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매일 김장을 할 수 있겠어요

김장 노동자, 한국어 강사

by 자전거 탄 달팽이

은유 작가님의 책, ‘다가오는 말들-김장 버티기’ 편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엄마표 김치’라는 말이 그리운 말에서 징그러운 말이 되어간다. (중략) 어머니가 해주신 밥과 김치 먹고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가시화되지 않는 이상한 노동. 피와 살로 스며서 동으로 나가버리는 엄마의 땀. 부불노동(unpaid work)으로서 가사노동의 불꽃인 김장.

-다가오는 말들, 은유-


90년대에 이미 김장의 부불노동에 대해 이해하고 파업을 선언한 신여성 성심 씨 아래서 자라났다. 그 이후로 우리 집에선 김장을 하지 않았기에, 이 부분이 크게 와닿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을 읽으며 떠올린 건 다름 아닌, 한국어 강사들의 노동이었다.


몇 년 전, 한 대학교 어학당 면접에 갔을 때의 일이다. 면접관이 말했다. 만약 오후 1시에 강의가 끝난다면, 오후 1시에 집에 갈 수 없다고. 남아서 하는 일이 많으며, 때론 회의를 위해 오후 5시까지 대기해야 하니, 혹시 다른 일을 한다면 여기 일은 하지 말라고.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그는 왜 당연한 걸 모르냐는 표정을 지었다.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BTS 등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한국어 수업을 원하는 수요가 늘고, 한국어의 위상이 드높아졌다고 한다. 한국어 교육 수요가 늘었으니, 공급도 늘었을까.


늘었다. 늘어난 그 이면에는 부불노동자, 한국어 강사들이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국어를 다 가르칠 수 있다는 편견 아래, 정부가 남발하는 자격증 더미 속에, 알량한 강사 자리에 요구되는 스펙은 한없이 높아져 간다. 그 스펙들로 한국어 수업은 더 잘 굴러가는데, 은유 작가가 말하는 김장처럼 가시화되지는 않는다.


한국어 교원자격증 소지, 한국어 교육학 석박사 학위, 영어 기본에 베트남어는 옵션이어도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계약서상에는 주 8시간, 혹은 주 14시간까지 일하게 되어있지만, 딱 그 시간만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시간 외 수당을 받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다. 행여 ‘아무도’를 벗어나는 돌연변이가 되어 합당한 대가를 요구하면, 대부분 잘리거나 지난한 소송으로 이어지는 신세들이 한국어 강사들이다.



은유 작가의 글처럼 김장이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의 부불노동이라면, 한국어 강사들의 부불노동인 김장도 있다. 계약서 속 ‘기타’에 매여 문화체험을 빙자한 김장 체험 행사. 성심 씨는 90년대부터 김치를 사 먹어서 나도 김장을 하지 않는다. 김장은 김장 자체보다 준비과정이 길지만, 노동시간으로 포함되지 않는다. 문화체험 행사를 위해 준비하는 한국어 강사들의 시간은 대가로 지불되지 않는다.


그뿐이랴. 한국어 강의 한 시간을 하기 위해 준비되는 수많은 시간들. PPT 준비, 학습지 제작, 학생들 워크북 검사 및 시험 출제부터, 학생들의 비자 연장을 위한 출입국 관리소 동행 등의 업무는 절대 대가를 지불받지 못한다.


어학당만 그러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다문화 센터나 초중고에 설치된 한국어 교실도 마찬가지다. 센터 행사나, 강사 간담회, 연수 등은 시급으로 쳐 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어 강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은 넘쳐나니, 언제든 이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 그저 자르면 된다. 그들을 대체할 인력은 차고 넘친다. 비슷한 스펙을 가진 이들 중에 더욱더 순종적인 이들을 뽑아서 사용하면 그뿐이다.


실제로 어떤 학교 어학당의 강사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다음 학기에 재계약이 안 됐다. 바닥이 좁아서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다. 강사는 부불노동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그 대가를 제대로 지불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한국어 어학당이 있다. 강사들의 대가 없는 노동으로 건물은 높아져만 갔다. 반면, 강사들의 월급은 10년째 제자리만 맴돌 뿐인 삭막한 현실 속에서 매일매일 노동을 쌓아가는 이들도 있다. 어쩌면 한국어 학당은 한국에서 김장을 하는 마지막 공간일지도 모른다.


한국어 강사들이 시간 외에 하는 업무들을 차곡차곡 쌓아보면, 얼마만큼의 높이가 될지 상상해본다. 강사들의 시간과 땀을 갈아 넣어야 굴러가는 한국어 교육계에서 절대 생색낼 수 없는, 생색을 내면 잘리는 이상한 노동. 한국어의 세계화를 이룩하며, 국격을 높이지만, 그만큼 낮아지고 비루해지는 한국어 강사들의 대우. 아무리 노력해도 비정규직 강사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는 그들의 서글픈 노동.


이 글도 익명 뒤에 숨어 쓸 수밖에 없는 나는, 한국어 강사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김장을 하듯, 대가 없는 노동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중이다. 어떻게 매일 김장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나는 오늘도 백 포기의 김치를 담그고 온 모양이다.



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한국어 어학당의 현실,

기사 링크 첨부 > 여기를 클릭하세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 다르지만, 그저 좋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