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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01. 2021

성심 씨의 진심(眞心)

(feat. 슬렁슬렁 더덕무침)

우리 엄마 성심 씨는 요리를 참 못했다. 요리를 못하는 성심 씨이지만, 그녀의 모든 요리를 통틀어 미역국, 소불고기, 더덕무침은 단연 최고였다. 어디를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그 요리를 딱 일 년에 세 번, 우리 가족의 생일날에만 선보였는데, 왜 꼭 이 맛있는 요리를 생일에만 해주는지 서러울 정도였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후에 나는 성심 씨의 생일상을 그대로 배웠다. 시아버님, 시어머님, 남편, 아이들 생일에 꼭 미역국과 소불고기를 올렸다. 미역국과 소불고기는 성심 씨의 솜씨를 단박에 뛰어넘었다. 살아생전 성심 씨도 나의 미역국과 소불고기 맛을 인정해줬다. 입맛 까다로우신 시어머님조차도 솜씨를 인정해 주실 정도였다.


   단 하나, 더덕무침은 성심 씨의 맛이 나질 않았다. 더덕을 사다가 껍질을 까고, 온갖 양념으로 무쳐내어도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달랐다. 성심 씨의 더덕무침은 희끄무레한 주홍빛을 띠어서 그런지 슬렁슬렁한 맛이 났다. 슬렁슬렁한 것이 참 맛있었다.


   올해는 큰아이 생일이 추석날이랑 겹쳤다. 딱히 특별한 음식을 만들지 않다 보니, 아이의 생일상을 차리며 성심 씨를 그리기로 했다. 껍질이 벗겨진 더덕을 사서, 성심 씨의 더덕무침에 도전해 봤다.


   방망이로 슬슬 눌렀더니, 더덕이 줄줄 갈라진다. 그렇게 갈라진 더덕을 손으로 일일이 잗다랗게 찢어냈다. 남편이 도와준다고 방망이로 더덕을 두들겼더니 더덕이 깨졌다. 성심 씨처럼 느릿느릿, 슬렁슬렁, 적당한 힘으로 방망이를 눌렀더니 제법 비슷한 모양이 난다.


   더덕을 쪼개는 일은 성심 씨 같이 슬렁슬렁한 성격의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성심 씨처럼 팔에 힘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이, 철퍼덕거리고 앉아, 방망이로 더덕을 슬렁슬렁 밀어야 보푸라기 마냥 찢어댈 수 있다. 성심 씨가 진심을 담아, 더덕을 슬렁슬렁 누르고, 쪼옥쪼옥 찢어대는 모습을 그리니, 콧날이 시큰거려 온다.


  언젠가 성심 씨에게 더덕무침을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그랬다. “그냥,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아카시아 꿀, 다진 마늘, 다진 파, 참기름, 통깨 정도 넣으면 되는 거지 뭐. 아, 미원 조금이랑.” 성심 씨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더덕 양념을 만들었다. 미원 대신 맛소금도 넣어봤다. 슬렁슬렁 무쳤더니, 딱 성심 씨의 더덕무침 색깔이 난다.



   큰아이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밥과 함께 더덕무침을 입에 넣어본다. 씹을수록, 더덕의 향내가 더욱더 짙어진다. 성심 씨가 더덕무침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의 그 슬렁슬렁함이 쌓인 맛이다. 더덕무침에 코를 바짝 가져다 댔더니 어쩐지 성심 씨의 목소리가 향내로 바뀌어 난다. 더덕무침 한입에 성심 씨가 그러는 거 같다.


아유, 우리 딸, 이젠 엄마보다 더덕무침도 잘하네.”


   다행히 생일의 주인공인 나물이도 더덕무침을 잘 먹는다. 밥에 미역국을 적셔 더덕무침을 얹어 먹기도 하고, 소불고기와 더덕무침을 올려 먹기도 한다. 맛있다고 엄지손가락까지 들어준다.


   왜 그렇게 성심 씨의 생일상이 맛있었는지, 더덕무침이 특별했는지 어렴풋이 알 거 같다. 팔의 핏줄이 기형이라 얇게 엉켜있어, 아무리 팔에 힘을 주어도, 더덕을 슬렁슬렁 누를 수밖에 없었던 성심 씨의 진심이 담겨 있어서가 아닐까.


   그 성심 씨의 생일상이 이젠 진심으로 다가왔다. 언젠가 나물이와 까꿍이도 나를 기억하며 더덕무침을 떠올려주기를. 진심(珍心) 씨의 진심(眞心)을 그려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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