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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08. 2023

몸으로 말해요


아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생긴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댄스에 소질을 보이는 것도, 소질이 없더라도 댄스에 대한 강한 욕망을 보이는 것도 꽤 당연하다.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아무리 자기네 나라 언어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지낸다고 하더라도 분명 한계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지난 6월부터 학교 아이들이 좋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전국적으로 진행되는 ‘꿈의 댄스팀’ 사업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합류한 프로그램이었다. 아이들의 집과 수업을 받는 곳의 거리가 다소 멀어, 내가 두어 번은 초과근무를 달고, 아이들을 인솔해야 했다.


   댄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들의 연습 장소가 지하철 시작 역 부근이기도 했고, 밤 9시가 넘은 시간이라 그런지, 지하철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비어있는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아이들이 마구 다른 칸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아이들 뒤를 쫓았다.


   사람이 거의 없는 칸에 이르자마자 아이들이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핸드폰 두 개를 반대편 의자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더니 다른 편 의자 바로 앞에 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핸드폰이 두 개인 이유는 하나는 음악을 틀고 하나는 동영상을 찍어야 해서였다.


   그런 무리가 두 팀이었다. 내 왼쪽 아이들은 스테이시의 ‘테디베어’에 맞추어 몸을 흔들어 댔다. “Teddy Bear ooh yeah Pump Pump Pump Pump it up Teddy Bear” 오른쪽 아이들은 르세라핌의 ‘이브, 프시케, 푸른 수염의 아내’에 심취해 있었다. “Boom boom boom 내 심장이 뛰네. Get like boom boom boom. Get like boom boom boom.” 펌프, 펌프, 붐붐붐 거릴 때마다 얼굴을 발개지기 시작했다. 정말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는 말이 세포 가닥가닥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쥐구멍도 없을뿐더러, 있더라도 들어갈 정도의 체형은 아닌지라, 그냥 손에 들린 무언가로 얼굴만 가릴 뿐이었다. 역 하나하나를 지날수록 사람들이 타는데, 아이들의 춤은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 집 근처 역이, 아이들이 내려야 할 역보다 먼저였지만, 아이들을 끝까지 인솔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부끄러움을 앞섰다.

   내릴 역이 다 되어가서, 이제 내릴 준비를 하라고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은 끝까지 춤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내 내일 때가 되자, 나를 목청껏 불러댔다. 웃으면서 부끄러워하는 놀려대듯 그렇게.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하아... 내 머릿속에는 뜬금없이 신승훈 님의 노래가 자동 개사되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날 부르지마~. 니들 릴스 속에 주인공은 싫어.’ 온몸으로 제발 조용히 하란 표현을 하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내렸다.   


   아이들을 보내고,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텅 빈 역사에 앉았다. 문득, 부끄러웠던 아이들의 그 춤이, 어쩌면 아이들이 낼 수 있었던 비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낯선 나라에 와서 갑자기 낯선 언어로 둘러싸이게 된 그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지 못하고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아이들이 사는 마을은 여기가 한국인지 아니면 러시아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오히려 내가 그 마을에 가면 이방인이 된 느낌이다. 학교에도 워낙 같은 언어를 쓰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아이들은 주로 자기들의 언어를 쓴다. 그런데도 이들에겐 충분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보이는 몸짓은 아이들의 몸 안에서 울리던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아이들이 한국에서 살아남기에 얼마나 부족한지 안다. 다만, 알던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어쩌면 아까 느꼈던 그 부끄러움이 아이들 때문이 아닌, 그런 아이들을 제대로 보아주지 못한 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자기들의 이야기를 부디 잘 풀어냈으면 좋겠다. 그것이 춤이든, 노래이든.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 아이들의 이야기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맞추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너희들의 몸짓이, 그 몸으로 말하는 이야기가 부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랄게. 댄스로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아가는 너희가 되기를-.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네번째

#Ah-choo(아주)_잘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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