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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수업이 없어요?

잘 지켜야 해요(1)

by 자전거 탄 달팽이

옛날, 옛날에 말숙이가 계속해서 한국어 강사로 일을 할 때였어요. 말숙이는 일주일에 한 곳에서 14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었어요. 그것보다 더 일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법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었거든요.


그러니깐 일주일에 14시간보다 더 일하게 되면 정말 큰일이 났어요. 그렇게 되면 말숙이는 주휴 수당도 받아야 하고, 나중에 퇴직금도 받을 수 있었거든요. 일개 강사 나부랭이인 말숙이에게 큰일이고 과분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꼭 14시간을 지켜야 했어요. 물론, 서류상으로요.


언제부터인가 일주일에 14시간도 지켜야 하지만, 월 59시간을 넘기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어요. 일주일에 14시간만 지키다 보면 한 달에 60시간 넘게 일하는 달도 종종 있었거든요. 그런데 교육청에서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네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법이 그렇다니, 따를 수밖에요.


그렇지만 처음엔 말숙이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일주일에 14시간만 지키면, 한 달에 59시간을 넘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3월 말이 되어 일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4월이 되니, 월 59시간을 넘겨버리게 생겨버렸지 뭐예요.


말숙이는 괜한 고민에 빠졌어요. 언제 수업을 없애야 할까 하면서요. 말숙이의 고민이 무색하게 학교에서는 무조건 매달 마지막 날 수업을 뺐어요. 59시간을 넘게 되는 달의 마지막 날은 무조건 쉬래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요.


일주일 전부터 지 부장님이 계속 말해요. 마지막 날 한국어 수업 없는 거, 애들한테 얘기했냐고. 빨리 말하라고. 그날 애들이 한국어 학급 오지 못하게 하라고요. 괜스레 애들이 한국어 학급에 가 있으면 담임들이 힘들다고.


말숙이가 아이들에게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이야기해요. 내일은 한국어 수업이 없어요. 니에또(Нету: 러시아어. 없어요), 니에또를 외쳐요. 오지 마세요. 안 돼요. 계속 말해요. 한 아이가 갑자기 손을 들더니 이렇게 말해요.


왜요?



순간 말숙이는 말문이 턱 막혀요. 아이의 물음에 답을 해 줄 수가 없어요. 내일 한국어 수업이 없는 건, 일주일에 14시간, 월 59시간을 지켜야 해서라고, 네 앞에 있는 내가, 강사 나부랭이라서, 주휴수당이나, 퇴직금을 챙겨 받으면 큰일이 나는 존재여서 그런 거라고,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겠어요.


어차피 아이에게 설명할 수도, 아이는 이해할 수도 없는 말일뿐이에요. 아니, 사실,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법을 지키느라, 아이들의 수업을 지키지 못해, 서글픈 말숙이거든요. 서글퍼도 어쩌겠어요. 그게 법이고, 규칙인걸요.


여러분도 꼭 법을 잘 지키는 민주시민이 되어야 해요. 말숙이처럼요. 아이들의 수업을 지키지 못하고,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는 선생님이 될지라도 말이죠. 오늘의 동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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