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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May 24. 2022

남편이 없는 풍경

예전에는 남편이 하루만 없어도 불안해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남편이 조금만 늦게 들어와도 울곤 했다. 예정에 없던 일이 생겨, 남편이 들어오지 못하거나, 늦으면 불안해하곤 했다.  


   아이들이 제법 컸고, 남편이 며칠 집을 비워도 울지 않을 정도가 됐다. 여전히 남편의 빈자리는 크지만, 그럭저럭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곤 한다. 다만, 분주한 아침에 남편이 없는 건 다소, 아니 좀 많이 불편한 편이다.


   남편은 이번 주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아침에 없을 예정이었다. 월요일 아침에는 2주에 한 번 있는 녹색 봉사단 활동이 있다. 월요일 오후부터 목요일 오후까지는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어, 집에 없다. 3박 4일의 여정. 예전에는 남편이 없는 아침이 그야말로 멘붕이었지만, 요즘엔 멘붕 정도까지는 아니다. 아이들은 둘이서 학교까지 잘 걸어가고,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출근한다.


   물론 아이들보단 내가  문제이긴 하다.  시간에는 카카오 택시도 이음 택시도  잡히지 않는다. 건너편에서 택시를 타야 하지만, 지나가는 택시도 건너편에는 거의 없어, 반대편에서 택시를 잡아탄다. 목적지를 말하면 U턴을 해야 해서 기사님들이 싫어하시지만, 어쩔  없다.


   월요일에는 짐이 많다. 일주일 동안 먹을 점심거리를 바리바리 챙겨가기 때문이다. 어제도 양손 가득 짐이 있었다. 택시는 잡히지 않고, 짐은 무겁고 잠시 짐을 길바닥에 두었다가 지나가는 택시를 겨우 잡아탔다.


   출근하여 짐을 정리하는데 뭔가 빠진 느낌이다. 하얀 쇼핑백에 짐을 일부 담고,  안에  투명 비닐 팩에 먹거리를 잔뜩 넣었는데 투명 쇼핑백만 있다. 아무리 찾아도 하얀 쇼핑백이 보이지 않는다. 택시에 두고 내린 것이다. 물론 들어 있는 거라곤 냉동 봉골레 파스타밖에 없긴 했다.

(왼) 두고 온 흰 봉투, (오) 잃어버린(?) 내용물


달랑 들고 온 투명봉투, 어제 점심으로 하나 먹고 남은 것들


   나의 정신없음을 탓하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한탄하다가 깨달았다. 아, 냉동 봉골레 파스타뿐 아니라 새로 산 컵도 들어 있구나. 쿠팡에서 산 스테인리스 컵. 무려 뚜껑까지 있는 컵이었다. 망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나가던 택시를 잡았기에 기사님께 연락할 수도 없다.


   그러다가 문득, 아예 길바닥에 두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 학급 교무실에서 쓸 겸, 지퍼백과 위생 팩을 잔뜩 사서 한쪽 손에 들었었다. 짐이 너무 무겁고 많은데, 택시가 잡히지 않아 잠깐 짐을 내려놓았었다. 팔 한쪽이 빨갛게 쓸릴 정도로 무거워서 그랬다.


   그렇게 짐을 내려놓고 택시를 기다리다가 택시를 탈 때, 겉봉투인 흰색 쇼핑백은 두고, 투명 쇼핑팩만 덜렁 들고 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서둘러 전화했다. 녹색 봉사단 끝나고 지나가는 길이냐고, 혹시 내가 택시 탔던 장소에 하얀 쇼핑백이 떨어져 있지 않냐고 물었다.


   잠시 후, 남편이 그런다.


“봉골레 파스타?”


“맞아, 맞아, 여보. 거기 있어?”


“응, 당신이 말한 그 자리에 있더라고. 아니, 택시에 두고 내리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길에다가 두고 가는 거야?”


“그러게. 나 진짜 당신 없으면 안 되나 보다. 에효.”


   월요일 아침 소동은 그렇게 남편의 완벽한 외조(?)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런 남편이 세미나를 갔고, 그의 빈자리를 느끼며 오늘 아침도 보내는 중이다. 하루빨리 남편이 돌아오기를, 아니 기한이 정해져 있으니, 남편이 없는 이 풍경이 덜 힘들기를, 잘 지나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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