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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Jan 19. 2022

길 위에서 나누는 나그네들의 맛

- LA찰떡파이

한동안 베이킹에 손을 놓다가 다시 시작했을 때 만든 것이 바로 LA 찰떡파이다. 전해지는 바로는 미국에 이민 간 교민들이 고향이 그립고 떡이 먹고 싶어 만들다 보니 탄생한 레시피라고 한다. 물론 나는 떡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는 만드는 법이 매우 쉽고 간단한데, 우리 집에 넘쳐나는 파이 틀에 굽기에 적당하고, 맛도 있어서 만들게 됐다.


   찰떡파이를 만드는 법은 호두파이나 다른 빵이나 쿠키에 비하면 매우 간단했다. 마트에서 파는 찹쌀가루에 우유, 원하는 견과류나 콩배기, 팥배기, 설탕, 소량의 소금과 베이킹파우더, 베이킹소다를 한 데 넣어 휘휘 섞으면 반죽 완성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완성된 반죽을 파이 틀에 넣어 오븐에 굽기만 하면 된다. 구워진 파이를 한 김 식혀 잘라서 먹으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을 넘어 쫜득한 느낌의 떡 느낌이 난다. 속 재료에 따라 맛도 무한대로 달라지고, 파이 틀에 구워서 모양도 제법 그럴싸해 선물하기에도 딱이다.




   일을 쉬는 방학이나 명절 즈음에는 찰떡파이를 구워 주변 분들에게 선물하기 시작했다. 다들 맛있게 잘 먹었다고, 심지어 시간 되실 때 또 만들어 주실 수 있냐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찰떡파이를 구워서 종종 나누던 어느 날이었다. 한 사모님이 찰떡파이 만드는 법을 알려주실 수 있냐고, 같이 한 번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친한 사모님들 몇 분을 모셔서 함께 밥도 먹고, 찰떡파이도 만들기로 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간 사이, 시간이 되는 사모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같이 밥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찰떡파이를 만들었다. 온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갓 구워진 찰떡파이를 잘라 커피와 함께 나누기도 했다. 사모님들이 각자 만든 파이는 예쁜 박스에 담아 돌아가시는 손에 쥐어드렸다.




   최근 내가 쓴 글에, 그날 함께했던 사모님들이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때 한자리에 모였던 사모님들은, 남편들의 사역지를 따라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문득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들의 처지가 여전히 길 위에 선 나그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부름 받아 나선 이들 뒤에 선, 부름조차 받지 못한 나그네들. 그저 부름 받은 이들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는 자들. 그 나그네들끼리 모여 나눴던 찰떡파이란...


   고향을 그리며 LA에서 교민들이 먹었다던 그 파이를, 우리는 누군가의 뒤를 그저 따라가는 길 위에서 나눴다. 여전히 그 길 위에 서 있는 우리가, 또 언제 다시 만나서 파이를 나누고, 삶을 나눌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날 나눴던 찰떡파이의 맛이 그립다. 모두가 길 위에 서서 나누던, 어쩐지 나그네들의 고됨과 지침,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던 그 맛이 말이다.


   다만, 그 지침과 고됨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었던 파이의 바삭하면서도 쫀득한 그 질감이, 우리를 둘러싸던 그 고소한 냄새가 잠시나마 위로가 되어 주었던 것처럼, 각자의 길 위를 걷는, 여전히 길 위에 있는 이들에게 이 글이 그 파이처럼 가 닿기를 바란다. 또 다른 길 위에 서 있는 누군가가 여기에 있다고. 언제고 당신의 어깨를 마음으로 안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조만간 또 파이를 구워야겠다. 그 나그네들을 그리며, 나그네들의 맛을 그리며, 또 다른 나그네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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