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곤졸라 피자는 다지기에서 잘린 맛

다져지는 줄 몰라서, 미안해

by 자전거 탄 달팽이

고르곤졸라 피자 한 조각을 꿀에 콕 찍어, 입안에 넣어본다. 치즈의 짭조름한 맛과 꿀의 달콤함, 도우의 바삭함이 입안에서 묘한 조화를 이룬다. 어쩐지 까꿍이가 한글을 잘해서, 한글 다지기반에서 잘린 맛이 난다.


오늘 집에 돌아온 까꿍이가 가방을 채 내려놓기도 전에 그랬다. “엄마, 나 한글 잘해서, 한글 다지기반에서 잘렸다!” 한글을 잘해서 한글 다지기반에서 잘렸다니, 어쩐지 모순이 느껴지지만, 신이 난 아이를 꼭 안고 토닥여준다.


아이에게 저녁에 특별히 먹고 싶은 걸 고르라 하니, 꿀 찍어 먹는 피자가 먹고 싶단다. 꿀을 콕 찍어 입에 넣으면, 단맛이 훅 퍼지다가 짠맛이 혀를 쿡 때리는 것처럼 모순된 맛이, 아이의 말과 잘 어울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참이었다. 아이는 오늘 한글 다지기에서 잘렸다, 6개월 만에.


나름 중등 국어 교원 자격증에, 한국어 교원 자격증까지 있는 사람이, 자기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꽤 컸다. 게다가 까꿍이가 한다는 그 한글 다지기반 선생님도 해 봤기에 더 그랬다. 남의 아이들 신경 쓰느라, 정작 내 아이는 챙기지 못한 마음이랄까. 한글 선생님 딸이, 한글 다지기에 다닌다는 모순도 나를 괴롭혔다.

(좌) 아마도 한글을 그렸던(?) 시절의 까꿍이의 학습지 (우) 제법 한글을 쓸 줄 알게 된 까꿍이의 학습지


그런 나의 마음을 몰라주듯 아이는 참 느렸다. 학습의 준비가 된다는 이갈이도 느렸고, 앉혀놓고 한글 공부를 하려 하면, 눈물부터 흘렸다. 가뜩이나 또래보다 키도 작고, 몸집도 작은데, 한글도 못 떼고 학교에 보내려니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1학기 학부모 상담 때, 까꿍이 담임 선생님이 그러셨다. 까꿍이가 수업 시간에 자기만 문제를 읽지 못해, 속상해서 울었다고. 한글 다지기반에 보내시는 게 어떻겠냐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존심도 상했고,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했지만, 까꿍이를 보내기로 했다.


처음엔 까꿍이가 참 힘들어했다. 돌봄에서 제일 좋아하는 미술이랑 스포츠를 하는 날, 다지기 수업을 하러 가야 하니 더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다지기에서 늘 자기가 1등을 한다며, 자기가 오늘도 잘해서 일찍 돌봄 교실로 간다고, 자랑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다지기 교실에서 잘 지내는 거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사실 까꿍이가 집에 돌아오기 전, 이미 아이가 한글 다지기에서 잘린 사실을 알고 있었다. 퇴근길에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오늘 깜짝 받아쓰기 시험을 봤는데, 까꿍이가 100점을 받았다고. 어려운 받침이 있는 것도 잘 썼고, 무의미한 단어도 시험을 봤는데 까꿍이가 잘 썼다고 하셨다. 이제 더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까꿍이가 다지기를 그만해도 될 거 같다고 말이다.


그 전화를 받으며, 여러 가지 감정들이 나를 휘감았다. 자기 속도대로 잘 자라주고 있는 아이에 대한 안도감, 그런 아이를 욕심 때문에 몰아세웠던 미안함, 괜한 자존심에 스스로 창피해했던 수많은 감정들이 눈가에 맺힌 이슬로 또르르 굴러 내렸다.


아이는 스스로 잘 다져지는 중이었다. 자기만의 속도로 잘 다져지고 있었고,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안달 댔던 건 그저 나일뿐.


여전히 아이들은 자기들의 속도로 잘 자랄 것이다. 느리고 연약하고, 미약했던 나를 기다려주셨던, 아직도 기다리고 계시는 그분의 사랑을 떠올리며, 이제 나도 아이들을 기다려주련다. 함께 가야겠다, 아이의 속도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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