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빚을 갚는 법.

by 참울타리

병원은 겉으로 보기에 늘 정돈된 곳이다.


수치는 규칙적으로 줄을 맞추고,


기록은 사건을 반듯한 면으로 눌러놓는다.


그러나 내가 기억해온 병원은 단 한 번도 반듯한 적이 없었다.


시간은 종종 비스듬히 흘렀고,

과거는 지금의 손끝 아래로 스며들었다.

스무 해가 흘렀지만,

그 새벽의 단단한 촉감은 아직도 내 진료의 가장 깊은 층에서 느껴진다.


의사가 빚을 지는 순간은

늘 이렇게 시작된다.


스물한 살의 그녀를 처음 보았던 새벽이 그랬다.


겸상적혈구증 환자의 급성 복부 통증.

피검사에서는 빈혈 외에는 아무 단서도 없었고,

그 외의 수치들은 오히려 정상에 가까웠다.


그러나 배를 눌렀을 때 전해진 단단함은

어떤 정상 수치로도 설명되지 않았다.

내 손끝은 조용히 말했다.

“이건 아니다.”


그럼에도 그때의 나는

인계를 하던 PA 간호사의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조금 더 신뢰했다.

감각은 아직 나 자신을 증명하지 못했고,

병원의 위계 속에서 ‘경험자의 말’은 곧 규범처럼 받아들여지던 시기였다.


그래서 손끝의 미세한 불길함보다

그 조용한 말 한마디를 더 믿어버렸다.


몇 분 뒤, 병원 전체에 Code Blue가 울렸다.

한 시간 전에 오더했지만, 막 찍힌 복부 사진에서는

터져버린 장에서 새어나온 공기가

조용하지만 분명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복도 끝에서 여동생이 입을 틀어막고 떨고 있었다.

그 눈망울은,

어떤 영상보다 선명하게

내 기억의 가장 깊은 곳에 꽂혀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배웠다.

“괜찮다”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해질 수 있는지를.


한동안은 복부에 손을 올리는 것이 두려웠다.

어떤 배를 만져도

그 소녀의 돌처럼 굳은 복부가

다시 손끝에 겹쳐지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료 레지던트에게

내 감각을 매번 확인받아야 했다.

짧은 촉감 하나가

사람을 살릴 수도, 놓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배웠다.


스무 해가 흘렀다.

나는 레지던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베테랑이 되었다.

실패와 성공이 얇은 퇴적층처럼 손끝에 겹겹이 쌓였고,

감각은 때로는 검사보다 먼저 움직였다.


그러나 경험은 축복이 아니라 빚이었다.

그 새벽의 단단함은

아직도 내 진료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79세 환자가 다시 중환자실로 올라왔을 때도 그랬다.

배는 말랑했고, 환자는 통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수치들은 다소 수상했지만,

어느 분과도 위급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손끝이 잠시 멈췄다.

말랑함 안에 숨어 있는 이상한 이물감.


며칠째 떨어지지 않는 백혈구,

가득 차 있지만 나오지 않는 소변.

스무 해 전 그 감각이

동일한 자리에서 다시 꿈틀거렸다.


CT를 의뢰했다.

결과는 장 천공.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성공은 나를 전혀 구해주지 못했다.


보호자는 조심스럽고도 단단하게 물었다.

“혹시… 병원에서 억지로 먹여서 터진 건가요?”


그 말은 비난이라기보다

감당하지 못한 삶의 무게가 향방을 잃고

우연히 나를 향해 흘러온 것이었다.


나는 설명을 이어갔지만

이해의 간극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또 깨달았다.

의사는 종종

정확한 진단과

부정확한 비난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삶의 무게가 의료진으로 되튈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필연이라는 것을.


누군가가 잘못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원망을 짊어진다.

그 짐을 내가 대신 드는 날이 많다는 사실이

나를 오래, 깊게 아프게 한다.


오늘도 나는 환자의 배 위에 손을 얹는다.

스무 해 전의 단단함과

오늘의 말랑함이 겹쳐 들어오는 순간,

나는 잠시 손을 멈춘다.


이 판단이 누군가를 살릴지,

누군가를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을지,

나는 지금도 모른다.


어떤 날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나는 스무 해 전 손끝의 단단함을

아직도 떨쳐내지 못한 채,

오늘의 환자들 위에 손을 얹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번 할아버지의 장 천공을 놓치지 않았을 때조차

그 성취는 내 것이 아니었다.

그건 구조가 나에게 부과한 책임일 뿐이고

나는 그 위에서 하루하루 빚을 갚듯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환자의 병도, 가족의 원망도,

내 과거의 오답도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사도 과거의 실수를 품은 채

오늘의 성공 위에서 파열음을 내며 살아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소녀에게 빚을 갚듯

다른 환자의 배 위에 조용히 손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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