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 No way home, 옷소매 붉은 끝동 (스포 있음)
새벽까지 본 옷소매 붉은 끝동 마지막 회차의 여운 때문이었을까. 생각보다 ‘스파이더맨: No way home’을 보며 슬프지 않았다. 스파이더맨도 결국 하나의 ‘존재’와 다름없다는 사실만이 분명하게 다가왔을 뿐.
물론 영화의 스토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전의 스파이더맨 시리즈 내용이 가물가물한 나조차도 톰 홀랜드가 그려내는 스파이더맨이 이해되고, 설득되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낯선 스파이더맨 들이 대거 등장해도 그들이 반갑고, 아련하고, 든든하게 느껴졌던 건, 영화 전반부 내내 자연스러우면서도 촘촘하게 심어진 서사 때문일 것이다.
다만, 나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는 스파이더맨의 결말에는 슬프지 않았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의 세계에는 MJ와 스파이더맨인 자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록 MJ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소멸되었다고 할지라도 아직 존재하는 MJ와 얼마든지 ‘기억’을 만들어갈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옷소매 붉은 끝동 속 덕임이는 결국 사랑하는 정조의 곁에 남기로 했다. 그렇지만 후궁으로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덕임의 죽음 이후, 정조는 삶에서도 기억에서도 덕임의 존재를 지워버린 듯했다. 어느 순간, 그래도 자신이 많은 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덕임의 존재를 떠올리며 그녀를 기억하고 있을 동무들을 찾지만, 그들이 나눌 수 있는 건, 덕임이 존재하던 찰나의 순간뿐이었다.
정조의 삶에서 덕임이란 존재가 사라지니, 그녀에 대한 정조의 기억도 여전히 거기서 멈추어 버렸다. 더 이상 자랄 수 없었다. 나아갈 수 없었다. 결국 정조가 마지막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가 존재했던 그 시절의 기억 속으로 회귀하는 것뿐이었다.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은 MJ 앞에 선 스파이더맨, 사랑하는 여인이 죽고 난 후, 여전히 그녀의 대한 기억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정조. 그 둘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니, 어쩐지 사진 씨와 성심 씨 생각이 났다.
사진 씨가 세상을 떠나고 꼭 1년 만에 성심 씨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너무 외롭다고. 외로워서 슬프다고. 그 외로움은 가족관계 증명서가 보여주는 어떤 물리적 슬픔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은 아니었다. 아직도 내 생애에서 사진 씨와 성심 씨와 함께한 시간이 훨씬 많은데, 그들에 대한 기억을 나눌 누군가가 없다는 것, 그들의 존재를 떠올리며 그들에 대한 기억을 키워나갈 누군가가 없다는 그 막연함에서 오는 외로움이었다.
남편과 나눌 수 있는 사진 씨와 성심 씨에 대한 기억은 아주 적었고, 그 적은 기억들마저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사라진 존재에 대한 기억은 꼭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에 꾹꾹 눌러쓴 손글씨가 같다. 손가락으로 아주 깊이, 꾹꾹 눌러썼는데, 어느샌가 밀려온 파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글씨 같은 느낌 말이다. 분명 아주 선명하게 또렷하게 남아있다고 생각했던 그들에 대한 기억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그랬기에 스파이더맨을 보며, 조금만 슬플 수 있었던 거 같다. 비록 MJ의 기억 속에 그녀의 세계 속에 네가 지금은 없을지라도, 너의 세계에, 너의 눈앞에 MJ가 있으니 참 다행이라고. 적어도 너의 앞에는 ‘기억’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가 있지 않냐고. 그렇기에 앞으로의 스파이더맨은 No way home이 아니라, Go your way 하면 된다고. 그러면 언젠가는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 속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냐고.
그러니 존재마저 잃은 이들을 대신 해,
스파이더맨, go for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