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시에서 느껴지는 냉면의 향기
한국어 수업내용에는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문화도 포함된다. 교재에도 문화 관련 내용이 많이 나온다. 그중 학생들과 가장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수업은 전통음식 관련 부분이다. 성인 학습자들과 수업을 할 때는 종강 파티 때, 각자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어 와서 나눠 먹는 시간을 갖는다.
서로 다른 나라의 음식을 맛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언어를 넘어, 더 가까워짐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쪽 사람들의 경우, 익지 않은 초록색 망고를 고춧가루가 섞인 소금에 찍어 먹는다. 입덧이 심한 수강생이 가져온 음식이었는데, 그걸 먹으면 입덧이 가라앉는다고 했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입덧할 때, 먹고 싶은 음식 이야기가 나오며, 공감대가 형성되곤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수업하게 되니,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어 오는 건 불가능해졌다. 아이들이 주로 먹는 음식을 맛보긴 어렵다. 종교적인 이유로 음식에 제약이 많은 친구도 있고,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다. 그러다 보니 수업이 일방적으로 한식을 소개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이 주로 먹는 음식에 대한 이해가 전무(全無)했다.
재작년부터 오전 학교에서 레나 선생님과 함께 일하게 됐다. 그녀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고려인 3세였다. 선생님과 일을 하면서 우연히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식사했다. 음식점이 있는 곳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동네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거리에 있는 간판이 모두 러시아어로 되어 있어, LA 한인타운, 차이나타운 느낌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이후, 선생님과 함께 종종 그곳에 있는 식당들을 다니며 우즈베키스탄 전통음식이나 고려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맛보게 되었다. 토마토 스튜에 우동 사리를 넣은 라그만(Лагман), 고려인들이 주로 즐겨먹는다는 냉면 느낌의 국시(кукси), 꼬치구이의 일종인 샤슬릭(шашлык) 등이었다. 생각보다 입에도 잘 맞고, 맛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먹어보니, 대화의 폭이 넓어졌다. 한국의 음식을 설명할 때도, 이건 무슨 음식이랑 비슷한데 이 부분이 다른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음식까지 내가 알고 있으니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어떤 친구는 나에게 그 식당은 무슨 음식이 맛있고, 어떤 음식도 꼭 먹어보라는 말도 덧붙인다.
계속된 코로나19로 인해, 문화 수업은 대폭 축소됐다. 다양한 체험은 고사하고, 진도 나가기 빠듯해, 교재에 있는 문화 관련 내용조차 다루기 힘들다. 외식이 조심스럽다 보니, 식당에 못 간지도 오래됐다. 하루빨리, 아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문화 수업을 함께 나누게 될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 주: 위 사진은 샤슬릭, 보르시(Борщ. 러시아 전통음식. 수프의 일종), 마르코프차(марков-ча. 고려인들이 즐겨먹는 당근으로 만든 김치의 일종), 아츠축(Achchiq Chuchuk. 양파, 오이, 토마토가 들어간 샐러드), 레표시카(лепёшка, 납작한 모양의 빵).
* 안타깝게도 코로나 19가 시작되면서 식당에 가지를 못했고, 날이 추워져서 어렵게 2년 만에 찾은 식당에서 국시도 먹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