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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Nov 07. 2023

할머니가 등을 쓸어주는 맛

강화 교동도 ‘소풍식당’


갑자기 추워진 날씨라 그런 걸까. 음식이 나오자마자 우린 너나 할 것 없이 청국장을 한술 떠서 입에 넣었다. 어라, 짜지 않다. 오히려 슴슴한 게, 밥 없이도 먹을 수 있을 정도다. 러시아에서 오신 금발 머리의 선생님도, 어제 응급실에 다녀온 나도, 건강식을 주로 챙겨 드시는 부장님과 동료 선생님도 모두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여기는 그러니깐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 앞에 있는 ‘소풍식당’이다. 메뉴도 단출한 이곳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식사 내내 계속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모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다. 식당을 찾은 날은 정말 변화무쌍한 날씨였는데, 속이 뜨끈하게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포근히 등 뒤를 쓸어주는 할머니의 손길 같다고나 할까.


   상 위에 밑반찬도 특별한 건 없었다. 시래기나물, 무생채, 김치, 어묵볶음, 멸치볶음 딱 다섯 종류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 특별한 것 없는 반찬에 계속 손이 간다. 오랜만에 갑자기 들이닥친 손녀에게 할머니께서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급하게 내주신 것 같은데 말이다.


   자극적이지 않고, 모든 반찬에 다 손이 간다. 내 손길을 유독 이끈 것은 무생채였다. 슴슴한 청국장을 푹 떠서 밥 위에 얹은 후에 술술 비벼서 무생채를 마저 얹어 한입 가득 먹으니, 속이 편안해진다. 러시아어 선생님과 부장님의 선택은 시래기나물이었다. 두 번이나 더 달라고 요청해야 할 정도로 잘 드셨다. 특히, 러시아어 선생님은 연신 이게 뭐냐고 정말 맛있다고 하셨다. 청국장도 정말 잘 드셨고.     


   아쉽게도 사진엔 없지만, 밥도 기가 막혔다. 사진을 제대로 못 찍은 것이 분할 정도였다. 교동도에서 생산된 쌀로 지은 흰쌀밥은 어떤 반찬과도 어울렸다. 자르르 윤기가 흐르는 것이 밥만 입에 넣어도 구수하고 달큰했다.


   아이들도 꽤 잘 먹긴 했다. 선택의 폭이 좁은 것이 아쉬웠지만, 일일이 러시아어로 메뉴 설명을 해 주고 고르게 했다. 비록 남긴 아이들도 있지만, 꽤 많은 아이들이 밥을 떠서 김치찌개 국물에 살짝 적셔서 맛있게 먹었더랬다.  


   보통 체험학습 때, 학생들의 급량비는 1인당 8천 원으로 제한이 되어 있다. 메뉴판을 보면 알겠지만, 이 식당의 모든 메뉴는 9천 원이다. 흥사단 사무국장님께서 식당 사장님께 사정을 설명한 후에 8천 원으로 맞춘 거라고 했다. 1천 원 차이가 무색하게 엄청 든든하고, 푸짐하며 맛있는 식사였다. 만약에 제값을 주고 먹었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을 맛이었다.


   평소 식사량이 적은 부장님과 동료 선생님조차 밥과 청국장을 모두 다 깨끗하게 비우셨다. 계속 몸이 좋지 않아, 죽도 잘 못 먹는 나도 밥은 다 먹었다. 러시아어 선생님도 시래기 반찬과 청국장으로 매우 흡족한 식사를 하셨고.


   꽤 이국적인 이들이 모여있는 밥상인데, 이토록 토속적인 것들이 먹히다니. 뜬금없지만, 가장 한국적인 가장 세계적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등 쪽에서 느껴지는 할머니의 손길은 덤이고.


  대룡시장 대부분의 가게가 월요일에 문을 닫아, 체험학습에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는 사실도, 비가 오다가 해가 났다가, 바람이 세차게 부는 등의 요란스러운 날씨도, 잠시 넣어 둘 정도로 포근한 시간이었다. 만약,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에 가시는 분이 계신다면, 근처에서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한 끼를 원하신다면 ‘소풍식당’에 가 보시는 건 어떨는지.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예순네번째

#에이뿔  

#강화교동도_소풍식당_청국장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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