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는 아이들
어렸을 적, 책 읽는 걸 참 좋아했다. 지금은 책에서 핸드폰으로 시선이 옮겨져 버렸지만, 어렸을 때는 정말 주야장천 책만 읽었다. 외사촌 집에 놀러 가서도, 밖에 나가 놀자는 외사촌의 애원에도 그 집에 있는 책들만 읽어대다가 싸우곤 했다.
나물이와 까꿍이는 신문물(?)을 일찍 접해서 그런지, 책 읽는 걸 참 싫어한다. 책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라, 내 책도 아이들 책도 집에 넘쳐나는데 아이들은 잘 읽지 않는다.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영영 책과 멀어질까 봐.
다행인지 학교에서는 책을 잘 읽는다고 한다. 학교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만화책이나 그림책을 나름 열심히 빌려서 읽는다고 했다. 그래, 책과 아예 거리만 두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나물이가 연계형 돌봄 교실에서 쓰는 공책을 봤더니 나물이가 쓴 동시들이 잔뜩 적혀있었다. 요즘 동시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자기의 일상을 동시로 써 봤단다. 피아노, 태권도, 내 동생, 방귀, 귤, 썬칩 등 다양한 주제로 자기만의 시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 앞에서 글을 많이 쓰진 못했는데, 더구나 내가 쓰는 글은 대부분 산문인데 시라니. 이번에도 참 어여쁜 콩이 나왔다. 학부 시절에도 시에는 영 흥미를 느끼지 못해, 전공 필수가 아니면 시 관련된 수업은 듣지 않았는데, 시 쓰는 나물이라니, 시 쓰는 딸이라니 신통하다.
언니의 시를 보더니, 까꿍이도 언니의 시를 패러디해서 자기만의 시를 써 본다. 아직 겹받침이 어려운 까꿍이의 시는 어딘지 모르게 웃음이 나면서도 까꿍이만의 매력이 묻어난다. 같은 듯 다른 두 아이의 시를 읽고 있으니 참 감사해진다.
핸드폰만 보던 엄마 밑에서 유튜브에 빠진 아이들이 나올 줄 알았다. 조금씩 책 읽는 엄마가 되려고 하니, 아이들도 덩달아 책 읽는 아이들이 되기 시작했다. 글 쓰는 엄마 밑에서 시 쓰는 아이들도 자라나고 있었다. 자기만의 언어와 자기만의 색깔로 시를 쓰고 즐거워하는 콩이 되었다.
그랬다. 콩을 심어야 콩이 났다.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거고. 엄마인 내가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나기를 바라는 건, 잘못됐다. 엄마인 내가 팥을 심었으면 팥이 나기를 기다려야 하고, 콩을 심었으면 콩이 나기를 바라야 한다.
언제나 예쁜 콩, 실한 콩, 바른 콩이 나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그런 콩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예쁜 콩, 실한 콩, 바른 콩을 심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내가 먼저 그런 콩이 되기를, 그런 콩을 맺는 사람이 되어, 삶을 살아내야겠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으로서도 글이쓰도인으로서도 열매 맺는 삶을 살아내면, 살아낸다면, 나물이와 까꿍이도 그리스도인이자 글이쓰도인이 되지 않을까. 나와 조금은 다르더라도 자기들만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나물이와 까꿍이가 되기를 기도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