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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전거 탄 달팽이 Sep 10. 2023

우리 아이는 사춘기가 조금 심한 것뿐입니다.

요즘 들어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소식들이 유독 귓가를 울린다. 지금은 비록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한국어학급 시간제기간제’라는 애매하고도 긴 명칭이 붙어 있기에 나 스스로를 ‘교사’로 묶어서 이 아픔에 동참해야 할 것인지, 정말 그래도 되는지 머뭇거리며 아파하는 중이다.


   애매할지라도 학교란 공간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며 부대끼는 동안, 사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했다. 특히 올해는 유독 더 힘든 부침을 겪는 중이다. 올해 새로 들어온 외국인 학생들은 숫자가 예년에 비해 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힘듦은 몇 배를 넘는다.


   유독 올해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본인이 상담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분명 부모님 때문에 힘들어서 위험 행동이 나타남에도 부모님의 동의가 없으니, 상담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이상하게 듣고 책상을 뒤집어엎기도 하고, 친구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친구에게 차마 다시는 입에 올리지 못할 심한 욕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교실에 있는 화분 나뭇가지 사이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기도 하고, 립스틱을 바른 채로, 유리와 블라인드에 입술 자국을 찍어 놓은 친구들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더러운 블라인드인데 굳이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별의별 일들로 복작복작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내가 예민하게 아이들을 대하는 건지, 상호문화적 태도가 부족하여 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스스로를 돌아보게만 되었다.


   A는 학기 초부터 각종 사건에 휘말렸던 친구다. 친구들에게 위험한 칼을 선보이다가 다른 선생님께 걸려서 압수당한 칼과 함께 우리에게 보내졌다. 등굣길에 비비탄총을 사람들에게 쏴서 학생부를 통해 인계되기도 했다. 체험학습을 갔다가 비상용 망치를 훔쳐서 가정 방문을 통해 어렵사리 망치를 회수하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아이의 비행이 심해져 어렵사리 무료로 정신과 의사 상담을 받게 했다. 상담을 앞둔 날조차 빈 교실을 열고 들어가서 놀다가 나에게 걸렸다.  A 주머니 속에 있던 문고리를 빼앗은 건 덤이다.


   의사의 결론은 그랬다.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하고 약을 먹어야 한다고. 정밀한 검사를 받아봐야겠지만, 이대로 방치되면 고등학생 때, 엄청난 폭력성이 발현될 것이라고 말이다. 상담사 선생님께서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서 1년 동안 3백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알려주셨다. 부모님의 동의만 받으면 우리가 모두 A를 위해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방화를 하고, 편의점 물건을 훔쳐서 어머님도 힘들다고 하신 터였다. 어머님이 혼내면 물건을 집어던지며 소리를 질러서 힘들다고도 하셨었다.


   “우리 아이는 사춘기가 조금 심하게 온 것뿐입니다. 힘들지만 제가 알아서 해 보겠습니다. 상담사를 찾아도, 제가 나중에 직접 알아보겠습니다.”

   어머님의 대답은 그랬다. 그때 느꼈던 무력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대로 아이가 좀 얌전하면 좋으련만, A는 그 며칠 뒤, 송곳으로 교실 문을 따다가 걸렸다. 송곳을 끝까지 학교에서 주웠다고 하는데, 질문을 하면 할수록 거짓말만 하는 터라, 아이도 나도 지칠 뿐이었다.


    어머님께 전달했지만,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피겠다고만 하실 뿐이었다. 그 이틀 뒤에는 나사못을 가지고 있다가 나에게 걸렸다. 왜 꼭 내 눈에만 아이의 이상행동이 눈에 띄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저 걱정을 날려버리려 주위에는 이러다가 A의 압수품으로 철물점을 차릴지도 모른단 소리만 지껄일 뿐이었다.


   그 밖에도 올 한 해, 아이를 수업 시간에 화장실을 보내지 않는다고 자기 아이를 괴롭힌다고 민원을 받은 적도 있고, 뒤늦게 취학(주: 외국인 가정 자녀 학생이 한국에 입국하여 처음으로 한국의 한국에 입학하는 경우)을 한 학생에게 몇 번의 확인을 거쳐 제대로 건강검진 기관을 안내했음에도 너희가 제대로 안내하지 못해서 내가 고생했다는 민원을 받기도 했다. 이상한 서류 제목만 문자로 보내놓고, 그 서류를 떼어 놓으란 민원은 별일도 아니랄까.


   그 수많은 일들이 있음에도 내게 드는 생각은 그랬다. 그들의 문화가 달라서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나는 정규 교원이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아니 어쩌면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그래서 처음에 여러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릴 때마다 마음껏 함께 슬퍼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노련한 선생님들도 받는 민원을 나 따위가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쩌면 그 선생님들도 스스로를 옥죄고, 스스로를 탓하다가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기로 했다. 문화적 차이라고 치부하기에 비정상적인 것들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그리고 내가 최선을 다했지만, 그 최선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내려놔야 한다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를 폄하하고 비하하지 말고, 스스로가 먼저 바로 서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이런 마음가짐을 가졌다고 주변이 확 달라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개학하고 나서 더 많은 일들이 펑펑 터지는 중이다. 다만, 이런 마음이나 어려움을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덜어내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렇게 조금씩 글로, 말로, 기도로 흘려보내다 보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언젠가 (아마도 조만간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A의 어머님께 꼭 말씀드리고 싶다.

“어머님, 사춘기라고 모두 A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A의 특수성에 직면하시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도울 수 있는 만큼, 충분히 도울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진정 A를 위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쓰고뱉다

#100일의글쓰기시즌2

#여섯번째

#오늘도_애쓰고_계실_모든_선생님들을_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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