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보다 멋진 나물이
어렸을 적, 모교회에서 율동하면 자탄달, 자탄달하면 율동, 그러니깐 ‘율자자율’이던 시절이 있었다. 8살 때부터 ‘작은 제자’라는 율동팀을 섬겼는데, 율동은 나의 일이 되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교회의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율동으로 섬겼다.
최근에서야 내가 지독한 음치, 박치, 몸치라는 걸 깨달았는데, 사실 율동에서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확한 손의 각도와 눈빛, 한결같은 미소 장착, 적당한 시기에 무릎 굽히기 등의 스킬이 필요할 뿐이었다. 한결같은 미소 빼고는 대부분을 갖고 있었고, 수많은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한가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기도 했다.
수많은 시간을 율동으로 섬겼지만, 늘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목적이 잘못됐다. 온전히 하나님께 몸으로 찬양을 드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저, 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 혹은 누군가와의 비교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한결같은 미소를 가지지 못했기에 그 우위에서 난 번번이 패배했고, 더더욱 내 안에 기쁨이나 감사 따위는 없었다.
그런 시절을 겪었기에, 우리 아이들은 누군가의 딸이어서 억지로 섬기기를 바라지 않았다. 아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무언가를 하거나 섬기기 원했고, 가장 중요한 목적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의 마음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 어떤 것도 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물이가 1학년이 되었을 때, 유초등부 찬양팀에 율동으로 섬기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물이에게 충분히 설명했고, 생각할 시간을 줬다. 나물이는 의외로 선뜻하겠다고 했다. 그 이후, 코로나 전까지 유초등부 예배 때마다 열심히 율동을 했던 것 같다.
지난 주일은 세대 통합예배로 예배를 드렸다. 교육부서 찬양팀이 연합으로 1,2,3부 예배를 섬긴다고 했고, 나물이는 율동으로 섬기게 됐다. 토요일에도 2시간이나 연습을 해야 했다. 주일에는 아침 7시 30분부터 연습을 해서, 12시 예배 때까지 계속 율동으로 섬겨야 했다.
나물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던 내 마음은 기우였나 보다. 나물이는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토요일 밤 11시 넘어 잠이 들어, 주일 아침 새벽 6시에 일어났다. 그러더니 아주 씩씩하게, 감사함으로 율동으로 온종일 섬기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더니 계속해서 그런다.
엄마, 다시 토요일로 돌아가고 싶어요. 또 율동하고 싶어요.”
처음에 나물이를 찬양팀에 맡겼을 때, 지도해주시는 선생님 말씀에 더 믿고 맡겼던 부분이 있었다. 아이들이 꼭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찬양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야기에 참 감사했다. 어쩌면 내가 놓쳤기에, 의무감으로 했던 일을, 우리 아이들은, 나물이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서였다.
선생님들의 헌신과 기도, 가르침 덕분일까. 나물이는 하나님께 몸짓으로 찬양드리는 기쁨을, 잘 배워가는 중인 것 같다. 그런 나물이를 보더니, 부끄러워서 절대로 율동을 안 하겠다던 까꿍이조차, 자기도 나중에 꼭 해보고 싶다고 한다.
콩 심은 데 콩이 났다. 콩이 났는데, 훨씬 더 실하고, 잘 여문 콩이 났다. 가장 중요한 걸 놓쳤던 엄마와 달리, 중요한 걸 잘 찾아가는 나물이가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나물이가 언제까지나 그렇게 잘 여문 콩처럼, 주님 앞에서 귀하게 자신의 달란트로 섬기는 아이가 되기를 기도한다.
엄마보다 멋진 나물아, 오늘도 너는 자라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