게다가 할아버지는 심부전, 신부전, 오래된 고혈압과 당뇨, 고지혈증으로
이미 혈관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말 그대로,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비명을 지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
따님은 이 문제의 해결책을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과서적인 답은 분명했다. 수술.
하지만 내과의의 눈으로 봐도,
할아버지가 수술방에서 살아나오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수술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정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할아버지의 전신 상태로는,
수술을 견디시기 어려워 보입니다.
자세한 부분은 곧 연락드릴 외과 선생님과 상의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환자는 지난 며칠 동안 여러 분과 전문의들이 함께 봐온 분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던 그 작은 단서들 속에서
두 가지 중요한 진단을 찾아낸 나에게
그렇게 묻는 것은 너무나 가혹했다.
No good deed goes unpunished.
문득 떠오른 영어 속담이었다.
선한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해도,
그 의도와는 별개로 결과가 반드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날 저녁, 정말 억울했다.
하지만 나는 위스키 한 잔을 따르고,
변진섭의 〈숙녀에게〉와 뮤지컬 Wicked의 〈No Good Deed〉를 들었다.
두 곡은 전혀 다른 시대와 언어의 노래였지만,
묘하게 같은 결로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
며칠 후, 나는 그분의 전자차트를 다시 열어보았다.
호스피스 팀이 와이프와 따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할아버지가 얼마나 아프신지,
그리고 그분의 전반적인 상태가 얼마나 나쁜 예후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자각의 대화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내가 전화를 드렸던 그때,
따님은 아마도 너무 갑작스럽고 벅찬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의 진심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셨을지,
아니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셨을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그날의 전화를 잊지 못한다.
다만,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다시 그런 일이 닥친다 해도,
또다시 해야만 할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그게 내가 의사가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조심스레 가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