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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Mar 02. 2022

내일의 나, 힘내!

오늘부터 출근이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밤새 잠을 설쳤다. 작년까지는 계속 한국어 강사로 일했었다면, 올해부터는 한국어 학급 시간제 기간제 교사로 일하게 됐다. 한국어 강의에 각종 한국어 학급 업무 및 다문화 학생 관련 업무를 맡게 됐다. 어느 정도 바쁘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어제는 온 가족이 동원되어 한국어 교실 청소 및 정리 정돈을 했다. 4시간이 넘게 걸렸다. 사비를 들여, 각종 콘센트를 사서 선을 정리하고, 기기를 정리하고 책과 온갖 잡다한 물품을 정리했다. 산뜻하게 정돈된 교실이 마음에 들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내일 강사 선생님들과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출근하자마자 나를 찾아대는 전화가 사방에서 빗발쳤다. 학생이 길을 잃어버렸다고 해요. 아이가 연락없이 학교에 오지 않아요. 다른 학교로 위탁을 가고 싶다고 해요. 애가 반을 못 찾아요. 선생님 동명이인이 나타났어요. 누가 2반 학생이고, 누가 편입생일까요? 등.


   나는 그 빗발치는 전화를 받으며 신입생들의 진단평가를 치르고 있었다. 갑자기 아저씨들이 들이닥치셨다. 어쩐지 창가 쪽 책장이 좀 크다 싶었다. 그래도 넉넉해서 어제 꽤 만족했던 터였다. 아뿔싸, 작은 사이즈로 다시 가져오셨단다. 아이들은 시험을 치르는데 아저씨들은 짐을 빼고 넣고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작은 사이즈로 바뀌니 고이 넣었던 짐들이 온 사방에 흩어졌다. 하아. 어제 4시간 동안 우린 뭘 한 걸까.


   그뿐이랴. 우리 교실에 컴퓨터가 4대지만, 인터넷과 쿨메신저 연결이 모두 되어있는 컴퓨터는 내 컴퓨터뿐이다. 그것도 어제 남편이 전원 연결조차 되어 있지 않은 걸 모두 연결해 주고 간 덕분이다. 전화기도 내 자리에 겨우 연결해 둔 거 하나라 전화와 메신저, 카톡이 계속 울려댄다. 밥은커녕 화장실도 못 갔다. 그런데 더 절망적인 건 우리 교실 프린터기가 망가져서 아무것도 프린트할 수 없어 이쪽저쪽으로 부탁하러 다녀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3시가 됐다. 아직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전체 교직원 회의란다. 나는 7시간 근무라 4시에 퇴근해야 하는데, 회의가 끝나니 4시 20분이다. 교실로 돌아와 주섬주섬 책가방만 정리하고 서둘러 퇴근을 했다. 업무 거리를 잔뜩 싸 들고. 난리부르스 상태인 교실은 일단 내일의 나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집에 왔더니 아이 둘이 내복 차림으로 간식을 먹으며 유튜브를 보고 있다. 시간은 5시. 평소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아이들이 저런 차림으로 간식을 다 먹을 정도로 늦을 시간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언제쯤 왔냐고 물었더니, 4시 20분쯤 왔단다. 세상에. 난 얼마 늦은 거지.


   걸어서 퇴근하겠다는 야무진 꿈은 하루 만에 포기다. 집에 왔는데 걸을 수 없을 정도로 골반과 허리가 아파 일단 좀 눕는다. 전기장판 위에 누워있다 일어났다. 배달로 아이들 저녁을 대충 먹이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글이라도 써서 힘듦을 덜어내 본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또다시 업무 돌입이다.


   바쁘다. 한없이 바쁘다. 잘난 척은 아닌데, 사실 요 며칠 다른 학교 한국어 학급 컨설팅도 해 주는 중이다. 처음 담당을 맡은 어떤 선생님이 우리 부장님께 내 전화번호를 받았단다. 부장님이 나 보러 자료 있는 거 다 주고, 대강 알려주라는데, 이분이 아무것도 몰라서 너무 힘들어하신다. 마음이 쓰여서 도와드리다 보니, 어떤 때는 한 시간도 통화한다. 나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전화 주시니, 감사한 마음에 도와드리고 싶은데 나도 이젠 정신이 없어져서 다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갔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나를 기다릴까. 일단 아까 미뤄두었던 교실 정리가 나를 기다린다. 남은 한국어 학급 진단평가(내일은 1:1 말하기 평가만이 남았다. 대상 학생은 대략 40명 정도다.),  시험지 채점, 결과 정리 및 반배치, 시간표 작성이 일단 남았다. 내일의 내가 잘 해낼 수 있기를 바라며, 힘을 내보자.


저 짐들을 넣을 곳이 없어 난감하다. 공간 확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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