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은 참 완벽하신 분이라 그런 실수를 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고. 그분이 언급한 실수는 실제로 내가 부족해서 저지른 것이 아니었고, 어떤 오해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기에, 그분이 이야기한 ‘완벽하다’라는 말은 분명 나를 칭찬하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 말은 당신을 칭찬하는 말이라고, 당신을 매우 좋게 평가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 말이 참 불편했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 제일 컸고, 계속해서 그들에게 완벽함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딘가 다른 한쪽이 무너져 내림을 느끼고 있어서였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평가에 민감한 아이였다. 그랬기에 늘 칭찬을 받으려 안간힘을 썼다. 총량에 한계가 있는 나의 능력은 타인들의 평가에만 맞춰져 나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꼭 그런 느낌이었다. 모래성 위에 깃발을 꽂아두고 하는 게임. 타인에 대한 시선에 민감한 내가 수북이 많은 모래를 가져가 버리자, 정작 내가 돌봐야 하는 내면의 나는 부서지고, 무너진 그런 느낌. 타인이 들이미는 기준에 충족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다가 정작 나와 가족들에게는 바스러지고 아스러진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언제나 타인에게 열심히, 완벽한 사람일지 몰라도, 나와 가족에게는 많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타인의 시선에 정작 나란 존재가 잠식당할까 봐 두려워졌다. 결국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버리는 모래알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허무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한 번에 완벽하게 그 시선에서 벗어나게 될 수 없을지라도, 그 잣대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을지라도, 천천히 빼앗긴 모래를 찾아오기로 했다. 살살, 조심조심, 모래를 긁어모으다 보면, 처참하게 모래성을 무너뜨리지 않고, 서서히 다른 쪽으로 모래성을 옮기는 것처럼, 조심 조심히 모래를 모아보련다.
그렇게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마음으로 열심히 글을 쓰고 싶어졌다. 조심조심 글에 나를 다독이는 마음을 담다 보면, 언젠가는 그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겠지. 열심히, 완벽한 사람은 아닐지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가겠지. 그 어느 쪽의 모래성도 무너뜨리지 않는 그런 균형 잡힌 내가 되어가겠지.
그런 마음들을 꾹꾹 눌러 담아 오늘도 쓰는 내가 되어야지. 되어감을 위해 쓰는 내가 되어야지, 되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