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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Oct 04. 2021

에이 그건 약과지

늘 이맘때쯤이면 그가 생각난다. 그의 네모반듯한 몸가짐이, 윤이 나는 건강한 피부가, 그에게서 풍기는 달큰한 향내가 너무나 그리워진다.


   그가 내 안에 들어왔을 때가 유독 그립다. 그를 품었을 때, 그만의 단내가 나를 감쌌다. 때론 끈적하게, 때론 파사삭 거리며, 내 안에서 그는 이리저리 부유하다,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으로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의 이름은 ‘모약과’다.


   우리 엄마 성심 씨는 명절 즈음이면, 늘 파란 지붕 이층 집 배 권사님이 만든 약과를 사다 주곤 했다. 배 권사님의 약과는 우리가 흔히 아는 약과와는 달랐다. 바로 이 모약과, 또는 개성약과라 불리는 거였다.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결이 있고 파사삭 부서지는 파이 같은 약과였다. 최근에야 그 이름을 제대로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성심 씨는 약과를 좋아하는 나와 사진 씨를 위해 도시락 1팩 정도의 약과를 사다 주곤 했다. 그러면 배 권사님은 2통 3반 반장이기도 한 성심 씨에게, 팔기엔 모양이 다소 부족한 약과들을 한아름 주시곤 했다. 이 약과들은 가끔 겉에 꿀이나 조청이 묻어있지 않았는데, 나는 오히려 그게 더 입에 맞았다.


   어느 순간, 배 권사님은 더 이상 약과를 만들지 않으셨고, 이제 멀리 이사를 온 난, 모약과를 먹기가 쉽지 않았다. 추석 전에, 백화점에 잠깐 들렀는데, 다소 비싼 가격에 꽃 모양의 개성약과를 팔기에 냉큼 집어왔다. 아껴가며 먹고 있는데, 남편이 꽁꽁 싸매 둔 약과를 꺼내 들고 아이들에게 그런다.


얘들아, 약과 먹을래?”


   그게 어떤 약과인데... 어쩐지 나의 소중한 약과가 ‘에이, 그건 약과지’ 취급을 당한 거 같아 속상했다. 나는 약과 하나에도 행복하고, 즐거워지고, 충만해지는데 말이다.


   혼자 괜스레 꿍하고 있다가, 나도 나의 약과를 에이, 그건 약과로 만들기로 했다. 배 권사님의 약과랑 비슷했던 약과를 주문했다. 무려 백 개나 주문했다. 배송이 온 날, 일일이 약과를 나눠 담아, 냉동실에 고이 넣어두었다.

   이제 흔한 약과가 되었지만, 여전히 약과를 놓고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위로도 얻는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약과를 무시하진 않았는지 반성한다. 약과를 한 입 베어 물고, 나를 걔가 아닌 개로 만드는 이들에게 받은 상처를 꿰매 본다.


   끈적하고 파사삭 거리는 약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나의 글이 약과 같은 글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누군가에겐 그저 그런 글일지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나의 글을 읽으며 위로를 얻기를. 누군가의 마음을 안아주고 상처를 꿰매 주는 글이 되기를.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마음이 달큰한 위로로 가득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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