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을 분명히 썼다
쓱 왔다가 썩 물러간 버린 등갈비(쓱 왔다가 썩 물러가 버린 등갈비 편 참고) 덕에 우리 집엔 등갈비 빼고 덩그러니 남은 애들이 있었다. 결국, 귀찮음을 떨치고, 등갈비를 구매했다. 이번엔 절대 썩 물러가질 않을 반짝 배송으로 말이다.
반짝 배송으로 온 등갈비가 좀 적어 보였다. 달걀찜도 곁들이고 싶어, 퇴근길에 집 앞 슈퍼에 들렀다. 등갈비와 달걀말이용 손질 채소를 집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딱 하나다. 바로 소주. 막카롱 여사님이 찬물에 핏물을 빼는 대신, 소주 넣고 등갈비를 부르르 끓이셨다. 그러니 소주를 사야 한다.
다만, 여기는 집 근처이기도 하고, 남편이 일하는 교회 근처이기도 하다. 주류 판매대로 향하는 발걸음이 영 가볍지만은 않다. 며칠 전, 등갈비를 만들려고 했던 날은 남편 보러 사 오랬더니, “목사 보러 소주를 사 오라니….”라며 힘들어했다. 힘들만 하네, 힘들만 해.
주류 판매대는 오랜만이다. 남편은 원래 발효된 음료의 냄새를 싫어한다. 그 부분만은 뼛속까지 목사감인가보다. 매실 엑기스조차 싫어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나도 소싯적에는 억지로 술을 좀 마셨지만, 온몸이 빨갛다가 허옇다가를 반복한 후로는 술은 안녕이다.
알코올 중독자 아빠, 사진 씨를 두었지만, 엄마 성심 씨는 내 손에 소주병을 들게 한 적이 없다. 물론 성심 씨 본인도 소주병을 든 적이 없다. 권사가 소주 사러 다니기 남우세스럽다며 소주를 한 짝씩 들였다. 그러게, 권사인 성심 씨도 부담스러워하는 소주 사기를 목사인 남편이 잘 해낼 리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지.
괜히 신기한 척, 사진을 찍어본다. 진짜 신기하긴 하다. 근 20년 만에 주류 판매대는 처음이다. 소주 종류가 이렇게 많았나 싶다. 그 와중에 용량 대비 가장 싼 녀석을 고르고, 계산대로 향한다.
계산하려는데, 오랜만에 들른 슈퍼라, 앱 로그인이 힘들다. 자꾸 버벅거리게 된다. 뒤에 계신 직원분이 마스크 너머 속, 나를 꿰뚫어 보는 거 같은 착각마저 든다. “어머, 사모님 아니세요?”란 환청도 들리는 거 같다.
그깟 소주가 뭐라고 이렇게나 신경을 쓰는 걸까. 대학 새내기 시절, 선배들에게 교회를 다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하다가, 결국 마시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선배가 나에게 그랬다. 너에게 실망했다고, 교회 다녀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더니 별수 없다고 말이다.
한낱 기독교인 대학생에게도 실망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 목사를 먹사라 하고, 기독교를 개독교라 할지언정, 늘 사람들이 목사에게 갖는 기대치는 존재한다. 그 기대감에 매의 눈까지 더하면, 사모를 바라는 보는 시선이 된다. 그런 매서움이 싫어, 교회 밖에 사모를 외치던 내가, 여전히 그 시선을 두려워하며, 허우적거린다.
이내, 생각을 달리해 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건,
저 소주, 반주(飯酒)용으로 산 거 아니에요, 요리용으로 산 거예요.”
를 변명, 아니 분명히 하려는 거라고 말이다. 결국 내가 불편해하던 그 시선이, 나를 쓰게 만들고 있지 않느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래, 아직도 다 이해 못 할 시선들에 , 여전히 나는 과감히 딴죽을 걸지만, 때론 그 시선들이 나를 보호하기도 하고, 지탱하기도 하며, 올곧음을 유지하도록 지켜주기도 한다. 아주, 아주 가끔. 오늘처럼.
가끔은 나를 쓰게 하기도, 지켜주기도 하는 그 시선을 기억하며, 오늘도 나는 썼다. 소주는 마시지 않았다. 요리에 썼다. 그리고 변명을 분명히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