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셋을 입고 혼자서도 잘하는 그녀

‘에놀라 홈즈’를 읽고 (약간의 스포 있음)

by 자전거 탄 달팽이

음감 님의 글을 읽고, 에놀라 홈즈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영화는 시간이 없어 보다가 말았지만, 책은 현재 5권까지 읽었다. 에놀라는 홈즈라는 성에서 떠올릴 수 있듯이 유명한 탐정 ‘셜록 홈스’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다. 1800년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고 보기에 힘들 정도로, 주체적이고 당당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당돌한 열네 살 소녀라고나 할까.


에놀라(Enola)라는 그녀의 이름을 뒤집으면 ‘혼자서’(alone)가 되듯, 그녀는 14살에 엄마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혼자가 되었다. 이름처럼 혼자가 된 그녀는, 사실 그 시대의 여자들이 마땅히 배워야 하는 것들을 하나도 배우지 않고 자랐다. 대신 그녀의 엄마는 이 모든 일을 차근차근 계획한 듯, 그 당시 사회에서 여자아이인 그녀가 혼자서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가르치며 에놀라의 특별함을 인정해줬던 엄마는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뒤늦게 나타난 그녀의 오빠들은 그녀를 그 시대의 다른 평범한 여자아이들처럼 다루기 위해, 엄격한 기숙학원에 보내려고 한다. 기숙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그녀를 코르셋으로 대변되는 당시의 잣대로 옥죄는 건 덤이고 말이다.


에놀라는 그렇게 자기를 옥죄는 것들로부터 도망을 치고, 자기를 혼자 내버려 둔 채 사라진 엄마를 찾아 나서게 된다. 오빠들로부터 도망치고, 엄마를 쫓는 과정에서 에놀라는 여러 가지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자기가 그렇게도 입기 싫어 발버둥 쳤던 그 코르셋을 다시 입고야 만다.


물리적으로는 에놀라의 21인치 허리를 19인치로 조이기 위해 그녀를 압박하던 코르셋은, 그녀를 괴한의 칼로부터 보호한다. 여성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한 거추장스럽게 입어야만 했던 가슴 보정기, 엉덩이 조절기, 허리받이 등은 그녀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시켜주기도 하고, 곳곳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물건들을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되기도 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장식용 브로치는, 그녀가 단검을 숨길 수 있는 좋은 위장품이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에놀라의 모습을 통해 특별한 ‘자리’에 있는 내가 나가야 할 바를 깨달았다면, 지나친 비약인 걸까. 누군가에게 억지로 입혀진 코르셋이 아닌, 스스로가 선택한 코르셋은 에놀라를 지켜주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에놀라는 자기에게 주어진 억압을, 자기 몸을 지키는 도구로 영리하게 사용한 것이다.


에놀라의 모습을 보며, 내 ‘자리’에 덧씌워진 수많은 규율과 율법으로 대변되는 어떤 틀을 떠올려 본다. 그것들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채, 나 스스로를 그저 옥죄고만 있는 현실에 무기력하게 젖어있는 건, 그저 나라고. 결국 나를 누르고 억압하는 건, 나 스스로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에놀라에겐 엄마가 남긴, 암호 책과 꽃말 책과 그녀가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그녀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돈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엄마가 남긴 암호 책과 꽃말 책은 엄마와 함께했던 수많은 시간들을 되새기게 했고, 엄마를 통해 배운 것들은 에놀라가 혼자서도 자기를 지키며, 스스로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을 주고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암호 책과 꽃말 책을,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느꼈던 시간을 떠올려본다. 결국 말씀 앞에 설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말씀을 읽으며, 그분의 사랑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지키겠노라 다짐해본다.


나를 옥죄는 것 같고, 억압하는 것 같은 모든 것들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건, 결국 나 자신에게 달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것들 안에서, 에놀라처럼 최대한 자유롭게 나를 지켜내도록 그것을 사용한다면, 그런 지혜를 구한다면, 나는 혼자여도 외롭지 않으며, 혼자서도 잘하는 그런 존재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런 아이러니를 꿈꾼다. 나를 옥죄는 것들을, 스스로 입는 그 아이러니를. 내가 마음을 다해 영리하게 그것들을 받아들인다면, 나를 나 되게 하고, 나답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것으로 바뀔 것이란 아이러니를 말이다.

에놀라가 먹었을 스콘을 마주하며, 영리한 코르셋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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