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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May 17. 2022

맛을 잃는다는 건

모든 라면이 똑같은 맛이 날 때

코로나 확진으로 인한 격리 해제가 끝난 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간다. 격리 내내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해제 이후에도 일주일 넘게 약을 더 먹어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어지러움, 근육통, 기침, 쉰 목소리 등등이 계속되었다.


   어느 순간, 쉰 목소리는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기침도 사그라들었다. 다만, 여전히 후각과 미각이 둔한 편이다. 처음엔 내가 후각과 미각을 잃은 줄 몰랐다. 하도 열이 나고 아파서 밥알이 모래알처럼 느껴지고 입맛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격리가 끝나고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는데, 그날따라 나를 포함, 3명의 선생님이 모두 컵라면을 먹게 되었다. 창문을 열어 두긴 했지만, 아마도 좁은 공간 안에 컵라면 냄새가 진동했을 텐데,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때, 비로소 내 후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미각도 둔해져, 모든 라면은 똑같은 맛이 났다.

모두 똑같은 맛이 났던 라면들…


   그 이후, 파인애플을 먹으면 아삭한 무를 씹는 거 같았고,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모두 똑같은 맛이 났다. 그저 씹는 느낌의 차이만 느낄 수 있었다. 후각과 미각을 잃으니 음식 맛이 느껴지지 않았고, 배는 고파서 무언가를 먹긴 하지만, 그저 배를 채운다는 느낌에 지나지 않았다. 먹는 즐거움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나로서는 꽤 힘든 시간이었다.


   후각과 미각은 여전히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주 극도로 짠맛 정도만 느낄 뿐이다. 후각과 미각이 둔해지니, 생각보다 ‘맛’에 후각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걸 깨달았고, ‘맛’을 잃어보니, 삶에서 ‘맛보다’라는 감각이 차지하는 비율이 꽤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 삶에서 많은 것들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과 중요성을 깨닫는 것 말이다. 평소에는 그것들이 얼마나 내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중요한지 모르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을 때야 비로소 그 중요성을 처절하게 깨닫고야 만다.


   신앙생활도 그렇지 않을까. 그저 일상적으로 드리던 예배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을 때, 계속될 것 같았던 공동체가 사라진 것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바뀔 때 우린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했는지 그제야 깨닫는다. 그리고는 그 사라짐과 달라짐에 대해 아파하고 힘들어하곤 한다.  


   잃었던 것을 다시 찾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때론 잃기 전과 같은 상태에 영영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 삶에서 결코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혹여 잃어버리더라도 꼭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라야겠다.


   집 나간 나의 미각과 후각도, 어느샌가 사라져 버린 글에 대한 열심도, 말씀에 대한 갈급함도 모두 돌아오기를, 원래의 모습으로, 아니 이전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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