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이 내게로 왔다, 그렇게

by 자전거 탄 달팽이

이맘때쯤이면, 대한민국 대부분의 엄마들이 김장이란 어마어마한 노동으로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보이곤 한다. 우리 가족이 1년 동안 좋은 재료가 가득 든 맛있는 김치로, 삶의 허기짐까지 채울 수 있게, 그녀들은 그녀들의 사랑을 꾹꾹 담아 고된 과업을 달성하곤 한다. 김장이 가지는 부불 노동의 아픔이 있더라도, 가족을 위해 쪼그려 앉은 그녀들의 뒷모습은 언제나 우리의 콧날을 시큰하게 한다.


신여성인 성심 씨의 쪼그림은 다소 달랐다. 그녀는 이미 1993년도에 은유 작가보다 앞서 김장이 부불 노동임을 알았다. 그녀는 재료비와 김장 이후 마늘 독으로 고생하는 자신의 병원비까지 계산하여, 매우 당당히, 남편인 사진 씨에게 내밀 줄 아는 여성이었다. “농협에서 김치를 열 포기 맞추는 게 훨씬 더 저렴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계산에서 인건비는 제외거든요.”를 외칠 줄 알았던 그녀였기에 말이다.


절인 배추와 김치 속 대신, 그녀가 부여잡고 쪼그려 앉은 건, 바로 달력이었다. 그녀는 연말이 다가오면, 꼭 내년 달력을 얻으러 다녔다. 교회에서도 달력을 주긴 했지만, 다소 작다는 이유로, 날짜가 크게 쓰여 있는 ‘새마을금고’ 표 달력을 선호했다. 교동 2통 3반 반장을 20여 년, 통장을 5년 정도 역임했던 그녀였기에 동네 새마을금고에서 달력을 얻기란 제법 쉬웠다.


새 달력을 받아 든 성심 씨는 작년 달력을 옆에 두고는, 온 가족의 생일과 기념일을 적곤 했다. 시원시원한 그녀 특유의 글씨로 말이다. 나, 성심 씨, 사진 씨 이렇게 달랑 셋뿐인 가족의 생일을 적는 일이 뭐 그리 큰 사랑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세 명뿐 아니라, 성심 씨의 달력에는 과장을 조금 보태어, 사돈의 팔촌 생일까지 등장하곤 했다.


큰고모(내 기준) 생신, 작은고모 생신, 약국 큰엄마 생신, 약국 큰아빠 생신, 서울 큰엄마 생신. 게다가 본인 동생들의 생일, 동생 배우자들의 생일, 성심 씨의 이모와 외삼촌들의 생신까지 야무지게 적다 보면, 1월부터 12월까지 중에 그녀의 글씨가 없는 달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적어두기만 하는 데에서 그쳤다면, 그것 역시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할 것이다.

남아있는 성심 씨의 글씨


성심 씨는 그날마다 빨간 전화기 앞에 쪼그려 앉아 전화를 하곤 했다. “안녕하세요. 거기 안정순 씨네 댁이죠? 형님이세요? 저 춘천 막내예요. 사진 씨네요. 형님, 오늘 생신이시죠? 생신 축하드려요. 아휴, 그래, 어떻게 지내세요? 저희는 잘 지내죠.” 한때 전화 교환수였다는 성심 씨의 낭랑한 목소리에 정을 담아 전하는 안부는 비로소 사랑일 것이다.


영락없는 성심 씨의 딸인 나도, 김장 대신 달력을 선택한다. 일하는 곳에 놓을 달력들, 집안 곳곳에 둘 달력들, 가지고 다니는 다이어리를 앞에 두고, 내가 챙겨야 할 이들을 떠올린다. 매달 동그라미가 있었던 성심 씨의 달력과 달리, 진심 씨의 달력은 동그라미가 없는 달이 더 많다. 이미, 성심 씨와 사진 씨의 생일이 빠지고, 그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도 빠졌으니 더 그렇다. 달력을 두고, 성심 씨의 동그라미를 떠올리다가, 점점 줄어만 가는 동그라미를 생각하니 울적했다가도, 그만큼 채워나갈 동그라미를 생각하며 마음을 추슬러본다.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쪼그려 앉지 않아도, 달력 앞에 쪼그려 앉아도, 빨간 전화기 앞에 쪼그려 앉아도, 밀도와 농도가 다르지 않은 사랑을 그릴 줄 알았던 성심 씨처럼, 나도 그런 사랑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동그라미 개수에 상관없이, 펜을 쥐고 달력 앞에 앉아 그 마음을 오롯이 흘려보내는 그런 사람이 되겠노라고. 울적함을 다짐으로 바꾸어본다.


성심 씨의 달력이 내게로 왔다, 그렇게.


내년 한 해, 사랑을 담아낼 우리집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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