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TV를 돌리다 보니, 나이를 제목으로 한 드라마가 눈에 띈다. ‘서른, 아홉’,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 한국 나이로 서른아홉이 된 올해 초부터 남편이 나이 공격을 해서 그런가, 어쩐지 더 눈길이 간다. 다만, 나랑 같은 나이의 드라마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건, 내가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서른아홉의 나는 젊은 걸까, 늙은 걸까.
‘젊다’는 단어와 ‘늙다’라는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참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막연히 두 단어가 서로 반의 관계에 있는 반의어라고 생각하며, 둘 다 형용사, 혹은 동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전에 젊다는 형용사, 늙다는 동사로 나온다. 사전 속에 젊다는 나이가 한창때에 있다, 혈기 따위가 왕성하다는 의미를 가진 형용사로 명시돼 있다. 늙다는 사람이나 동물, 식물 따위가 나이를 많이 먹다, 사람의 경우에는 흔히 중년이 지난 상태가 됨을 이른다는 뜻을 가진 동사라고 적혀 있고 말이다.
두 단어의 품사가 달라지니, 활용형의 의미도 달라진다. 젊다는 기본형에 관형사형 어미 ‘-(으) ㄴ’이 붙으면 현재를 나타내지만, 늙다는 과거를 나타내게 된다. 결국, 문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젊다는 언제나 기본적으로 지금, 현재의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반면, 늙다는 젊다는 단어에서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변하여 온, 시간의 흐름과 움직임이 들어 있는 단어라 할 수 있겠다. 오늘의 젊음이 모여, 언젠가 늙음에 닿는다고나 할까. 어쩐지 딱딱해 보이는 문법 속에 자리 잡은 말랑하고 반가운 진실 한 조각이다.
딱딱한 문법조차 당신과 내게 말한다. 그러니, 당신은 여전히 젊다고. 언제나 나와 당신은 오늘,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존재’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젊음이 켜켜이 쌓여 언젠가 늙음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그 늙음은 늘 내일에만 존재하기에 당신은 영원히 잡을 수 없다고.
이 순간도 여전히 젊은 당신, 그 젊은 순간을, 현재를 살아가길 바란다. 유명한 드라마의 대사처럼, 눈이 부시게,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그대가 되기를. 싱그럽고 촉촉한 매일의 젊음을 켜켜이 쌓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그렇게 살아가기를, 살아내기를, 우리가 모두 그런 젊은 내가 되기를. 제아무리 누군가가 나를 놀려대도, 나는 내일의 나보다 여전히 젊은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