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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Aug 19. 2021

14시간만 선생님

주 14시간 이상, 이것을 하면 안 됩니다.


“이 학교 선생님이신가 봐요?”


금요일 오후 3시, 퇴근 후 초등학교 앞에서 택시에 올라타자 기사님께서 나에게 건네신 첫마디다. 잠깐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아, 한국어 강사예요.”

“한국어 강사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고등학교에 ‘한국어 학급 운영된다. 다문화 가정 자녀를 위한 교육부 정책이다. 나는 2017년부터 중학교 한국어 강사 일을 했다. 한국어 강사들은 교육부 법령에 따라  14시간,  59시간만 일하기로 정해져 있다. 방학은 수업이 없으니 페이도 없다. 택시를  날은 방학식 날이었고, 4주간의 무급휴직이 시작되는 날이다. 내가  학교 선생님 맞나?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과 함께 각각의 14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오전 9시, 중학교 수업 시간. 출석을 부른다. 행여 발음이 틀릴까 봐 아이들이 오기 전에 한 번씩 발음 연습을 한다. 출석 부르는 일에 언제나 진심을 담는다.


“블라드, 빅토리아, 비올레타. 스베틀라나, 디마!”


   출석으로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바로 수업이 시작된다. “안녕하세요”만 간신히 하는 아이부터 “어제 아빠가 이 옷 사줬어요. 마트 갔어요. 이만큼 샀어요”라고 자랑을 할 수 있는 아이까지. 아이들의 실력은 천차만별이지만 수준별 분반까지 할 여력은 없다. 이번 단원은 높임법이지만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학습지도 따로 준비한다.


   한 교실에서 서너 수준 분반의 수업을 하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길게는 10분, 짧게는 5분의 쉬는 시간이 있지만 내게 쉬는 시간은 없다. 지각생과 결석생을 파악해서 쿨 메신저로 담임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낸다. 수행 평가지를 들고 찾아온 아이들의 평가지를 봐준다. 아이들이 구글 번역기를 돌리며 수행평가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내용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어휘나 매끄럽지 않은 문장만 고쳐준다. 쉬는 시간 끝.


   시험 기간을 앞둔 쉬는 시간에는 미리 숙제로 나눠 준 ‘다문화 학생을 위한 스스로 배우는 교과 속 어휘’ 교재를 검사해 준다.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로 된 시험지를 마주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비다.


   중학교의 경우 아이들이 나와 만나는 시간이 담임선생님과 만나는 시간보다 길다. 그러다 보니 복장지도부터 각종 생활지도도 한다. ‘학교에서는 교복과 생활복만 입을 수 있어요. 실내화 신어야 해요.’ 등 한국 초등학교에 다니지 않고 바로 중학교부터 온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너무 당연한 게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스킨십이나 성(性) 문화 표현이 자유로운 문화권의 아이들에게는 한국에서 허용되는 한계선에 관해 일러주어야 한다. 때론 전문가의 도움을 얻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 책임자는 14시간짜리 선생님인 나다.


   때론 아이들의 팔목에 감긴 붕대조차 예사롭게 넘기지 않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그 붕대가 말해주지 않는 많은 의미를 파악하여 무심한 듯 세심하게 부모님과 담임선생님, 상담 선생님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어 아이를 지키고 보살펴야 한다. 이 역시 14시간 안에 끝내야 하니 짧은 시간에 더 깊이 마음을 어루만질 고민을 한다. 과연 시간을 들이지 않고,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게 가능한지 아직 모르겠지만.


   오전 수업이 끝났다. 점심시간 동안 다른 초등학교로 이동해야 한다. 헐레벌떡 나오는 길에 학교 뒤편에 모인 아이들 뒤통수가 심상치 않다. 큰소리로 외친다.


얘들아. 여기서 담배 피우면  된다




   12시 45분, 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수업 시작은 1시지만 벌써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어제 다문화 부장님께 연락이 왔다. 아이들이 자꾸 변기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 볼 일을 보고, 물도 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지도 부탁드린다고. 칠판에 변기를 그리고, 의자를 가리켜 변기라고 한 뒤, 올라가지 않아요를 반복한다. 물을 내리는 동작도 반복해서 보여준다.


   비슷한 듯 다르게 오후의 3시간, 일주일의 14시간을 아이들과 복작댔다. 한국어 말고도 가르쳐야 하는 게 항상 넘치고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복도에서 뛰지 않아요, 연필은 쉬는 시간에 깎아야 해요, 학교에서 마스크를 써야 해요, 정수기 물을 마시지 않아요, 물통을 가져오세요, 친구를 때리지 않아요, 친구에게 욕을 하지 않아요 등. 교육부는 주당 14시간짜리 한국어 강사를 뽑았는데 학교 현장은 거기에 생활지도를 포함시킨다.


   코로나 19 시작된 이후에는 온라인 수업 동영상도 제작해야 한다. 아이들이 집에서도 한국어 동영상을 보고 공부를   있도록 동영상을 제작하고 아이들이 수업을 들을  있도록 연락하고 확인하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다. 게다가 방학을 앞두고 아이  명이 새로 전학을 왔다.  아이들 수준을 지난 학기 동안 그나마 비슷하게 맞춰놨는데, 한글 기본자모만 겨우  학생이 전학을 왔다. 개별학습을 위한 나만의 분신술이 시작된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여전히 14시간뿐이다. 누구를 위한 14시간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을 늘릴  없다면 분신술에 가까운 강사의 대처능력만이 답이다.




   방학 동안 나는, 아니 평소에도 14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무엇일까. 머릿속엔 붕대를 손목에 둘둘 감았던 아이도, 기나긴 방학을 앞두고 엊그제 전학 온 아이도 모두 떠오른다. 잠시 쉬어가는 그 시간에도 아이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한다. 나는 여전히 주 14시간, 월 59시간만 선생님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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