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물이와 까꿍이가 언제 이렇게 자란 것일까. 매일매일 부대껴 지내다 보면 아이는 손가락 한 마디조차 자라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순간, 한 뼘만큼 자란 아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주 문득 말이다.
얼마 전에 난 학교에서 ‘에버랜드’로 출장을 갔다. 일하는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가서 그랬다. 내가 에버랜드에 간다니 남편과 아이들도 모두 가고 싶다고 했다. 결국 남편은 월차를, 아이들은 교외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에버랜드로 나섰다.
나는 일정이 빠듯하여 아이들과 만나서 밥만 먹고 헤어졌는데, 남편과 아이들은 남아서 좀 더 놀았단다. 남편은 바이킹을 탄 후, 속이 울렁거리고 상태가 메롱이 되었지만, 나물이와 까꿍이는 아주 멀쩡했단다. 이후, 아빠 없이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타고 돌아왔다고. 심지어 놀이기구를 탈 때, 번쩍번쩍 손을 들고 만세를 외쳤단다.
예전에도 가족끼리 에버랜드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아이들이 탈 수 있는 놀이기구를 타긴 했지만, 거의 동물원 위주의 구경이었는데, 이날은 정말이지 거의 모든 시간을 놀이기구로 채웠단다.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나, 아이들이 언제 이렇게 컸지, 싶었다.
며칠 전에는 그런 일도 있었다. ‘진라면 순한맛’도 매워하던 둘째가 일어나자마자 컵라면을 찾았다. 토요일 아침이라 느긋하게 일어나도 될 텐데,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아침 일찍 일어나 라면을 끓여달라고 난리였다. 라면을 끓여줬더니, 뚜껑으로 야무지게 받침을 만들고는 호로록호로록 맛있게 먹는다. 마냥 아기 같았는데, 컸나 보다.
나물이는 또 어떻고. 요즘 동영상 편집에 빠져서 아빠에게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성화다. 얼마 전, 아빠가 교회에 온 고양이에게 참치캔을 주는 동영상에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배경음악을 깔고, 자막을 달더니 자신감이 붙었다. 자기 어렸을 적 동영상에도 이것저것 뭔가를 한다. 조만간 유튜브에도 올려달란다.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사이에 그저 자라고, 또 자라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자라는 동안 그 아이들은 아주 잘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나의 자람을 본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나의 모습을, 오히려 퇴화하지 않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나를 말이다.
아이들의 자람에 기뻐하며, 나의 자람을 위해서도 노력하는 내가 되어야겠다. 물리적으로 자람은 멈췄을지 몰라도, 어딘가 자랄 구석이 남아있으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잘하는 사람은 아니더라도, 매일 눈곱만큼이라도 자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물이와 까꿍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