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터(waiter), 라이터(writer)

by 자전거 탄 달팽이

요즘 ‘커피 한잔할까요?’라는 드라마의 대본집을 읽고 있다. 드라마에는 2대 커피를 운영하는 ‘박석’이란 사장 겸 바리스타가 나온다. 또 공시를 준비하다가 떨어지고, 박석의 커피를 마신 후, 2대 커피에서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강고비’란 인물이 나오는데 이 둘이 일하는 2대 커피와 그곳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주된 내용이다.


어제 읽은 6화의 제목은 ‘웨이터: 우리는 모두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어렵게 2대 커피의 바리스타가 된 강고비는 계속된 고비를 맞이한다. 근무시간에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않고, 제대로 된 커피 맛을 내려고 노력함에도 늘 제자리에만 머무는 거 같다. 어쩐지 박석 혼자 카페를 운영할 때보다 손님도 없는 것 같다.


근처 베이커리 카페에도 고비와 비슷한 고민을 했던 아르바이트생 ‘가원’이 있다. 베이커리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그 좋아하는 떡볶이도 마다하고, 매일 빵을 만들고 쿠키를 만드는 일에 몰두하는 학생이다. 고비가 하는 고민을 눈치챈 박석은 가원과 함께 콜라보 메뉴를 만들어보라고 권유한다. 둘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가원: 베이커리 알바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땐 바쁜 게 힘든 건 줄 알았거든요. 진상 손님 상대할 때나. 근데 손님이 없어서 무료한 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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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원: 웨이터 아시죠?


고비: 그럼요. 서빙하는 사람.


가원; 땡. (그럼 뭐냐는 고비의 표정을 보고) 기다리는 사람이요.


고비: 에이, 말장난이었구나.


가원: 장난 아닌데? 베이커리 사장이든 커피숍 직원이든, 여자든 남자든, 손님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전부 웨이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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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원: 그 기다림을 견딜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관두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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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원: 손님이 오지 않는 그 무료하고 막막한 시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이 일을 사랑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래요.

<커피 한 잔 할까요?> 中 6화. -노정욱 지음-


이 말장난 같은 대화를 통해, 작가(writer)인 나도, 아니 작가가 되려는 나도, 웨이터(waiter. 기다리는 사람)이란 생각을 해 본다.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낼 수 있기를 기다리고,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기를 기다리며, 내 글을 읽고 따스하게 반응해 주는 독자들의 댓글을 기다리는 사람 말이다. 어쩌면 글쓰기도 기다림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글감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떠오른 글감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기기를 기다린다. 노트북 앞에 앉아, 하얀 바탕에 깜빡거리는 까만 커서를 보며, 커서가 쭉쭉 글자들에 밀려나기를 기다린다. 겨우 커서가 끝까지 밀려났으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글을 수정하기를 기다리며, 글을 올린 후에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다리게 된다. 기다림의 연속이다.


요즘 그 기다림의 시간이 다소 힘들었다. 글감이 잘 떠오르지 않았으며, 어제보다 나은 글을 쓰지도 못했다. 계속해서 깜박거리기만 하는 커서를 보는 것도 지치곤 했다. 아무리 수정을 하려고 해도 더 나은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 기다림이 지루해서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을 견딜 수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관두는 게 낫다는 가원의 말처럼, 그 무료하고 막막한 시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이 일을 사랑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이야기처럼,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글 쓰는 일을 정말 얼마큼 사랑하고 있냐고. 그 막막한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냐고.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나에게 대답했다. 그 시간이 막막하다고 글쓰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조금 힘들지만, 그 막막한 시간을 잘 버텨낼 만큼, 아니 견디려고 노력할 만큼 글쓰기를 사랑한다고 말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웨이터가 된다. 라이터가 되기 위해. 웨이터로서의 시간을 잘 쌓는다면, 언젠가 나는 진짜 라이터가 될 수 있을 거라며, 지금의 이 시간을 견뎌본다. 라이터를 꿈꾸는 웨이터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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