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은 나물이

by 자전거 탄 달팽이


“엄마, 그럼 나는 계속 미미에게 숙제를 보여줘야 해요?”


캄캄한 밤, 이리저리 뒤척이던 나물이가 조심스레 묻는다. 주일 설교 때, 목사님께서 이웃이 필요한 것을 채우는 삶,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도와주는 것이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이라고 하셨단다. 이번 주에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삶을 살자고 하셨단다.


나물이는 올해 들어 숙제가 제법 많아졌다. 담임 선생님께서 수학 학습지를 만들어 나눠주시고는 매일매일 문제를 풀어오게 하신다. 당연히 나물이도 엄청 하기 싫어한다. 하지만, 숙제만이라도 해야 한다고 타이른 탓에, 이젠 알아서 잘하는 편이다. 학원 가기 전, 연계형 돌봄에 있는 시간도 꽤 길다 보니, 거기에서 숙제를 다 하고 오는 편이기도 하다.


나물이는 주로 같은 동에 사는 친구와 걸어서 등교한다. 동생 까꿍이가 같은 학교에 입학한 이후, 셋이 같이 가곤 했는데, 까꿍이가 걷기 힘들다고, 아빠 보러 자꾸 태워 달라고 한다. 나물이가 친구와 먼저 가면, 우린 까꿍이를 태워 나물이 뒤를 따라가는 모양새다.


사실, 나물이도 내심 미미와 까꿍이와 함께 아빠 차를 타고 싶어 한다. 원래 미미네랑 번갈아 가면서 카풀을 하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미미가 자꾸 나물이와 걸어가고 싶어 한다. 나물이 뒤를 쫓으며, 그 이유를 알았다.


미미는 숙제를, 등굣길에 하곤 했다. 차가 씽씽 내달리는 차도와 인도에서 숙제를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물이에게 답을 보여 달라고 한단다. 그걸 거절하면 미미는 삐쳐서 나물이와 말도 안 하고, 말을 해도 퉁명스럽게 군단다. 그럼 나물이는 그게 또 마음이 아파 숙제를 보여주게 된단다.

나물이의 숙제


이번 주 설교 때, 목사님께서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도와주라고 하셨으니, 자기는 계속 미미에게 숙제 답을 보여줘야 하냐고 묻는 거다. 음, 그게 미미를 결국 돕는 일은 아니니, 좀 더 지혜롭게 생각해보자고 답을 하지만, 사실 엄마인 내가 돕고 싶은 건, 미미가 아니다. 당장 나물이를 돕고 싶을 뿐이다. 그냥 보여주라고, 그래서 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고 작은 머리로, 진짜 미미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아이에게, 차마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그저, 나물이에게 답을 보여주는 건 미미에게 정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미미가 숙제를 잘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라는 말 밖에 해 주지 못했다. 부디 나물이가 덜 상처 받기를 바라면서.


학교에 갔던 나물이가 돌아와서 그런다. 오늘 미미에게 결국 숙제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그랬더니 미미가 삐쳤다고. 미미가 다른 학습지도 잘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려고 했더니, 퉁명스러운 미미의 대답만 돌아왔다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속상하다. 진정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은 이 아이를 어떻게 지혜롭게 도와야 할까. 어떻게 해야 지혜롭고 선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일단 오늘은 그저 상처 받은 아이의 마음을 토닥이듯, 고민으로 가득한 그 작은 뒤통수에 실컷 뺨을 비비는 거밖에 할 수 없다.


나물아,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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